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4.16] 열여덟의 생애, 책으로 기억하다
[숨쉬는 4.16] 열여덟의 생애, 책으로 기억하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굿모닝충청 세월호 공동기획 ‘숨쉬는 4.16’ (23) 대전·충남 작가들, ‘단원고약전’ 헌정식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6.05.2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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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스토리밥 작가협동조합이 매달 16일마다 기억하는 세월호의 아이들, 그들의 짧은 생애를 담은 <단원고 약전>이 발간돼 지난 5월 13일 안산에서 헌정식이 열렸다.

세월호 참사로 하늘로 올라간 단원고 학생 250명 중 231명, 교사 11명, 아르바이트 청년 3명 등 희생자 245명의 생애를 간략하게 담은 책이다.

모두 12권으로 권당 200여쪽, 총 3천4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짧은 그리고 영원한> 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약전은 희생자들의 짧은 삶을 영원히 기린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140여명의 작가가 지난 2015년 한해 동안 희생자 부모와 형제, 친구, 동료 등을 인터뷰하고 취재해 집필했다.

이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시인, 소설가, 아동문학가, 극작가, 르포작가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다. 1∼10권은 사고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약전을 반별로 정리했고 나머지 두권은 교사들의 약전과 아르바이트 청년, 작가들의 소회,단원고 중심의 포토에세이 등을 담았다. 발간 기획과 진행은 경기도교육청 약전발간위원회가 맡았다.

이 작업에 참여한 작가들은 지난 해 안산의 유가족을 수시로 만나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희생자들의 사연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웠고, 그들의 아픈 가슴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대전 충남에서도 1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못다 이룬 아이들의 꿈을 글로 남겼다. 그들이 취재해 집필한 희생 학생들의 약전 일부를 옮긴다.
 
 

“책임감과 배려심이 강했던 진정한 축구돌” - 김건우
“건우는 전천후였어요.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가리지 않았는데 그 중 완전 수비대장이었어요. 건우의 볼은 대포였어요. 힘이 워낙 좋고 몸이 단단했어요. 건우의 가장 큰 장점은 저돌성! 상대방이 공을 잡았을 때 건우가 짧은 다리로 다다닥 달려가 압박하면 상대방이 허둥대곤 했죠. 승부욕도 강해서 어쩌다 지기라도 하면 엄청 속상해했어요. 건우가 있나 없나 경기력에 영향이 컸어요. 건우가 공부 좀 하려고 빠지면 지기도 했어요. 건우는 미드필더에서 아이들이 공격을 잘할 수 있도록 두루 받쳐주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주는 역할을 아주 잘했거든요.”

축구팀 아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건우를 좋아했어요. 특히 선생님들이 건우를 참 예뻐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김범철 선생님은 졸업 이후에도 각별하게 지냈어요.

“건우는 그냥 마음이 가는 아이였어요.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자, 친구들을 독려하고 또 아무도 발표를 안 하면 건우가 나서서 일부러 발표를 해주며 수업분위기를 이끌었어요. 컵스카우트 활동을 할 때도 분대장을 맡은 건우가 솔선수범 아이들을 잘 다루어 대장인 절 많이 도와주었어요. 제 무릎에 스스럼없이 앉기도 하고, 그 나이답지 않게 사람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아이였어요.”

“평화와 정의실현을 꿈꾼 어린 사제” - 박성호
“나는 평화주의자이자 정의주의자였어요. 관계형성을 중요시했어요. 관계에 대한 파악이나 분석을 아주 잘했어요. 사회성도 뛰어났는데 완벽하게 알거나 확신이 서지 않는 일에는 안다고 말하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았어요. 나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는 걸 안 했어요. 조용하지만 내성적이지 않고 적극적이고 밝았어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정의롭지 못한 사회현상을 접할 때마다 의구심을 품었어요. 언론보도 속에 가려진 진실을 알고 싶어했어요. 특히 약한 자들이 인권을 침해 받거나 오해받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견디기 힘들었어요. 학교에서도 노는 애들이 약한 애들을 괴롭히면 못 참아했어요.”

“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에 ‘신선’ ‘미륵보살’ ‘아낌없이 주는 나무’ ‘힘이 되어주는 존재’ 등이 있는데요. 어휴, 생각만 해도 낯간지러운 찬사들이지만 무척 감사해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건 신나는 일이잖아요? 아마도 바보스러울 정도로 욕심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타인을 배려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성격은 천성인 것 같아요. 쉽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느긋하게 바라보고 지켜보는 편이었어요. 그렇다고 무관심이나 방관은 아니었어요.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엉뚱하게 오해를 받는 상황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호해주곤 했으니까요”

첫 번째 아르바이트, 부모님께 드린 첫 번째 이자 마지막 용돈-이진환
“엄마, 나 아르바이트 해보고 싶어.”
“아르바이트?”

“떡볶이 가게니까 건전하잖아. 경험삼아 해보고 싶어.”
“안 돼, 넌 아직 어려.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아.”

“삼촌은 말이야. 남자라면 한 번 쯤 그런 경험은 해 봐야 된다고 생각해. 찬성이다!”
이미 말릴 수 없는 고백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첫 번째 맞은 겨울방학, 진환이는 아르바이트를 결심했다. 첫 번째 사회생활은 바로 떡볶이 가게였다. 주방에서 설거지와 청소를 하는 일이었다. 조리를 하다 손을 데인 적도 있었다. 때로는 배달을 손수 가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는 방학이 끝나고도 이어졌다. 고된 아르바이트이었음에도 진환이는 불평불만 한 번 없었다. 특유의 성실함과 온화함으로 열여섯 살의 첫 사회생활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받은 한 달 월급은 60만원 남짓. 수학여행 전 달까지 아르바이트를 해 진환이가 모은 돈은 1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첫 월급을 받아 만든 통장은 엄마에게 내밀었다.

