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4.16] 그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숨쉬는 4.16] 그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굿모닝충청 세월호 공동기획 ‘숨쉬는 4.16’ (24)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 프로젝트’의 서영석씨를 만나다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6.06.19 10: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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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우산의 기억 1
초등학교 시절, 동생과 우산을 펴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기 놀이를 자주 했다. 우산을 펴고 뛰어 내리면, 우산에 가득 담긴 공기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우산은 나에게 날개였다.

우산은 내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세종시 해양수산부 앞에서도 노란 날개가 펼쳐졌다. 세월호 기억 노란 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서영석씨의 세월호 기억 행동 현장이다. 서영석씨는 올해 1월부터 점심시간 마다 세종시 해수부 청사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인양을 위한 피켓시위를 해왔다. 최근에는 노란 우산을 직접 제작해 판매를 시작했다. 수익금은 다시 우산을 구매해 나눔을 한다. 지금까지 세월호 유가족, 팽목항, 광화문 농성장, 전국의 세월호 1인 시위 현장 등에 노란 우산을 보냈다. 그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코드는 ‘우산’이다. 과연 ‘노란 우산’이 그에게 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우연히 시작됐어요. 5월부터 세월호 인양을 위해서, 해수부 앞에서 세월호 활동하는 분들과 점심 때 집중 행동을 시작했던 때였죠. 어느 날 갑자기 비가 왔어요. 사람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려고 펼쳤더니, 손잡이가 고장이 나 있던 거 에요. 그래서 함께 하는 분들과 세월호 기억 우산을 만들어 볼까? 시작했죠. 공장에 가서 견적을 내보니, 100개가 기본 제작이라는 거 에요. 우리는 고작 10명 뿐 인데... 한 명당 2개 씩 사도 20개 밖에 안 되잖아요. 어떻게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주문 양식을 만들고, SNS로 ‘세월호 기억 우산 공동구매’ 글을 올렸어요. 100개나 팔리면 다행이구나 생각했는데, 다음 날 주문이 몇 개 였는 줄 아세요? 무려 1000개였어요!”

   
   
   
 

천 개의 우산, 천 개의 바람
“말이 1000개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정말 놀랐어요. 주문 내역을 보니까 한 개, 두 개가 대분이었어요. 한 두 명의 사람이 모여 1000개가 된 거였어요. 한 쪽에서는 잊으라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행동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구나 생각하니 감동이었어요. ‘세월호에 대해서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에서 꿈틀 대는 분들이 정말 많구나. 잊지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실감을 하고, 희망을 갖게 됐죠. 작은 우산이 희망이 된 거에요.”

- 우산의 기억 2
학창시절, 예보 없이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면, 하교 길엔 엄마들이 서 있었다. ‘엄마들’은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우리를 기다렸다. 우산과 얼굴 사이 엄마를 확인하고 나면, 비 맞는 줄도 모르고 냅다 뛰었다.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우산은 따뜻한 기다림이었다.

서영석씨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사진작가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지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2014년 4월 16일의 순간, 그의 삶은 바뀌었다. 아직도 그는 그 순간이 ‘꿈’이었기만을 바란다고 한다.

“저도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에는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왜 꼭 저렇게 나서야 되나? 조용히 기억하고 혼자 하면 되지’.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대처하는 방식들이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2014년 5월 8일이었어요. 집에 돌아가서 뉴스를 보는데, 유가족들이 보도국장의 ‘교통사고’ 발언으로 방송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 영정을 가슴에 안고 서 있는 거에요. 그런데 한 발짝도 못가고 경찰에 막혀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9시 30분쯤에 여의도에 도착했어요. 유가족 옆에 서 있어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어요. 유가족들과 함께 청운동으로 이동해서 새벽을 보내며 노숙을 했죠. 그래도 그냥 옆에 있어주고 싶었어요.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날의 시간은 서영석 씨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일산에 살던 서영석씨는 아내와 함께 세월호 활동에 매진했다. 정부의 구조 대처를 규탄하고, 진상규명 서명을 받고, 미 수습가족이 돌아오기 바라는 피켓팅을 벌였다. 명절에도 고향이 아닌 광화문을 찾아 유가족과 함께 지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서영석씨와 가족들은 세종시로 이사를 오게 됐다.

