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망으로 대전의 스토리를 발굴하다
투망으로 대전의 스토리를 발굴하다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의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35) 대전을 기록하는 이광섭 씨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6.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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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원도심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해야 합니다. 하얀 공 하나도 바라보는 위치나 조명에 따라 색깔도 느낌도 달라집니다. 우리 원도심 스토리발굴단의 연령과 성별이 다양한 이유죠. 그래서 오래된 산업은행 건물을 바라볼 때에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스토리 도시, 대전’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대전을 이야기가 있는 도시로 변화시키는 기획이다. 대전광역시 도시재생본부가 추진하는 이 기획은 대전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근대문화유산과 원도심의 흥미로운 원천 스토리를 대전만의 감성 스토리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역사, 문화적 활동으로 도시가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추진력을 얻는 것이다.
3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스토리발굴단’은 ‘스토리 도시, 대전’을 만들어가는 시민 참여 사업으로 시민이 직접 원도심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만들어가고 있다.

스토리발굴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광섭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발굴단이 가지는 가치와 이야기에 다가가는 방법을 서슴없이 풀어놓았다.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은 새로운 것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느낌으로 새롭게 다가가는 일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겁먹지 않고 다가가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죠.”

대전 토박인 그는 오래 동안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젊은 시절 타지에서 일을 하다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가 살던 고장에 관한 이야기로 안면을 트고는 했다. 그런 과정에서 뜻밖에 자신이 대전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면 무엇이든 찾아내고 기록을 남기는 성격의 그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대전의 오래된 건축물이었다.

주말이면 무조건 차를 끌고 나와 관심 가는 대상을 찾아다니는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고건축과 근대 건축물이었지만 점차 오래된 건축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확대된다.

스토리발굴단과의 인연을 물었는데 이야기는 엉뚱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대전시를 소개하는 소셜미디어 기자로 활동했던 이야기가 나오더니 대전의 역사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안여종 씨와의 인연을 소개하다가 성혈(性穴)에 관한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수밖에. 이광섭, 그에 관한 이야기야말로 발굴해야할 새로운 이야기의 창고이자 고구마 캐듯 줄줄이 엮여 나오는 광맥이었다.

성혈은 선사시대 이전부터 남아있는 바위그림의 일종으로 바위에 동그랗게 파인 홈과 같은 형태의 구멍이다. 바위에 파인 반구(半球)의 구멍인 성혈은 사람이 돌로 문질러 만든 것으로 청동기시대 유적 이전부터 전 세계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이 간절한 기원을 담은 것이라는 데에는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광섭 씨의 관심이 이 성혈에 꽂혔다.

“성혈은 날카로운 바위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집 주위에 있는 평평하거나 둥글고 부드러운 바위와 비석 같은 돌에서 찾을 수 있죠. 우리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간절함과 같은 행동이라고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정확한 연대를 측정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런지 관련된 연구도 찾아보기 어렵죠.”

그 시작은 이렇다. 산성을 조사하기 위해 계족산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별자리를 새긴 성혈을 찾아낸 것이다. 본격적으로 성혈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그는 자심의 블로그에 찾아낸 성혈을 공개했다. 그러자 다른 연구자가 찾아왔고 대전에서 발견된 성혈에는 체계를 갖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런 연구의 결과는 2013년에 펴낸 『대전문화유산답사기-성혈편』(대양문화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또 하나 그의 관심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선돌이다. 선돌은 말 그대로 서있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장승과 비슷한 목적을 가지지만 나무 장승과는 달리 크게 가공을 하지 않은 석재 시설이다.

“사찰이 있으면 옆에 탑이 있는 것처럼 문화재들에는 함께 설치되는 것들이 있죠. 그런 후대로 오면서 이것들이 따로 떨어져 여기저기에 산재하죠. 선돌은 마을을 상징하는 문화재입니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흩어졌어요.”

이런 관심 덕에 이광섭 씨는 재미있는 사고를 치고 만다. 대덕구 읍내동을 지키던 선돌인 돌장승을 25년 만에 찾아낸 것이다.

