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수리하는 연주자
음악을 수리하는 연주자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34) ‘기타 퍼포머’ 이광구 씨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5.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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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대전 대흥동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 일대에는 일종에 문화예술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생태계는 여러 생물 종끼리 서로 협력하고 경쟁하면서 환경에 적응해 살아하는 큰 무리이다. 그래서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먼저 환경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여러 종이 있어야 한다.

예전에는 그저 시내라고 불리던 도심이었던 원도심 일대는 도심의 역할을 신시가지에 나눠주어야 했던 부침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은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인들이 자리 잡고 활동하기에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 자연스레 문화예술인들이 모였으며 또 그들의 조력자들도 곳곳에 자리 잡았다. 문화예술 생태계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구성으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대흥동의 수많은 업소들 사이에서 그들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쉽게 눈에 띄는 소극장과 갤러리 외에 개인이나 그룹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찾으려면 물어물어 대흥동의 구석구석을 헤매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또한 쏠쏠한 재미이다.

‘기타 퍼포머’를 운영하고 있는 이광구 씨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형 중국음식점 주위를 몇 바퀴 돌아 그가 일하는 공간을 찾아냈다.

그는 흔치 않은 기타 수리 전문가이다. 이렇게 기타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사람으로 원도심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물론 대전에는 몇 명이 활동하고 있고 수도권에는 많은 수리점이 있지만 그는 대전 원도심의 문화와 직접 호흡하면서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퍼포머(performer)라는 말은 보통 연주자로 쓰이는 말이지만 명인이라는 뜻도 있는 걸로 압니다. 전문적으로 기타를 고치는 일을 시작한 배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밴드음악을 했습니다. 지금도 손을 놓지 않았어요. 대학 때까지 인천에서 생활하다가 1986년에 대전으로 이사 왔어요. 오래 음악생활을 했죠. 생업도 있어야했기에 여러 곳에서 기타를 가르치고 최근까지 기타교습소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교육 사업에 많은 사람과 기관이 뛰어들었어요. 그러던 중 일산에서 기타를 만드는 후배가 내 손재주를 보고 기타를 고치는 일을 추천했죠. 그리고 여러 기술을 전수해줬습니다. 생업으로 택한 일이고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음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면서 아주 재미있습니다. 음악 하던 사람이 재미없고 자존심 상하면 오래 할 수 없죠.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좀 구체적으로 무슨 재미를 찾으신 건가요?
“재미있다는 말은 주로 소리와 관련된 것입니다. 저는 기타만 수리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나무를 쓰고 똑같은 부품으로 조립한 기타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나와요. 또 연주자들은 그런 소리의 변화에 아주 민감하죠. 이런 요소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공부해야합니다. 일렉트릭기타의 경우, 함께 구성하는 장비의 종류가 아주 많아요. 수많은 앰프와 이펙터 등 장비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변수가 있습니다.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기타와 장비를 조합하고 잡아내는 일은 공부를 많이 해야죠. 그래서 단순히 고장 난 기타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소리는 장비에 따라 변화의 폭이 넓기 때문에 장비의 범위 안에서 원래의 소리, 의도하는 소리를 따라가는 일입니다. 통기타는 변화의 폭이 좁고 일렉트릭 기타는 범위가 넓어서 더 재미있어요. 이런 게 재미죠. 저는 어릴 때부터 연주뿐 아니라 기타 자체를 좋아했어요. 분해도 하고 변화도 주고 그랬죠. 지금도 소리에 관해 공부하면서 배우고 있어요. 그래서 수리하는 방법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찾아보고 그렇게 하고 있죠.”

