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문학현장의 원형과 미래의 가치
[시사프리즘] 문학현장의 원형과 미래의 가치
  • 김현정 교수
  • 승인 2016.07.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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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굿모닝충청 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지난 7월 8일 소정 정훈 시인이 마지막까지 머문 곳이자 대전 근대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고택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젠 정훈 시인의 ㄷ자 모양의 집과 그가 운영했던 혜남한약방, 그리고 그가 눈길 많이 주었을 아담하게 꾸며놓은 화단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훈 시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학문육성사업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대학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이다. 대전·충청지역에 연고가 있는 작고문인들의 고향시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채호, 신동엽, 정지용, 정한모, 오장환, 윤곤강, 정훈, 박용래, 한성기 시인들의 고향시를 만났다. 금산 가는 길에 있는 시비(「머들령」)를 자주 보아서인지 정훈 시인의 고향시가 더 눈에 들어왔다.(‘회향’, ‘귀향도중’, ‘어릴 적’, ‘못바리는 내 고향’, ‘사향’ 등)

그리고 “작가마당” ‘대전충남문학지도’ 연재기획 코너에 “‘머들령’의 시인, 정훈을 찾아서”를 쓰게 될 때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훈 시인이 태어난 충남 논산시 양촌면 인내리를 비롯하여 그가 다녔던 삼성초등학교, 휘문고등학교 등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정훈 시인이 조부가 잠시 기거하던 시절 전북 안성보통학교에 다니다 대전삼성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여 1927년(13회)에 졸업한 사실도, 이듬 해에 휘문고등학교에 거의 5: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사실과 당시 교지 “휘문”(1930년)에 시 ‘연꽃’과 ‘민요’를 발표한 사실도 이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훈 시인이 대해 좀 더 가까이 가게 된 것은 대전문화재단에서 공모한 ‘원도심 활성화 연구조사사업’에 선정되어 공동집필자로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때 지금은 허물어진 ‘혜남한약방’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정훈 시인의 유족을 만나 정훈 시인의 전기(傳記)와 에피소드 등을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정훈 시인은 이 지역의 문학 발전을 위해 물질적·정신적으로 많이 도와주었고, 그의 집에서 머들령문학회 동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들과 합평도 하고, 담소도 많이 나누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혜남한약방은 대전 근현대문학의 산실이자 대전의 작은 문학장(文學場)이었던 것이다. “대전문학의 시원”(2013)에는 대전삼성초등학교 -> 계룡의숙/광조사 터(옛 동구청 공영주차장) -> 혜남한약방 -> 정훈 시비(만인산 휴양림 입구) 순으로 정훈 시인의 문학탐방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생존 당시 있었던 원형은 이젠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혜남한약방’마저 얼마 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대전 문인의 문학현장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대전문학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5인의 문인(정훈, 한성기, 박용래, 권선근, 최상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성기 시인이 머무르던 집도, 박용래 시인의 집(청시사)도 허물어졌고, 권선근과 최상규 작가의 문학현장도 남아있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 앞다투어 그 곳에 연고가 있는 문인들의 문학현장을 잘 보존하고, 사라진 것들을 원형대로 복원하였거나 복원하려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번에 정훈 시인의 집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며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원형은 한번 훼손되거나 소실되면 원래대로 복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정기관도, 유족도, 문인들도 정훈 시인의 고택이 사라지게 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예산군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문학에 관심있는 30여명의 예산군민들과 함께 충남 서천과 보령으로 신석초와 이문구의 문학탐방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 탐방을 통해 아쉬웠던 점은 신석초의 고향에 ‘신석초 시인 생가터 표석’과 신석초 시인의 묘소의 이정표가 없어 표석과 묘소를 제대로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문구의 “관촌수필”의 배경임을 알려주는 관촌마을 초입에 세워진 ‘관촌마을 유래비’가 마을 안쪽으로 옮겨질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아쉬웠다. 그 지역문인을 홀대하고, 문학현장을 원래대로 잘 보존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가들의 넋과 혼이 살아 숨쉬는 문학현장의 원형을 잘 보존하는 것이 그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고, 그 지역의 미래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는 자양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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