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일본철도기행] ⑥삿포로, 영화 ‘철도원’ 한 장면을 보다
[임영호의 일본철도기행] ⑥삿포로, 영화 ‘철도원’ 한 장면을 보다
  • 임영호
  • 승인 2016.04.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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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북해도 철도타워

2월 26일, 늦은 아침을 하였다. 오랜만에 숙제를 끝내고 쉬는 기분이다. 삿포로역에는 전망대가 있는 JR북해도 빌딩이 있다. 일인당 만 원정도 내고 38층 173m의 전망대에 올라갔다. 홋카이도가 한눈에 보였다. 바둑판 모양의 계획도시였다. 대전에는 이런 전망대가 있는 빌딩 하나가 없는 것이 아쉽다. 40층 정도만 있어도 되는데….

일본영화 ‘철도원’

일본의 시골역도 보고 싶었다. 16년 전 보았던 영화를 떠올렸다. 일본 영화 ‘철도원’이다. 평생 조그마한 시골 호로마이역을 지켜온 어느 철도원 이야기이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역에서 한 철도원이 한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털어 내면서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늘나라로 간 자기 아내와 딸을 생각한다. 그는 오래 울었고 깊이 젖었다.

신도쿠역

이 영화를 촬영한 역은 삿포로에서 기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무인역, 이쿠토라역이다. 나는 그 영화를 그리며 완행열차에 올랐다. 11시 51분. 2시간 정도 가다가 다시 갈아 타야한다. 중간에서 환승하는 시골역인 신도쿠역에서 내렸다. 갈아탈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10분의 여유가 있었다.

10분의 여유시간(환승)에 점심을 먹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다. 역 앞 식당에 소바집 하나가 있었다. 소바는 시간이 걸려 준비가 안 된다고 한다. 대신 밥에 돼지고기 수육을 올린 덮밥을 먹었다. 다른 식탁에는 늦은 점심을 먹는 노부부가 있었다. 90살 가까이 되어 보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식사하시는 것을 도와주면서 생맥주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노년의 동행을 보는 것 같았다. 식당 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다 먹고 나니 출발 2분 전이었다. 이미 기차는 서 있었다. 정원이 40명인 한 량짜리 기차였다. 일일이 세어보니 13명. 기관사는 타는 손님으로부터 한 사람씩 돈을 받고 확인한 다음 떠났다. 진짜 설국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마을도 없었다. 오직 눈뿐이다. 내가 머문 시선은 기가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소설 ‘설국’의 배경

노벨상 수상자인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는 ‘설국’의 배경이 된 지명을 어디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마 독자들에게 상상의 자유를 주기 위함일 게다. 나는 여기가 바로 작가가 그린 ‘설국’의 풍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얀….

이쿠토라역

2시간 정도 지나자 이쿠토라역이 나타났다. 영화에서 본 그대로였다. 역장 타카구라 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설치된 TV에는 영화 철도원의 주요장면이 반복해서 상영되고 있었다. 1인 역의 역장인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아파도 함께 병원조차 가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보냈다. 그는 역을 지키는 철도원이기에 이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일본인의 직업윤리, 직업적 양심은 존경받을 만하다. 돈을 받고 하는 일에는 더 철저하다. 공사구별이 확실하고 철저히 매뉴얼대로 한다.

다시 되돌아갈 열차는 4시 59분.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밖의 기온은 영하 5도. 해는 서산에 기울어져 간다. 어디서 기다릴 장소를 찾아야 한다. 동네에는 흔한 커피 파는 집하나 없고 일찍 문을 연 식당도 없었다. 1㎞ 떨어진 곳에 빵집이 있다고 하여 택시를 호출하여 갔다. 이 동네근처에 스키장이 있어 외부 방문객이 더러 있었다. 멀리 텅 빈 리프트만이 눈보라를 맞으며 산 정상으로 오르고 내리고 있었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보니 동네 사람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량짜리 기차에 올랐다. 섭섭해서인지 멀어져 가는 그 역에 시선이 갔다. 영화에서 본 역장 사토오 토마츠가 거수경례를 한다. 한참이나 그를 쳐다보니 눈물이 났다. 환상이었다.

이제 내일 아침에는 6박 7일간의 일본철도 견학을 마치고 서울로 떠나야 한다. 일본철도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국토가 위에서 아래로 길쭉하게 되어 있어 철도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일찍부터 철도산업이 발전되었다. 우리나라는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450km가 채 안 되서 철도가 뻗어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통일이 되고 유라시아, 중국까지 연결된다면 중요한 교통수단이 될 것이다.

일본 철도는 오랫동안 만성 적자여서 민영화되었다. 철도소유는 물론 차량제작, 역세권 개발까지 모든 것이 철도회사 마음대로다. 코레일은 승객이나 화물운송을 위한 철도 이용권만 있다. 철도수입 중에서 이용료 34%를 정부에 낸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철도건설, 역사신축, 철도 이용 토지 소유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지금과 다른 새로운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민영화는 회사 소유 형태만 국가에서 민간으로 바뀌는 것뿐이지 민영화의 장점을 발휘하기가 힘들 것이다.

영화 ‘철도원’에서 역장이 근무하던 책상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일본의 두 차례의 한반도 침략으로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콤플렉스다. 일본이 고대사에서 우리에게 가진 것처럼. 제인 오스틴(1775~1817)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이 떠오른다. 남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만과 여자들이 깨기 힘든 편견을 넘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다.

오만은 허세로 일본이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편견은 우리가 일본을 있는 사실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일본은 철도 선진국이다. 일본은 선진 철도 문화와 세계 제일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일본을 잘만 활용한다면 분명히 이점이 있다. 2002 한일 공동 월드컵이 개최될 때 세계인들은 놀랐다. 한국이 일본과 나란히 개최할 정도로 발전된 나라인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너무 많다. 오만을 버리자. 오만을 먹고 자란 편견은 더 무섭다.

나는 이 글을 끝내면서 두 가지를 희망했다. 하나는 남북통일이 되어 우리의 KTX가 시속 400km로 부산에서 신의주·두만강까지 달려 유라시아 철도와 연결 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고속철도 기술이 8단계나 업그레이드 된 일본과 같이 높은 기술수준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자신의 꿈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 스스로 한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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