길 위의 추억, 현재는 과거의 표정이다
길 위의 추억, 현재는 과거의 표정이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30) 대전 대흥동과 은행동을 걷던 옛날들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3.0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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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복고의 여운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 그 여운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에 따라 인기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채널을 돌릴 때마다 각종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오거나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인기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이 끝난 뒤 여운이 식을 법도 하지만, 아직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분위기는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복고 관련한 상품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드라마가 남긴 진한 향기를 여전히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다. 비엔나 커피가 등장하고 딸기파르페도 인기라는 소식이다. 삼십 여 년 전 상품의 포장이미지를 다시 복원해 시판을 하는 상품들도 등장을 하고 있다.

기업들은 복고 코드에 맞춰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가 서울의 쌍문동을 기억하게 했다면, 대전의 경우는 원도심 골목이 쌍문동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스토리가 가득했던 대전의 대흥동과 은행동으로 돌아가 보자. 이 글은 지역 잡지 토마토에 실렸던 것을 조금 더 수정 보완했다.

30년 전 대전의 원도심을 걷다
문명의 이기에서 거리가 있었던 시기였다. 컴퓨터가 없었다. 휴대폰도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려면 수첩을 꺼내 공중 전화기에 동전을 넣고 불러내거나 집에 찾아가야 했다. 1980년대 대전역 광장에서 바라보면 왼쪽에 하늘색 공중전화가 열 대쯤 놓여 있었고, 부스마다 길게 줄을 선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어느 역이나 터미널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개인전화가 없었던 시절이니 만큼 친구와 통화를 하려면 가족에게 바꿔달라며 이쪽의 신원을 밝히곤 했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이 없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화비 20원을 구걸하기도 했다. 전화를 걸다 동전이 남으면 수화기를 올려 놓고 누군가 필요한 이들이 쓰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때로는 휴가 나온 군인이 애인한테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상대쪽에서 남자 목소리라 바꿔주지 않을 경우에는 지나가는 여성에게 대신 전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지나가던 여성들도 익숙하게 연기를 해주었다.

당시 중심가였던 대전역에서 지금의 옛 충남도청으로 이어지던 길가에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장소들이 있었다. 대전역 맞은 편에는 <에펠제과> 지금의 성심당 자리보다 더 길가에 있던 <성심당>과 그 맞은 편의 <봉봉제과> 그리고 <델리제과> 같은 제과점들은 당시 고교생들의 미팅 장소이기도 했고 배고플 때 싸고 큼직한 맘모스 빵을 뜯어 먹으며, 입시 공부의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던 해방공간 같은 곳이기도 했다.

또한 숱한 옷가게와 보석 가게, 소극장과 음악감상실, 식당, 우산가게, 맞춤 양복점까지 품고 있던 <홍명상가>와 그 맞은 편의 <중앙데파트>는 대전천 위에 우뚝 세워져 그 시대 쇼핑의 중심가 역할을 해주었다. <나바론2>라는 영화를 마지막 상영하고 헐렸던 <시민관> 자리에 1980년 <동양백화점>이 생기기 전까지, 대전의 쇼핑 중심가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거기였다. 그 뒤로도 한동안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는 배고플 때, 영화보고 싶을 때, 누굴 만날 때, 찾아가던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결코 순진할 리가 없었을 <순진 전당포>도 생각난다. 옛 충청은행 맞은 편, 동양백화점 건너편에 자리했던 이 전당포는 술이 고픈 청년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시계 하나 맡기면 고작 몇 천원에 불과했지만 그 돈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젊음의 울분과 낭만을 토로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연극을 종종 무대에 올리던 <떼아뜨르> 웬만한 영화는 다 그곳을 거쳐 갔던 곳, 인기 좋은 영화는 서서도 많이 봤던 <대전극장>과 그 옆에 있던 <서라벌 극장> 중앙 시장 옆에 있던, 가끔은 쥐도 나왔던 <중앙극장> 그리고 <한밭식당> <이모 쫄면> <기신양복점>, <사리원면옥> 그리고 가벼운 주머니로도 막걸리를 마시기 좋던 <대중집>과 <서라벌> 같은 술집도 생각난다. <광천식당> <청양식당> 같은 곳에서는 동아리 모임도 많이했다. 두부 두루치기, 칼국수를 맛으로 먹었다기 보다는 주머니 사정에 맞춰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인들의 데이트는 여기에서
사이폰으로 커피를 내려주던 커피숍들도 시나브로 떠오른다. 그때는 교회 건물을 개조해서 천정이 높던 <브라암스> 대흥동성당 옆에 있던 <산에 언덕에> <마음의 고향> 1988년에 대전경찰서 옆에 문을 연 <전람회> 대전천 옆 신발을 벗고 들어가던 <뮤즈> 지하에 있던 <사계> 2층에 있던 <검은 돛배> 1층에 있던 <나룻배와 행인> 그런 커피숍의 문을 밀면 향긋한 커피향이 퍼져나오는 낭만 그 자체로 좋았다. 음악을 듣기 어려웠던 시절에 음악도 듣고 커피를 마셨다. 그곳은 추울 때 따뜻했고 더울 때 시원해 좋았다.