“여기, 내 첫 월급! 엄마 줄 테니까 엄마가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사요!”
엄마는 아들이 태어나서 처음 번 돈을 차마 쓸 수 없었다. 대신 현금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아들이 직접 번 돈을 스스로 계획하고 쓰라는 의도였다. 진환이는 그 돈으로 아빠와 동생에게 선물을 사주었다. 50여 만 원이 넘는 돈의 수학 여행비도 직접 냈다. 

새가 되어 날아오다 - 박홍래
세월호 사고 이후 홍래 가족은 이사를 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세웠던 이사 계획이었다. 홍래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이사할 집을 한 번 구경한 적이 있다. 이사를 마치고 며칠이 지났을까. 저녁에 새 한 마리가 아파트 베란다 창틀에 날아와 앉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였다.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았다. 엄마가 거실을 여러 번 지나갔는데도 간간이 날개만 푸드덕거릴 뿐 떠나지 않았다. 새는 간간이 집안을 두리번 두리번 살펴보았다. 오후 4시 무렵에 날아온 새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새가 주로 쳐다 본 방향은 형이 있는 방이었다. 새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형. 잘있어?
“엄마 잘 지내?”
“아빠는 회사 갔어?”

엄마는 홍래가 새가 되어 날아왔다고 생각했다. 새의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지금도 간간이 휴대폰 사진앨범을 들춰보면서 새를 쓰다듬으면 홍래의 얼굴이 겹친다. 얼굴을 보듬을 때마다 지나온 추억과 아름다운 시절들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한 마리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날아온 박홍래, 생은 짧았지만 가족의 품에 남긴 기억들은 끝이 나지 않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제주도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는 친구들 모두 컸다. 수학여행 가기 일주일 전에 아버지는 티셔츠와 자켓을 사주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홍래는 엄마에게 속옷을 사달라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속옷을 갈아입을 때 민망하다는 이유에서다. 홍래는 빨간색 속옷을 사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전날 밤, 가족들은 광주에 있던 아버지와 영상통화를 했다. 늘 그렇듯이 일상적인 영상통화였다. 어버지는 배 난간에 가 있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혹시 밤중에 난간에 있다가 빠지면 모를 수 있다며 조심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사고 소식과 함께 살아온 가족들의 삶이 허망하게 쓰러져 갔다. 엄마는 수학여행 가기 전에 직업인 미용사 실력을 발휘해 홍래의 머리를 깎아 주고 파마를 해주었다. 여행가기 전 주말에 집에 온 아버지는 가족들과 밥상 앞에서 술잔을 기울였고 홍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주 한 잔을 받아마셨다. 이런 기억을 뒤로 하고 사고 발생 8일 후인 4월 23일, 홍래가 바다에서 돌아왔다. 132번째로 확인된 날이다.

학교 가는 시간을 빼고는 잠잘 때까지 항상 붙어 있었던 형은 울지 않았다. 끝내 참을 것 같았던 형은 홍래가 가는 길에 딱 두 번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화장을 할 때, 그리고 함께 땀방울을 흘리던 도장에서 큰 울음을 울었다. 남자답게 살고자 몸과 마음을 다졌던 격투기 도장에서 형은 체육교사가 되고 싶었던 동생의 꿈에 마르지 않는 눈물을 뿌려주었다.
 
너를 통해 보는 네 모습  - 김정민
“엄마, 이게 꽃사슴이었나?”
2014년 이른 봄, 뒷짐 지고 베란다를 쳐다보던 네가 말했다. 너는 꽃기린 화분을 보고 있었다.
네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삼남매를 위해 재래시장에서 화분 세 개를 사오셨다. 꼬마 아가씨 유민이를 위해서는 진분홍 꽃을 피우는 선인장을, 화려한 걸 좋아하는 수민이를 위해서는 장미과에 속하는 예쁜 꽃을 골랐다. 그리고 자그마한 빨간 꽃을 피우는 꽃기린이 네 몫이었다.

“아, 맞다, 맞다, 꽃기린…, 꽃기린이었지.”
낮은 톤의 네 목소리, 멋쩍어하던 표정, 그 어떤 스마트폰으로도 담을 수 없었던 그 순간들, 너의 숨결, 너의 마음….

사람들은 말없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혼자 속으로 참고 삭이는 게 많아 마음속에 가시가 생기진 않았을까, 아닌 척 해도 외롭진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하지만 꽃기린의 가시 돋은 가지가 잔잔한 꽃을 피우듯, 네 마음속 꽃들도 침착하게 피어오르고 있었음을 느낀다.

“정민아,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지냈니. 너를 통해 보고 싶은 게 참 많은데,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너의 평안을 믿으면서도, 어머니는 네가 곧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 현관 밖 계단의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신다. 어머니도 알고 계실 것이다. 문 열지 않아도, 오늘도 네가 꽃사슴으로, 꽃기린으로, 세상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말이다.

띵띵띵 가슴에 스며드는 피아노 소리, 지글지글 혀를 감싸는 순대볶음, 어색한 표정 뒤의 수줍은 미소, 먹구름 위의 새파란 하늘….
그것들을 마주치면 네가 보여주는 너의 모습임을 알 수 있겠다. 네가 보여주는 세상인 줄 당장 알겠다.

정민아, 오늘은 어떻게 지냈니? 너를 통해 보는 세상의 비는 내일이면 그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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