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오동나무를 찾아가자, 산 비둘기 학교에도 들러보자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오동나무를 찾아가자, 산 비둘기 학교에도 들러보자
  • 이규식
  • 승인 2016.06.25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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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를 찾아가자, 산 비둘기 학교에도 들러보자

▲ 오동나무 사진=조현석

나는 아직도 오동나무를 찾아갔던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어떤 푸른 그늘이 필요했다
하여 찾아간 오동나무와의 인사는 아름드리 그 나무 허리를 한번 안아보았던 것

근처에서는 딸기나무 관리인인 검은 염소가
청동의 고삐를 잃어버린 것일까,
온통 딸기나무밭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말했다 나무 위쪽에 빠끔한 하늘을
그냥 흑판으로 쓰는 작은 산비둘기 학교가 있고 발 아래
뿌리가 뻗어나간 곳까지 일궈놓은 이십여 평의 그늘이 그의 삶의 전부라고

그 말을 들어서일까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먹는
오동나무 막국수가 얼마나 맛있던지
오동나무 따님이 내온 냉차는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때 계절은 참으로 치열하였다
염소의 두 뿔과 붉은 딸기가 얼마나 범벅이었는지
냇가에서는 돌과 잉어의 배가 얼마나 딴딴해졌는지

떠날 때 오동나무는 잎을 따 주었다
몇 번 사양을 했지만 푸른 날들을 잊지 말라며
내 주머니 속에 기어이 오동 잎 몇 장 꾸깃꾸깃 넣어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언덕 위 그 오동나무 그늘을 기억하고 있다
다리 건너 입구의 오동나무 편지통, 현관 앞 오 분 늦게 가는 오래된 오동나무 괘종시계, 진흙이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던 오동나무 구두, 부엌에서 들리던 오동나무 도마 소리…

- 송찬호, ‘오동나무’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이 시를 읽으며 잠시 도시와 문명을 떠나본다. 그리 어렵거나 깊은 메시지를 찾아볼 필요는 없다. 환상과 동화속 오동나무를 찾아 나서는 발걸음은 그래서 가볍다.

2009년 펴낸 네 번 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에 수록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온 라인, 오프 라인 여러 채널로 다양하게 인용되고 해석되며 읽힌다. 그만큼 독특하며 함의가 풍부하다.

시집 해설에서 신범순은 오동나무는 ‘푸른 그늘’을 경작하는 것이라면서 등장하는 여러 사소한 대상물 속에 우주적 전체의 일정 부분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이런 경작 개념은 여러 문화와 문명의 은유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오동나무 문화’는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이면서 포괄적이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쳐대는 이즈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동나무 철학, 오동나무 문화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삶과 구조 나아가 학교와 교육의 현실에 대하여 나직하지만 확고하게 시인은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딸을 낳으면 뜰에 오동나무를 심고서 성장하여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혼수로 보낸다는 풍습은 여전히 상징적이다. 오동나무는 우선 재질면에서는 물론 격조를 절제의 특성까지도 지녔다. 그래서 편지통, 괘종시계, 구두, 도마 등등 오동나무 문물의 쓰임새는 지금처럼 혼란스럽고 답답한 속세의 시름, 학교의 압박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한다.

가는 김에 하늘을 그냥 흑판으로 쓰고있는 산비둘기 학교까지 둘러본다면 더욱 좋겠다. 막국수와 냉차를 맛보고 오동나무 아름드리 허리를 한 번 안아본다면 더욱 흡족할 것이고.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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