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옹달샘] 걷기운동 하다가 제방 아래로… 성호를 그었다
[지요하의 작은옹달샘] 걷기운동 하다가 제방 아래로… 성호를 그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겪은 일… 사람은 누구나 벼랑 위를 걷는다
  • 지요하
  • 승인 2016.05.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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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이제 절뚝거리지 않고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됐다. 걷는 일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빨리 걷지는 못한다. 빨리 걸으려 해도 젊은이들에게 뒤처지곤 한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려 광화문광장에 가려면 10여 분을 걸어야 하는데, 오후 7시 미사에 늦지 않으려고 걸음을 빨리 떼어도 대개의 사람들이 나를 앞지르곤 한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나를 앞지르곤 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젊었던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아예 천천히 걷는 쪽을 선택하곤 한다. 빨리 걸으면 숨이 가쁘고 어지럽기도 하다. 천천히 걸으면 여유자적을 즐기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 광화문광장에 가서 천주교 시국기도회에 참여하는 일은 ‘지구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자각하곤 한다.

한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 광화문광장에 가는 일을 접어야 했다. 작은 사고 때문이었다. 작은 사고였지만 왼쪽 장딴지와 넓적다리와 엉덩이 부위에 검붉게 멍이 들었을 정도로 타박상을 입어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는 탓이었다.

의료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의료원 한방과에 가서 침도 맞고, 정형외과에 가서 깁스도 하고는 보름 넘게 절뚝이며 고생을 했지만, 고생을 하면서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불편을 겪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더 많이 기도하곤 했다.

▲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농어촌공사 수문에서 바라본 장명수의 썰물 때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바닷가 제방에서 떨어지다

지난 3월 25일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로 기념하는 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 날로서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숨을 거둔 시각인 오후 3시에 ‘수난예절’을 지내거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등 애도하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오후에 걷기운동을 했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태안성당은 오후 3시와 7시 30분에 수난예절을 거행하기로 했는데, 내가 속한 성가대는 오후 7시 30분 예절에 참례하기로 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시는 그 시각에 걷기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농어촌공사 수문에는 벌써부터 낚시꾼들이 와서 밀물에 낚시를 드리운다. 가을 한철 밀물 때는 낚시꾼들로 성황을 이루곤 한다.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 농어촌공사 수문 위에 차를 대놓고, 나는 다시 장명수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두야리 수문 위에 차를 대놓으면, 대개 50분 정도 걸어 용신리 각골, 제방 길 끄트머리까지 갔다가 오곤 하는데, 그날은 시간이 넉넉지 않아 중간인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 관리사무소 너머 갯바위까지만 갔다 오기로 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도 오후에는 해변에서 걷기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오전에는 원고 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걷기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성당에 가는 게 내 생활 리듬이었다. 이리저리 몸도 많이 움직이고 신경 쓸 일도 많지만, 대체로 생활 리듬이 유지되는 편이다.

걷기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강 문제는 불행에 속하지만, 거의 매일 걷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팔자일 법도 하다. 그리고 집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장명수 포구를 곁에 두고 산다는 것도 행운일 것 같다. 나는 장명수 해변을 걸을 때마다 행복감 속에서 하느님께 감사하곤 한다.

그날도 묵주기도를 하며 모래톱과 자갈밭을 걷고 제방 길도 걸어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 관리사무소 너머 갯바위에 도착했다. 갯바위에 올라서서 잠시 휴식을 한 다음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나는 제방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제방 길을 선택했다. 갯바위를 보며 뒷걸음으로 걸었다. 2012년 8월 말 태풍 블라벤이 몰고 온 파도에 치어 갯바위의 머리 부분이 떨어져나간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머리 부분이 떨어져나가기 전의 갯바위 모습을 잘 기억함으로,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했다. 나는 이상한 그리움에 젖어 머리 부분이 없어져 버린 갯바위를 보며 계속 뒷걸음질을 했다.

제방 길은 좁았다. 그리고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휘어진 부분이 있었다. 나는 갯바위 근처 제방 길에 휘어진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망각했다. 뒤에는 눈이 없으니 뒤를 보지 못할 것은 당연지사였다.

사고 지점으로 달려가 자동차 리모컨을 찾다

▲ 추억에 젖어 뒷걸음으로 제방 길을 걷다가 제방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지는 않아서 격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했다.

제방 아래로 떨어졌다. 한 바퀴 구른 다음 갯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갯바닥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있었다. 나는 격심한 통증에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갯바닥에 간신히 웅크리고 앉아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신음을 삼켰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찢어지거나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았다. 왼손이 돌에 긁혀 곳곳에서 피가 흐를 뿐 머리도 다치지 않았고 얼굴도 긁히지 않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의 양쪽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와 물병은 튕겨 나와 멀찍이 달아나버렸는데, 내 손의 묵주는 그대로 있었다.