“회덕동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화단에 있는 돌을 봤어요. 그냥 할머니들이 앉아 쉬는 큰 돌인데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거예요. 길게 줄이 새겨져있고 모양도 무게가 있었죠. 그래서 무작정 동장님을 찾아가 한번만 들춰보겠다고 설득했죠.”

토요일에 조용히 장비를 불러 돌을 들고는 자료와 비교해보니 정확하게 일치했다. 읍내동사거리에 있던 한 쌍의 선돌 중 하천을 복개하면서 치워버린 남자 장승이었다. 확인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언론으로 보도하는 일이었다. 조심스러운 관을 빨리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는다. 여자 장승의 위치를 알고 있는 노인의 전화였다. 이렇게 헤어져있던 한 쌍의 장승은 서로의 위치를 알게 되었다. 이광섭 씨가 들려준 이에 관한 해석도 재미있다.

“남자 장승이 바람이 나서 떠돌다가 다시 부인을 찾아온 집에 쉬이 들어오지 못하고 저기 엎드려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장승 앞에서 막걸리 따라드리면서 인사드리고 곧 어르신 모셔오겠습니다. 얘기하고 왔죠. 이 둘은 아주 큰 장승입니다. 관이 빨리 움직이면 둘이 빨리 합칠 수 있어요. 지금 제 소원은 내년에 이 두 양반을 합치고 장승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나서지 않는 일에 사재를 털어 넣으며 활기차게 움직이는 이광섭 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나이가 궁금해졌다. 그의 답은 훌쩍 환갑을 넘겼다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동안이었다.

“워낙 재미있고 또 바빠서 늙을 틈도 없어요. 아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말하지만 그런 아내도 주말마다 같이 다니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죠.” 

이런 활동을 자세히 보여주는 곳이 그의 블로그이다. ‘가보자! 보문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의 블로그에는 대전에 대한 사랑은 물론 그의 활동과 연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모든 자료를 공개해 나누고 있다. 그곳에서는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이 있다. 대전시내의 버스노선과 시외버스시간표, 기차시간표를 정확하게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통 자료들을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해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전을 찾는 각지의 사람이 편리하게 대전을 찾을 수 있어야죠. 우리 대전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지역을 사랑하는 이는 많고 그 방법도 여러 가지이지만 정말 혀를 내두를만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는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느냐고 물었다. 

“저요? 대전이 좋아 끊임없이 찾아다니는 사람이죠. 끊임없이 찾아보고 캐내고 기록을 남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레 이광섭 씨가 요즘 가장 역점을 두고 일로 넘어갔다. 스토리발굴단으로서 원도심의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일이 그것이었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참 멀리 돌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황해도 출신입니다. 그래서 중앙시장에 아버님 친구 분들이 아직도 많이 생존해 계십니다. 이곳의 이야기를 몸으로 기억하는 분들이죠. 기록해야죠. 저만해도 한국전쟁 끝에 대흥동성당 옆에 분유를 나눠주던 배급소가 기억이 납니다. 살아있는 구전을 찾아내 나 나름대로 고증을 해서 정확한 기록이 되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이런 각오를 밝히면서 그만의 노하우 하나를 공개했다. 무조건 노인정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가서 묻고 듣는 일이 그가 즐겨 사용하는 기록의 노하우였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의 활동이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퇴직금으로 작은 박물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거기에는 선조들이 집을 지을 때 썼던 먹통이나 기와와 같이 제가 수집한 건축과 관련된 많은 유산들이 들어갈 것이고 각종 곤충들의 집도 될 것이고 야생화들의 군락이 될 겁니다. 제 관심사를 망라하는 공간이면서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기억이 될 수 있는 곳이죠.”

이광섭 씨는 스스로 낚시꾼이 아니라 투망잡이라고 했다. 하나를 낚는 것이 아니라 넓게 걸리는 모든 것이 관심사이고 보람이며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진정한 활동가를 품었기에 대전이 행복할 이유는 자꾸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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