참사의 원인이자 인양의 주체, 해수부를 기억한다
“세종에는 작년 12월에 내려왔어요. 아무런 연고도 없고, 처음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죠. 올 1월에 해수부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도 해수부 앞에서 시위를 안 하더라고요. 해수부야 말로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해수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해수부 직원들이요?  신경도 안 써요. 물론 그 사람들 입장도 이해가 되죠. 못 본척 한 거겠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짬이 나는 대로 매일 점심 1인 시위를 했어요. 그런데 재밌는 걸(?) 발견했어요. 뭔 줄 아세요? 해수부 직원들이 무단횡단을 한다는 거였어요.”

해수부 1인 시위 3개월 차에 서영석씨의 눈에 들어온 건, 점심시간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 이었다. 별 것 아니라면 아닐 수 있겠지만, 그의 눈에는 정작 해수부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무단 횡단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거슬렸다. 세월호 사고가 난 것도 아주 작은 ‘원칙’과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어떻게 보면, 기본을 안 지켰기 때문에 세월호도 일어난 거 잖아요. 구조의 기본, 안전의 기본, 매뉴얼의 기본 말이에요. 그런데 정작 해수부 사람들이 기본을 안 지키는 모습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기본적인 생활 안전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세월호 진상규명 피켓에 피켓을 하나 더 올렸어요. “무단횡단 하지 말자”고요. 어른들부터, 우리부터, 책임을 지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모두가 세월호 아이들에게 약속했잖아요.”

작은 것 하나 하나 넘기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서영석 씨. 그의 일상은 곧 세월호 였다. 1인 시위 뿐 아니라, 세월호 관련 영화상영회도 개최하고, 틈틈이 서명도 받고, 안산과 광화문, 팽목항을 다녀온다.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려리고 있는 부모님처럼. 그는 세월호의 현장에 우산을 들고 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우산의 기억3
대학시절, 선배가 말했다. “비가 오는데, 너는 우산이 없어. 그런데 너한테, 우산을 빌려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일까? 아니야! 우산을 접고 함께 맞아주는 게 진짜 친구지.” 어느 날, 비가 왔다. 우산이 없던 선배는 내 우산으로 쓱 들어왔다. “지난 번 말은 취소다! 우산은 비를 맞지 않기 위해 ‘함께’ 쓰는 거지. ”

지금도 서영석씨에게 세월호 우산을 주문하는 손길은 꾸준히 이어진다. 최근 2000개를 넘었다고 한다. 노란 우산을 기부하는 수도 더 커졌다. 서영석씨는 단순한 세월호 우산 주문·나눔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하기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잊지 않고 계시지만 또 한 편에는 “아직도 세월호냐. 아직 안 끝났냐” 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세월호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하는 분들과 논의를 했죠. “어떤 프로젝트가 좋을까? 노란 리본에 시민들의 세월호 메시지를 담아 제주로 가자”. 세월호의 종착지가 제주였잖아요. 제주에서부터 다시 세월호를 알리고 기억 하게끔 하자는 취지로 프로젝트를 준비했어요.”

서영석씨는 우산에 시민들의 세월호 기억 메시지를 받고 있다. 그 우산을 가지고 제주도에서 기억행동을 새롭게 시작할 할 참이다. 자발적으로 모이는 시민들과 함께, 사고로 별이 된 아이들의 소망을 제주 바람에 담아 낼 계획도 세웠다. 오는 18일 제주 성산일출봉인근에서, 세월호 기억 노란우산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세월호 노란 우산 제작 나눔이요? 언제 까지 할지 모르겠어요. 단 한 명이 주문하더라도 그때 까지 해야겠죠. 세월호 기억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받을 거 에요.제주에서 광화문으로, 안산 분향소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우산을 들 거 에요. 우산에 담긴 잊지 않겠다는 퍼포먼스로 전국을 누빌 거 에요. 세월호 진상규명이요? 10년 보고 있어요. 아니 10년이 더 걸릴 지도 모르죠. 끝까지 함께 할 거 에요. 유가족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유가족과 함께 우산을 쓸 거에요.”

서영석씨와의 대화가 이어지던 그날, 세월호 선수 들기는 실패했다. 세월호 특조위는 억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2년하고 2개월. 잊지 않겠다는 마음은 씨줄날줄로 촘촘히 메운 우산 천처럼 단단하고, 진상규명을 향한 의지는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우산살처럼 견고해진다. 서영석씨의 노란 우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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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1 2016-06-20 11:44:12
어지간히 햐~이 나라에 불행한 사람이 그들만 있는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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