나는 묵주 쥔 손으로 성호를 긋고, 감사기도를 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는 그 기도를 여러 번 반복했다. 잠시 후 몸을 일으켜보았다. 왼쪽 다리는 심한 통증으로 걷기가 힘들었지만 오른쪽 다리는 멀쩡해서 오른쪽 다리에 의지해서 가만가만 걸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물병과 휴대전화를 주워 다시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간신히 제방을 기어오른 다음 비교적 평탄한 길을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평소보다 곱은 걸려 이윽고 승용차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아내의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일단 차에 올라 몰고 가면서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면 지금 가는 중이라고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승용차 문을 열려고 하니, 내 주머니에 리모컨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난감했다. 사고 지점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병과 스마트폰을 주우면서 승용차 리모컨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내 실책을 한탄하면서 어찌할까 생각하는데 휴대전화 신호음이 울렸다. 아내의 전화였다.

사고 내용을 고하니 아내는 자기 가방 안에 리모컨이 또 하나 있다며 곧 오겠다고 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간신히 땅바닥에 앉아 아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아내가 저만치에서 뛰다시피 하며 오는 게 아닌가.

아내는 동료 여교사의 차를 타고 장명수로 오다가 갯물 수로 옆길 두 개 중 포장이 안 된 길로 오다가 중간에 차가 좁은 길에 갇힌 탓에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고 했다. 장명수에 한두 번 온 게 아닌데 정신이 없다보니 동료 여교사에게 길을 잘못 안내해서 낭패를 끼치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일단 차에 오른 다음 아내의 동료 여교사의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다. 브레이크와 액셀을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오른쪽 다리가 멀쩡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동료 여교사의 차는 바로 옆의 다리를 이용하면 돌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차를 돌려주려고 했으나, 동료 여교사는 전화를 받은 남편이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시각이어서 내 리모컨이 물에 잠길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안기2리 어촌계양식장 관리사무소까지는 차로 갈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아내는 재빨리 갯바위 쪽으로 돌아가더니 휘어진 제방 아래로 내려가 쉽게 리모컨을 찾아들었다. 바닷물은 아직 저만치에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성호를 그으며 감사기도를 했다.

성당에서 저혈당 증세를 겪다

▲ 태안군 근흥면 안기2리 해변 제방 바로 옆 갯바위는 내 걷기운동의 목표 지점이기도 하다. 좀 더 예쁜 모습이었는데, 2012년 8월 말 태풍 블라벤이 몰고 온 파도에 치어 머리 부분이 부러져 버렸다.

다시 차에 오른 아내의 강권에 따라 보건의료원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는 동료 여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와서 무난히 차를 빼어 이미 집에 도착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내는 거듭 감사를 표했고, 나는 또 한 번 성호를 그으며 감사기도를 했다.

의료원에서 X레이도 찍어보고, 주사도 맞고 왼손 상처들에 약도 발랐다. 좋지 않은 신장을 생각해서 약은 먹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 한방과에서 침도 맞고 서산의료원 정형외과에도 가보기로 하고 일단 집으로 왔다.

성당에 가야 할 시간이 임박한 시각이었다. 저녁을 먹을 여유도 기운도 없었다. 성당에 갔다 와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노친께만 저녁을 차려드리고 부부 함께 다시 집을 나섰다. 성당에 가서 ‘주님 수난 예절’에 참여하며 성가 봉사를 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온몸에 힘이 없어지고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나는 주저앉지 않을 수 없었다. 저혈당 증세임을 직감했다. 나는 과거 두 번 저혈당 증세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두 번의 경험을 상기하며 앞에 놓인 야쿠르트와 건강음료를 두 병씩 마셨다. 성가대 석에 그런 게 있는 것도 내겐 행운이었다. 잠시 후 기운이 회복되고 눈앞이 보였다. 다시 지휘자를 보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또 한 번 감사기도를 했다.

예절이 끝난 후 성가단원들에게 빵이 나눠졌다. 구운 지 얼마 안 된 단밭빵이었다. 빵을 먹는데, 평생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빵을 먹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수님께서 5000명에게 먹이신 빵 맛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빵을 먹으면서 운전을 했고, 집으로 오면서 아내에게 재미있는 말을 했다.

“내가 격심한 통증 속에서도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했는데,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할 수 있을까?”

아내는 잠시 후 대답했다.

“당신은 능히 그럴 거예요. 치명적인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도록, 그것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며 살잖아요.”

“그래요. 사람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벼랑 위를 걷듯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오늘의 안전뿐만 아니라, 혹독한 불행을 겪는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오늘 끊임없이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란 결국 하느님 신앙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를 위한 거니까…. 오늘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다시 한 번 그것을 되새길 수 있었어요.”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들을 잡고 있는 내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그러며 한마디 했다.

“미안해요, 내가 운전을 해야 하는데, 줄기차게 장롱면허를 고수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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