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석의 新만인보] ‘평등회복국민행동’ 절실한 한국사회
[나정석의 新만인보] ‘평등회복국민행동’ 절실한 한국사회
  • 나정석 대기자
  • 승인 2016.08.0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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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나정석 대기자] 주대환 선생은 젊은시절부터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절은 시절의 기본 철학과 현재의 한국사회를 보는 안목이 약간 수정돼 있지만 항상 전문가 그룹과 공부하며 자그마한 일이라도 한국사회에 더 나아지는 사회풍토와 철학이 깃들어 지기를 소망하며 살고 잇다. 한 때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조봉암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으로 죽산선생의 재평가를 위한 저술과 학술토론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또 사회민주주의 연대 고문으로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 그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격차해소를 위한 해법, 왜 중향평준화인가?

1. 젊은 시절 우리가 생각한 사회주의는 평등 가치를 제일의(第一義)로 하고 있었다.
‘중향평준화’라는 말이 낯설지만,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 교사들의 임금이 너무 높고, 그들이, 특히 그들 중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상위 10%에 속한다는 현실 인식에서부터 그들의 임금과 연금을 줄여나가고,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과 연금을 올려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줄이자는 취지에 크게 공감한다.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임금과 소득의 격차가 근간에 너무 크게 벌어지고 있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벼랑 끝에 선 것 같다. 수십 년 나라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 온 한 사람으로서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상황의 개선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전부터 노동운동의 뒤를 따랐던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확대하는 데 오히려 일조를 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항상 당혹감과 자괴감을 느끼고,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거듭 반성, 사색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노총, 민주노총이라는 앞선 두 세대의 노동운동이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하다면, 차세대 노동운동이 탄생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생각도 하고, 만약 그들이 위선적이고 반동적인 집단이 되었다면, 북을 치면서 그들을 공격하는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다. 예전의 동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동지와 적을 다시 구분할 때인 것 같다.

2. 젊은 시절 우리는 사회주의를 노동운동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런 우리를 ‘빨갱이’로 오인해 탄압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권력의 근처에 있기도 하다. 공안검사의 좁은 시야에 이 나라의 미래가 보일까 싶다. 탄압 때문인지, 우리의 노력이 부족한 때문인지, 한국의 노동운동에는 사회주의라는 소울(soul)이 접목되지 않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특이하게 행태는 전투적이지만 철학은 빈곤하고, 단기적이고 협소한 조합원 이익 외에 추구하는 가치는 없다. 이른바 ‘열사(烈士)’를 그토록 많이 배출했지만 그럴수록 국민들의 존경과 도덕적 영향력은 멀어져 갔다.

사회주의자들은 ‘연대임금제’라는 유럽 선진국에서 실천된 오래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토양에서 그런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거기에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나라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는 것다.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와 문화, 제도와 관습 등을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것은 쉽게 후진성이나 전근대성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문제를 전근대성으로 파악하고자 한 모든 이론은 파탄하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전근대의 잔재가 이렇게 철저히 청산된 경우가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격차는 적나라하고 지나치게 치열한 자본주의적, 자유주의적 경쟁의 결과가 아닌가? 그 모든 특수성을 갖고도 선진국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의 독특한 선진국으로서, 구대륙 끝의 신대륙으로서 한국을 연구하고, 한국에 맞는 처방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3. 우리나라는 원래 ‘자유와 평등의 나라’로 건국됐다. 자유와 평등은 대한민국의 유전자였다. 그러므로 평등하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흔히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만, 다이내믹스는 어디서 왔는가? 평등, 특히 기회의 평등에서 왔다. 기회의 평등이 흔들리자 바로 수저론이 나왔다.

그리고 헬조선론이 나왔다.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야 한다고 본다. 평등 가치는 먼 나라에서 가지고 온 이야기가 아니다. 평등 가치는 현재의 진영 구도를 넘어서서 매우 깊은 문화적 뿌리와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새롭게 가지고 와야 할 것은 ‘연대(solidarity)’이다. 현대 사회주의 운동에서는 자유, 평등, 연대를 3대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원래 자유와 평등에 이은 세 번째 가치를 ‘형제애(fraternity)’라고 했다고 한다. 연대나 형제애나 같은 이야기다. 그렇다면 누가 형제인가? 형제의 범위가 매우 다를 수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아마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형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형제가 아니면 죽일 수도 있는 것이라, 혁명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에는 부모와 형제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아닐까? 건국에 이르는 과정도 험난했고, 태어나자마자 어린아이가 홍역을 앓듯이 신생국 대한민국이 한국전쟁이라는 극한 체험을 했기 때문인지, 이 나라는 흡사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이 모여들어 사는 나라처럼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은 애비 없는 후레자식의 나라였다. 박정희라는 걸출한 지도자, 또는 독재자부터 열사의 아라비아 사막 공사판에서 일한 용접공이나, 80년대의 건방진 데모꾼 학생들까지 모두 고아들이었다. 존경하는 어른이 없고, 스승이 없고, 사랑하는 형제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 사회문화적 풍토 위에 자란 노동운동에도 역시 형제애가 없었다. 노동운동은 계급 또는 같은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모두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만 수백 명 조합원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왜 그랬을까? 오래 그 생각을 해보았다. 계급은 형성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계급을, 계급이라고 부르는 진보진영의 계급 담론은 허구의, 수입된, 우리나라 현실에 뿌리박지 않은 추상적 관념에 불과했다.

4.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다시 평등한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농지개혁을 다시 할 수도 없고,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자유와 평등의 나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훨씬 복잡한 조치들이, 미국 현대사를 연 ‘뉴딜정책’ 같은 대변화가 필요하다. 그 중 하나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더 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귀족노조’만 공격해 그들의 양보만 받아내면 될까? 여러 해째 그렇게 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향평준화론도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되리라 믿는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자면, 자칭 타칭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이라고 할 중소기업 사장들과 자영업자들의 이익을 어느 정도는 배반해야 하지 않을까?

먼저 최저임금을 더 인상하자고 주장해야 할 것 같다. 또 외국인 노동자의 숫자를 적절하게 통제하고, 불법 체류자를 철저히 단속해 시장논리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3D업종과 건설 현장의 임금이 오르도록 하면 안 될까? 하청 중소기업의 사장들이 망한다고 아우성을 치더라도 불법 체류자를 쓰면 더 강력하게 처벌하면 안 되나?

그러면 산업의 여러 부문에서 구조조정이 되기도 하고, 기업들이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일도 더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 청년들이 하청 중소기업과 건설 현장의 일자리에도 취업을 하게 된다면, 청년들의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을까? 아직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청 중소기업 사장들이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사업이 망한다고 아우성을 치더라도 그들의 부당 노동행위 단속을 철저히 할 수는 없을까? 노동조합의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새로운 노동운동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2018년 성립할 정부가 지원하는 제3의 노동조합이 중소기업,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을 조직할 수는 없을까?

평등으로 되돌아가자는 국민운동, ‘Re-평등 사회운동’, 그 핵심으로서 ‘Re-평등 노동운동’이 나타나서 이 나라의 뉴레프트 진영을 형성하고, 한국의 노동과 진보가 민족주의 유전자를 뺀 좌파, 선진국형 진보,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좌파, 진정한 좌파가 되는 날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진보는 진화해 지금의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노동조합을 배신할 수 있고, 재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압박하여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벽돌공과 의사가 다함께, 대한민국 시민 형제가 되는 그런 날을 상상해본다.

나정석 대기자.

서울대 독어독문과 졸업.
월간지 코리아뉴스매거진 발행인.
전문기업 이노프트 전 대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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