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입맛을 다신다, 여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다시자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입맛을 다신다, 여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다시자
  • 이규식
  • 승인 2016.07.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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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조현석


입맛을 다신다,
여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다시자

가시처럼 털이 돋은 억센 호박잎, 꼭지 딴 청양고추, 홍고추, 깐 마늘 등을 씻는다 양동이에 수십 마리 미꾸라지를 넣는다 굵은 소금 한 줌 뿌린다 밑바닥으로 파고 들어가려 머리 부딪히며 서로 엉키는 미꾸라지들 잠시 후 잠잠해지면 호박잎 뒷면으로 마구 문지른다 체에 담아 찐득찐득한 진흙탕의 여름을 모두 씻어낸다 무쇠 가마솥에 푹 끓인 미꾸라지를 다시 체에 올린 후 국자로 으깨고 굵은 뼈와 잔가시마저 걸러낸다 된장과 약간의 고추장으로 조물조물 버무린 시래기와 토란대를 넣고 끓인다 대파와 양파 등을 넣고 한 번 더 부르르 끓어오르면 뚝배기에 담아 식탁에 올린다

길고 긴 여름 끝자락, 시원한 탕 요리로 시작한다
태양초를 잘게 다져 넣고 덥석 베어물기도 한다
따가웠던 햇살보다 독한 산초와 방앗잎을 첨가한다
번쩍 든 정신으로 올려다보는 하늘
깊이 모를 창공으로 잠자리 솟아오른다

- 조현석, ‘여름과 헤어지는 방법’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음식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음식을 두고 이런저런 품평이나 언급을 하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겨온 전통때문일까. 요즘 봇물을 이루는 맛집, 별미에 대한 관심 속에서도 문학에서 주제로 삼은 경우는 드물다. 문학 텍스트에서 뛰어난 감성과 서사로 우리가 먹는 음식의 맛깔스러운 식감과 아름다운 외양, 음식을 통한 인간관계의 소통을 그려낸다면 독자들의 안목은 높아지고 그로 인하여 일반인들의 맛에 대한 표현력은 증가하련만 시, 소설, 수필을 막론하고 음식에 관한 텍스트, 맛을 주제로 한 본격 문학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유연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않으려는 본성은,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그려내기 어려운 표현력, 어휘력, 상상력 부족은 비단 입시위주로 치달으며 자유로운 감성발달, 표현기능 신장을 저해하는 입시위주 학교교육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나 색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데 따르는 유, 무형의 불이익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과 피해의식, 오랜 봉건사회 이후 수십년 이어져 온 군사문화의 잔재인 경직, 통일, 획일성 그리고 음식에 관련된 이러저러한 품평과 의견표명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인식과 평가 같은 복합요인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는 풍성한 밥상, 스토리텔링이 넘쳐흐르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음식과 맛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표현을 애써 비껴가지는 않았던가. 겨우 표현한다는 것이 쫄깃하다, 담백하다, 식감이 좋다, 끝내준다 같은 몇가지 진부한 언사가 거의 전부이다. 수사법의 빈곤, 적절한 비유력 부족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가 가져오는 풍성한 맛의 표출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조현석 시인의 ‘여름과 헤어지는 방법’은 시로 쓴 추어탕 레시피이다. 꼼꼼하면서도 친절하다. 그러는 사이 입에 군침을 돌게한다. 시 초입부에서부터 입맛을 다시게 하는 내공이 돋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조리방법에 충실하면서도 행간에서 우러나오는 내재적인 리듬을 통하여 청각에서 미각으로 연결된다. 아울러 요리과정을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그려내는 동안 시각적 효과도 우러난다. 추어탕을 얼큰하게 끓여 먹으며 여름과 헤어진다지만 음식에 들어가는 갖가지 양념과 향신료는 이미 삶의 희로애락 그 자체가 아니던가. 1연의 산문체와 2연 운문형식이 제각기 기능하는듯 하면서도 적절하게 어울리니 추어탕 맛도 한결 살아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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