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추억, 원도심의 풍경을 떠올리다
골목의 추억, 원도심의 풍경을 떠올리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32)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3.2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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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의 이런 목소리가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학생들을 놀리려고 고무줄을 자르고 도망치던 장난꾸러기 시절도 있었다. 유년시절을 골목에서 보냈던 세대들은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을까. 골목의 풍경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이제 골목은 추억 속 서랍에 남아있을 뿐이다.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지역잡지 토마토에 실었던 원도심 골목에 대한 얘기를 수정 보완했다.

골목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큰길에서 쑥 들어가 동네나 마을 사이로 이리저리 나 있는 좁은 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골목은 큰길에서 들어가기 때문에 차로라는 개념보다는 걷는 이들을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혹은 서넛이 교행할 수 있을 정도의 폭이 아닐까 싶다.
 

골목은 그 성격상 아파트 단지에는 만들어질 수 없다. 덩그러니 서 있는 15층 혹은 30층 아파트의 경계를 구획하는 것은 골목이 아니라 건물의 동 호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다.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골목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크고 작은 도시 할 것 없이 개발의 과정에서 골목의 재잘거림과 평상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어르신들의 잔기침 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대전 선화동의 예만 보더라도 그렇다. 옛 대전문화방송 건물이 있던 뒤편에는 골목에서 길을 잊어버릴 정도의 미로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가야 하는 작은 골목길에는 오래된 길 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이 풀어져 있었다. 사연을 거두고 이어가기 보다는 건물을 올리는 게 소중한 개발의 논리는 골목 안 사정을 애써 감추거나 모른 채 할 수 밖에 없다. “골목길 접어 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라는 노랫말같은 가슴 뛰는 그녀의 창문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골목에서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했던 시절이나 시멘트 벽에 기대어 밀어를 속삭이던 청춘의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간간이 골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른바 ‘응팔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드마라 ‘응답하라 1988’은 골목안 사람들의 이야기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각각의 인물들은 사랑에 가슴 아파하고 처진 어깨의 애잔함을 다독거리며 살아간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자잘한 에피소드의 중심에는 골목이라는 지형이 자리잡고 있다.

기억 속의 골목과 옛 거리의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만이 갖는 정서는 아닌 모양이다. 쿠스미 마사유키와 타니구치 지로가 공동작업한 ‘우연한 산보’라는 만화책을 보면 우리의 심정과 닮아있는 거리의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한 문구회사에 다니는 중견 영업사원 우에노하라가 거리와 골목을 산책하면서 발견하는 정겨운 풍경과 회상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헌책방에서 찾아낸 그림책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거나 세월을 간직한 오래된 가게를 보며 상념에 잠긴다. 여러 삽화 중에서 재개발을 앞둔 마을의 골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가이드북을 만들어 골목을 널리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자”는 주민의 말에 “이런 골목길은 가이드북에 의지하지 말고 그냥 걷는 게 재미있다”는 대응은 골목을 걷는 의미를 배가시키는데 충분하다.

주인공은 걷다 보면 자기 스스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목적없이 자기 마음대로 느긋하게 걸으며 오는 기쁨이 산보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골목과 거리 걷기를 산보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목적을 향한 걸음이 아니라 해찰을 부리거나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라는 뜻일 것이다.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플롯 역시 산책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저자는 작품을 구상하며 세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째, 조사하지 않는다. 둘째, 옆길로 샌다. 셋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얼핏보면 무원칙한 규칙으로 보이지만 그는 의미없이 걷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도를 본다고 해도 재미있어 보이는 방향의 샛길로 샌다는 규칙은 산책의 묘미를 증대시키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의 원도심에도 골목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옛 충남도청에서 대전역까지 좌우로 펼쳐진 골목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젊음의 기운이 풋풋하게 느껴지는 으능정이 거리, 대흥동의 갤러리와 소극장 골목들,  그리고 정동 인쇄골목을 걷고 있으면 시간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돌아간다.

또한 소제동과 대동의 복잡한 골목은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을 반긴다. 예전처럼 번잡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발자국이 골목을 깨우며 사람냄새 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작 ‘피로사회’에서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라고 진단한 바 있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피로를 달랠 수 있는 방법으로 골목길 산책을 추천하고 싶다. 잠시나마 경쟁의 피로를 뒤로하고 정신을 무장해제 한다면 피로의 고독감을 잊게 하는 오래된 기억의 파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조각들을 맞춰나가면 잊고 지냈던 그 ‘무엇’들이 깨어나지 않을까.

'우연한 산보'의 쿠스미 마사유키는 산책의 비법을 천천히 걷는 것이라고 말한다. 급하게 걸을 때 보지 못한 사실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책을 '우아한 헛걸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주인공이 도시를 바라보며 “우리는 50년 뒤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라고 남긴 독백은 오래된 골목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말이다.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도시를 살리는 작업이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을 뒤로 하고 재생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오래된 흔적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다. 재생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낡거나 버리게 된 물건을 가공하여 다시 쓸 수 있게 만듦”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들이 나타난다. 개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테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을 맘껏 품는 이들도 있다. 많지는 않겠지만 그 중에는 불편해도 옛것을 지키며 조금씩 변모하길 바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복잡한 미로같은 골목을 넓고 큰 길로 만들지 않고 남겨두고 싶은 마음. 그것은 모든 것을 드러내기 보다는 조금은 모습을 감추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마음이 아닐까. 골목을 거닐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숨결과 발자국. 그것은 마을의 온기를 만들어내는 끊이지 않는 길이다. 그래서 가끔은 원도심의 골목이 그리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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