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50년의 추억을 담은 상영관, 대전MCV아카데미 극장
원도심 한의약 거리, 숨은 맛집들과 인쇄상가 사이에서 빼곡히 얼굴을 내밀고 있는 대전 MCV 아카데미 극장의 간판은 어울리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멀티플렉스도 아니요, 작은 극장이라 하기엔 9개의 많은 상영관은 대전 원도심 속 특색 있는 문화 공간임에 분명했다.
대전MCV 아카데미 극장은 1964년 개관했다. 무려 올해까지 50여 년을 대전 원도심과 함께한 셈이다. 발 디딜 틈 없던 옛 원도심의 명성도, 주변 영화관들이 간판을 내리는 노을지는 모습도 모두 지켜봤다. 모두들 겪는 경영난도 대전MCV 아카데미를 비껴가지 못했다. 9개 상영관으로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3개 상영관으로 줄여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이달 말 간판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소규모 자본 극장의 위기는 이미 서울에서, 대구에서 수 년 전부터 벌어졌던 일이었다. 어쩌면 그래도 대전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꽤 오래 ‘버텨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일인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번 문을 닫는 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문을 닫는단다.
사라진 추억의 극장들
“인생은 네가 본 영화와는 달라, 인생은 훨씬 힘들지”
이 말은 게리쿠퍼나 헨리 폰더의 대사가 아니라 알프레도의 말이다. 영화를 무척 좋아한 소년 토토와 작은 마을 극장의 영사기사 알프레도. 그들이 나눈 깊은 우정은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준다. 영화 <시네마 천국>이 개봉된 지 30여년이 됐다. 토토의 성장기는 영화 팬들에게는 자주 읽게 되는 고전 같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알프레드의 부음을 듣고 난 이후, 극장을 회상하며 지나온 시절을 반추하는 토토의 애틋함. 그의 복잡한 감정처럼 대전의 한 극장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전역 건너편 골목에 있는 아카데미 극장을 말하는 것이다.
대전에도 추억의 페이지 속으로 들어간 영화관들이 제법 많았다. 지금은 NC백화점으로 바뀐 <시민관>, 마지막으로 상영했던 영화 “나바론2”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에는 스케일이 큰 전쟁영화로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조마조마하며 보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시험이 끝나는 날 단체로 영화 관람을 자주 했다. 교복을 입고 줄을 지어 걸어갔다. 두 줄로 나란히 걸으면 그 대열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학교에서 자주 가던 곳은 성보극장였다.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영화를 본다는 재미에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그곳에서 본 영화 중 하나가 “난중일기”다. 이순신 장군이 적을 물리치면 영화를 보던 도중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영화관에서의 박수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청순한 이미지의 파멜라 빌로레시가 10대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라스트 콘서트>는 중앙극장에서 봤다. 소피가 마렵다는 농담을 하며 소피 마르소를 우러러 보았고, 긴 머리칼을 날리던 브룩 쉴즈 등 당대의 여배우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환상속의 여자 친구를 꿈꾸었다.
앞에서 나열한 극장 뿐만 아니라 대전극장과 서라벌 극장도 연인들이 즐겨찾는 극장이었지만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으로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카데미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변에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1980년대 초반에 영화를 보는 도중 바닥에 기어다니는 쥐를 발견해 영화가 끝날 때 까지 발을 바닥에 딛지 못했다던 50대 중반의 아줌마도 있다. 아카데미 극장에서 영화간판을 그리는 일을 돕던 미술학도는 조용필 공연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극장에서 쇼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조용필이 대기실에서 무대로 나갈 때 자신이 문을 열어줬다고 했다. 이 선배는 지금도 술을 마시면 조용필과 아카데미에 대한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 홀로 극장은 존재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대형백화점 속에서 관객들을 유인하는 시대다. 열 개가 넘는 상영관이지만 선택의 폭은 많지 않은 시대다. 보고 싶은 영화는 볼 수 없고 자본과 유통의 힘으로 상영관을 독점하는 횡포의 시대에, 시네마 천국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아카데미극장이 엔딩타이틀을 올리며 시민들의 추억속으로 사라지지만, 영화 한편에 울고 웃었던 지난 시절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미스터 아카데미씨의 라스트 씬
시간과 사람이 만드는 추억은 공간에 쌓인다. 하얀 담배필터를 빨아들이며 상영시간을 기다리는 청년, 빨간 의자에 앉아 복작복작 대던 젊은이들, 데스크로 황급히 뛰어와 3분 지난 영화표를 끊는 영화광, 엄마가 갓 사준 콜라와 팝콘을 떨어뜨리며 우는 아이, 입장 시간 3분을 못기다리는 성격 급한 아저씨까지… 대전MCV 아카데미 극장전엔 천의 얼굴을 가진 관객들의 추억이 서려있다.
2016년 7월 26일. 폐관을 닷새 앞두고 다시 대전MCV아카데미를 찾았다. 평일 저녁, 대여섯명의 관람객이 추억의 의자와 데스크, 상영관 앞에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었다. 여전히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간에 맞춰 상영되고 있었고, 팝콘의 구수한 향은 이어졌다. 한 쪽 벽면에 가득한 영화 홍보물들은 폐점을 아는 듯 모르는 듯 관객의 손길을 기다린다. 7월 31일, 폐업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실감한다.
7월 31일, 대전MCV아카데미 극장의 마지막 상영작은 무엇이 될까? 어떤 영화가 되었든, 필자는 꼭 가볼 셈이다. 마지막 스크롤 한 자가 넘어갈 때까지 자리에 눌러 앉아 박수쳐 줄 계획이다. 50년 쉼 없이 돌아간 필름들을 위하여,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추억을 위하여, 지금껏 잘 버텨준 고마움에 대하여, 함께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대하여… 굿바이, 미스터 대전MCV아카데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