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외면한 ‘어린이재활병원’ 장애아 부모·시민들이 나섰다
국가가 외면한 ‘어린이재활병원’ 장애아 부모·시민들이 나섰다
[기획-‘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기적을 현실로] ②사단법인 토닥토닥이 생긴 이유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6.06.1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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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가장 큰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야 할 중증장애어린이들이 의료 사각으로 내몰리고 있다. 변변한 전문치료시설은커녕 이들을 보살펴줄 시설도 터무니없이 적다. 그나마 대도시엔 일반병원에 외래로라도 다닐 수 있지만 시·군 단위로 내려가면 아예 간단한 재활치료도 받을 수 없다.

중증장애아들은 꾸준한 재활치료를 받지 않으면 근육경화가 심화되면서 자칫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부모들 입장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2~3시간씩 승용차를 끌고 하루 서너 곳씩 이 병원 저 병원 전국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다.

정부고 지자체고 어른과 노인들을 위해서는 각종 요양병원과 전문병원을 짓는다고 난리를 피우면서도 유독 중증장애아들에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나와 내 아이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대전에 왜 어린이재활병원이 필요하고 건립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내 및 해외사례등을 종합해 6~7회에 걸친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난 4월 24일 열린 제2회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기적의 마라톤 모습.

[굿모닝충청 이호영 기자] 2014년 11월 9일 눈부시게 화창한 가을날, 대전 엑스포시민광장엔 자발적으로 모인 2000여 명의 시민과 중증장애아 가족들의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있었다. 1년 전 불과 장애아가족 몇 명으로 시작한 ‘토닥토닥’ 모임이 드디어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애아들이라고 국가마저 회피하고 돌봐주지 않는다면, 부모인 나라도 나서서 호소하고 싶었다.”

걸음마를 떼고 막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시작할 무렵 불의의 교통사고로 혼자서는 걸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이 5년을 휠체어에 의지해 있던 건우(당시 7살)와,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을 위해 아빠 김동석 씨가 직접 용기를 냈다.

바로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본격적인 시민운동, ‘제1회 장애가족과 함께하는 토닥토닥 걷기대회’ 얘기다. 이날 행사는 특히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듯 대전시 정무부시장과 서구청장, 대전 시·구의원 등 정치권도 대거 참석해 적극적인 지원과 희망을 약속했다.

2014년 11월 제1회 장애아가족과 함께 하는 토닥토닥 걷기대회에서 펼쳐진 기적의 저금통 나눔 행사.

이를 계기로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추진은 일사천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12월엔 병원건립 비용 마련을 위한 ‘기적의 저금통’ 모금행사가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로 성황리에 진행됐고, 이듬해인 2015년 4월엔 장애아가족 200명과 시민 2000명이 참여하는 ‘제1회 기적의 마라톤’에 시장과 교육감, 국회의원들까지 대거 참석해 ‘희망의 날개’가 되겠다는 언약을 했다.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와 후원협약이 잇따라 열렸고, 8월엔 장애아부모 모임으로 출발한 ‘토닥토닥’이 회원·후원자 300여 명의 지원에 힘입어 정식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10월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대표발의로 여야 국회의원 50명의 서명을 받아 ‘지방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명 ‘건우법’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지난 5월 28일 토닥토닥 봄소풍.

올해 4월 ‘제2회 기적의 마라톤’을 계기해 대전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제20대 국회에서 ‘희망의 날개’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하나하나 전문치료시설을 바라는 장애아가족들의 눈물겨운 땀과 노력,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엔 전국적으로 200개나 되는 어린이재활병원 하나를 건립하는 것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다. 19대 국회에 제출된 ‘건우법’은 결국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고, 대전시 차원의 지원 약속도 예산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 사이 대전지역 1800여 명에 이르는 중증장아들은 언제 생명의 위험이 닥쳐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재활치료나 교육은 고사하고 단지 ‘조금이라도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휠체어에 고단한 몸을 의지한 채 매일같이 부모와 함께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자신이 왜, 어디가 아픈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사단법인 토닥토닥 가입신청서.

사단법인 토닥토닥에 모인 장애아가족과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중증장애어린이들이 온전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장애등록을 위한 병원 진단서를 받기 위해 서울을 오르내리고, 그나마 등록을 해도 전문치료·재활시설 하나 없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은 제발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대전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을 바라는 이유도 대부분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충족하기 위함이다. 채 50명도 수용할 수 없는 소아낮병동, 위급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외래진료, 인지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교육의 권리까지 배제되는 상황, 치료와 재활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마저 제공되지 않는 현실, 가족 스스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부담, 이런 이유로 인한 가정해체는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이기도 하다.

5월 28일 토닥토닥 봄소풍에 참가한 중증장애어린이와 가족들.

토닥토닥이 추진하는 어린이재활병원의 모습도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다. 재활치료와 장애아동 전문진료, 중증장애아동에 필요한 응급시스템, 교육과 돌봄서비스의 병행, 다양한 서비스를 일원화하는 장애아동지원센터가 있는 센터병원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통원형과 입원형, 복지형과 의료형으로 구분되는 중증장애재활치료 요육시설을 통해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개인별 장애정도에 따른 교육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장애아부모들은 소아재활치료와 함께 소아재활의학과, 소아신경정신과, 소아내과, 소아치과, 소아정형외과 등을 두어 외래 진료활동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현재 대전은 물론 충남·충북과 전북, 경북에서 몰릴 수요를 생각하면 대전어린이재활병원은 100병상 규모의 입원병동과 집중재활 및 사회재활 서비스를 위한 200명 수용 규모의 소아낮병동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능하다면 병원파견학급보다는 부속 특수학교를 운영해 유치부·초등·중등·직업 등 개인별 맞춤형 교육도 병행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재로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단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지방 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재발의를 통한 정부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교육법을 일부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소 비용부담이 있을 순 있지만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다면 자체적으로도 가능하다. 정부·지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고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김동석 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

이와 관련 김동석 토닥토닥 이사장은 “현재 어린이재활병원이 없어서 문제지 전국적인 중증장애아동들의 수요를 볼 때 세워지기만 한다면 재정 및 운영상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판단” 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장애아동에 대한 재활 포기는 결국 사회화를 포기하는 것으로, 장애아 비중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경우 결과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토닥토닥 활동 역시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장애아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병원 건립과 함께 보육과 교육에 관한 모든 것을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왜곡된 현실을 개선하는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한 뒤 “대전어린이재활병원은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고, 또 그 가족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책임져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단법인 토닥토닥은 20대 국회의원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희망의 날개’ 언약식을 통해 어린이재활병원의 조속한 건립을 위한 관련 법안 마련 및 예산확보에 적극 나서는 한편, 지속적으로 인식개선 캠페인을 펼쳐 시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의지를 결집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지난 4월엔 지방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추진모임을 결성해 대전뿐 아니라 울산·광주·전주·공주 등 전국적인 운동으로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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