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충남대 학생]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부와 권력의 획득의 수단으로써 ‘만능열쇠’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외국에서도 ‘좋은 대학’을 나오면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만, 한국만큼 심하지는 않다. 한국의 문제는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자들이 학벌을 취득하고, 그 학벌이 다시 자본이 되는 순환구조에 있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는 ‘학벌’은 대학에 서열을 매겨 줄 세우고, 이에 더해 대학 졸업장을 사회생활의 필수 요건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이러한 학벌사회의 법칙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게 된 것 같다. 대학 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에서 9급 공무원이 탄생하고, 학생들의 취업 상담이 최근 몇 년 사이 5배 가까이 늘어났다. 또한 대학 진학률이 2008년 84%로 정점을 찍은 이래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다 작년에는 70% 가까이 떨어졌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여전히 한국의 대학 진학률이 높은 편이지만, ‘학벌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참 낯선 지표이다.
이례적인 현상이다. ‘무적’의 학벌조차 무릎을 꿇고, 대학을 ‘선택’ 요건으로 전환하게 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의 교육정책, 기업의 고졸채용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기저에 깔려있는 중요한 원인은 취업난이다. 이는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은커녕 서울대 졸업장으로도 취업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생존을 위한 처절한 경쟁의 장, 취업난 속에서 빈곤한 처지에 놓인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 육아와 노후는 물론이고 당장 하루 앞, 한 달 앞의 인생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어느 예능 프로그램의 유명한 멘트처럼 다른 사람을 밟고 짓이겨야 정규직의 자리에 앉게 하는 비인간적인 농락들이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의 3분의 1은 임금도 낮고 신분도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고, 여성과 노인, 장애인은 특히 취약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모든 삶의 비정규직화가 머지않은 것처럼 보인다. 오늘은 생존했지만, 내일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은 누구도 빗겨나갈 수 없다. 그렇기에 근래의 조선업 구조조정 소식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올해만 해도 구조조정 문제로 5명의 노동자가 생을 마감했다. 일터가 다를 뿐, 그들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은 다를 바가 없다.
도처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곡소리가 한국사회의 경고등처럼 들려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와 ‘너’의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비정규’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고, 스스로의 삶과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삶의 조건들을 고민한다면, 곡성(哭聲)은 곧 함성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