음악은 버스를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도 들을 수 있었다. 이문세, 변진섭, 민해경, 김광석, 김종찬, 들국화, 수와진 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공짜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LP 음반이었고, 음반을 선물받으면 판이 닳도록 듣기도 했다. 음반이 있는 곡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만 모아 카세트 테잎에 담아서 선물 하는 것도 유행이었다. 드라마 응팔의 정봉이가 여자친구에게 카세트 테잎을 선물했던 것은 당시의 지극한 정성으로 기억된다. 직접 녹음하지 않아도 곡목을 적어 주면, 레코드점에서 녹음해서 파는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오디오가 좀 더 많이 보급되고 스테레오 카세트 녹음기가 늘어나면서 각자 직접 녹음을 해서 선물을 하곤 했는데, 방송국에는 “녹음하게 몇 시 몇 분에 무슨 곡을 들려주세요” 하는 엽서도 많이 왔다. 저작권이 중요하지 않을 때라 방송국에서도 그냥 들려주었다.

그다지 멋진 곳도 없고, 변변한 공원도 없어서 시간이 남아 돌아 심심했던 청춘들은 지하상가와 대전에 하나 뿐이었던 백화점과 남루한 식당들과 학사주점과 꽃집과 카페를 쏘다녔다. 걷다 보면 군고구마와 군밤을 팔고 카바이트 불을 켜놓은 채 귤과 땅콩과자와 오방떡을 팔았던 은행동과 대흥동 그리고 선화동. 그래도 그 거리에 나가면 아는 얼굴들을 몇 미터 간격으로 마주쳤다. 동시대를 살아가던 친구 선배 동창 그냥 어쩌다 아는 얼굴들도 많았다. 마주치면 멀뚱하니 보고 지나치거나 미소를 짓거나 “어?” 하며 스쳐갔다.
 

그 거리를 걷던 시절, 서글프고 주머니는 비어 있고, 앞날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사는 게 무척이나 괴로움이었다. 훈훈한 추억속에 등장하는 드라마처럼 골목을 마주한 집들이 서로 돕고. 서로의 숟가락 숫자까지 세며, 니꺼 내꺼 없이 살지는 않았다. 그때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살기 바빴다. 속이기도 하고 뺐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좋았던 것들을 많이 기억한다. 그래서 옛날이 더 좋았다고 애써 기억을 편집한다.

그 시대의 거리에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 사라진 건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남은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사라지면 다시 데려올 수 없는 소중하고 안타까운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고, 사라져 마땅한 것들은 미련없이 떠나보내는 일일 것이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만을 기억하려는 또 다른 욕망이 아닐까.

세월은 흘러 원도심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길 위에 뿌려놓은 수많은 추억들은 길 위의 발자국에 밟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발자국 아래에 더 깊이 박혀 그 거리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추억도 있다. 눈을 감고 추억을 곱씹을 때마다 젊음의 발자국이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련한 그림자가 함께 동행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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