대전에서만 30년 가까이 계셨는데 처음에는 어땠나요? 음악 하던 얘기도 궁금합니다.
“86년에 이사왔어요. 그리고 대전에 익숙해질 무렵인 1992년에 팀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쭉 원도심에 있었죠. ‘고마워 밴드’였습니다. 그렇게 같이 연습하고 공연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서울에 가서 공연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때는 대전뿐 아니라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음악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원래 이런 거구나 생각하고 그냥 한 거죠. 젊은 나이에 그냥 좋았고, 좋으니까 한 일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철딱서니 없는 일이기도 했죠. 1997년에는 대전의 언더그라운드 록밴드 연합을 만들었어요. 이름은 ‘본 인 대전’입니다. 이렇게 열댓 밴드들이 모여 1년에 한 번씩 연합공연을 했죠. 당시에는 정부지원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장소 잡고 표 팔아서 공연하는 일을 10년 정도 같이 했어요. 그렇게 친목도 되고 서로 위로도 되는 모임 안에는 록에서부터 펑크, 헤비메탈도 있고 하드코어까지 다양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활발하게 활동할 환경이 되었을 텐데 그때는 어려웠죠. 이후 많은 팀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대전에서 음악활동으로 25년 정도 되었네요. 그 인연으로 지금도 대흥동에서 활동하는 후배 팀들과도 친하게 지냅니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처음 왔을 때 대흥동 말입니다.
“예전에는 여기가 시내였잖아요. 다른 곳 갈 데가 없었어요. 음악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이리로 모였죠. 그리고는 둔산으로 많은 것이 이전했죠. 그랬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잖아요. 상권도 많이 좋아졌죠. 깨끗해지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모여 활기차 보이고, 일단 문화행사를 많이 하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작은 클럽에서 한 달에 두 번 공연하는 것도 어려웠죠. 지금 대흥동은 다시 살아나고 활기에 차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쾌적해져야 한다고 봐요. 이제 이곳은 타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는데 그들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야죠. 이 지역을 돌아다니다보면 전체적으로 약간 하수도냄새 비슷한 것이 납니다. 원인을 찾아 고쳐야죠. 그래도 대흥동은 다른 도시의 원도심에 비해 보존과 개발이 잘 어울린 곳입니다. 문화적으로도 낫고요.”

어떤 차별점이 있습니까? 기타를 수리하는 다른 분들과 비교하면. 기타에 문제가 생기면 왜 이광구 씨에게 와야 할까요?
“다른 분들에 비하면 제가 기타를 수리하기 시작한 시간은 아주 짧죠. 기타 수리를 하는 일에도 각자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물어보고 검색해 봐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도 안 가르쳐 주는 거죠. 이런 경우 혼자 알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타의 플랫은 오래되면 바꿔야 합니다. 플랫을 뽑아내고 다시 박고 고정하는데 무엇으로 고정하는지는 아무도 안 가르쳐줍니다. 내 기타를 뜯어서 모든 재료를 다 써보고 또 다시 수리할 경우를 생각해서 다시 뽑아 안정성을 확인했습니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찾는 거죠. 또 하나 제가 다를 수 있는 점은 현장 플레이어라는 것입니다. 음악을 하면서 기타를 직접 치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음악적으로 소통하면서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꼼꼼하고 깐깐하고 예민한 귀를 가진 연주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듣고 대응하는 일은 같은 연주자가 할 수 있죠. 이것은 음악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공연을 하는 경우 기타 테크니션이 항상 따라다니면서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심지어는 앰프를 직접 만들기도 하죠. 저도 그런 마인드로 연주자에게 최적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타 수리전문가로서의 내일도 있을 테고 또 음악인으로 그리고 있는 미래도 있을 것입니다.
“교습소를 할 때 보면 연세 지긋한 분들이 기타를 들고 찾아옵니다. 어렸을 때 잠깐 기타를 쳤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겁니다. 평생 기타를 치고 있는 나 또한 음악을 놓을 수 없죠. 저 방이 음악 작업실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곡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어쿠스틱 소리가 좋아지더군요. 그래서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조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음악도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보컬 만나면 바로 작업할 생각입니다. 또 기타를 수리하다보니까 기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내 이름이 메이커로 찍힌 기타 말입니다.”

목이 긴 일렉트릭 기타를 닮은 이광구 씨의 손에서 수많은 기타들이 다시 태어날 것이다. 새 생명을 얻은 기타들은 다시 수많은 음악을 만들 것이고 그 음악들은 우리의 정서를, 또 대흥동을 어떻게 바꿀지 마음 편하게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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