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5막이 3막에서 끝난다 해도…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5막이 3막에서 끝난다 해도…
  • 이규식
  • 승인 2016.08.0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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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단풍은 떨어지고 묻혀 뿌리로 돌아간다. 엽낙귀근 (葉落歸根). 사진=이규식

5막이 3막에서 끝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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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너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네 마음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이니까 너는 그것을 쉬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만일 죽음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외관과 관념을 사리하고 죽음 자체를 직시한다면 죽음이란 자연의 한 이법에 지나지 아니하고 사람은 그 이법 앞에 겁을 집어먹은 어린애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죽음은 자연의 한 이법이요 작용일 뿐 아니라 자연을 돕고 이롭게 하는 것이다.

철인이나 법학자나 장군이 우러러 보이면 이러한 사람으로 이미 죽은 사람을 생각하라. 네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볼 때에는 네 조상 중의 한 사람, 옛날 로마 황제의 한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러면 너는 도처에 네 현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라 -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대체 어디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네 자신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너는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머물러 있으라. 적어도 치열한 불길이 그 가운데 던져지는 모든 것을 열과 빛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이러한 세상의 속사일지언정 그것을 네 본성에 맞도록 동화시키기 까지는.

세상은 한 큰 도시, 너는 이 도시의 한 시민으로 이때까지 살아왔다. 아, 온 날을 세지 말며, 그 날의 짧음을 한탄하지 말라. 너를 여기서 내보내는 것은, 부정한 판관이나 폭군이 아니요, 너를 여기 데려온 자연이다. 그러니 가라. 배우가, 그를 고용한 감독이 명령하는 대로 무대에서 나가듯이, 아직 5막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고 하려느냐?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3막으로 극 전체가 끝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작자의 상관할 일이요, 네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기쁨을 가지고 물러가라. 너를 물러나게 하는 것도 혹은 선의에서 나오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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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페이터,「페이터의 산문」 부분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월터 페이터의 산문을 나이 들어 다시 읽는다. 구절구절 닿아온다. 옛날식 어투와 표현의 번역으로 다소 거리감이 있다해도 이런 글에는 이런 문체가 더 어울릴 수 있겠다.

고등학교 시절 이 작품을 공부할 때는 당면목표가 예비고사나 대학 본고사 같은 시험출제 여부여서 글의 교훈이나 삶과의 연관성 그리고 종국에 지향할 메시지 같은 데에는 관심이 비껴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주로 이 글의 소재, 주제, 문체, 지은이 소개 그리고 “밑줄 쫙...”같은 삭막한 해부 일변도여서 더욱 지루하고 재미없는 수업의 인상으로 오래 남아있었다. 당시 국어 선생님들을 비롯한 교사들의 연세가 지금 생각하니 대략 40대 초반 쯤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그때 인상으로는 예순을 훨씬 넘은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즈음 모든 것이 궁핍했던 일상의 고단함에 지친 40대 초반 선생님들로서는 이런 문장을 가르치며 나름 삶의 교훈과 충고를 제자들에게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 나이를 훨씬 넘어 다시 읽게 된 페이터의 산문은 그래서 더 큰 공감을 불러오고 나름 한 두 마디 덧붙일 이야깃거리도 생겨나는가 보다.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대체 어디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네 자신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너는 네 생명이 속절없고 너의 직무, 너의 경영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 구절이 특히 오래 기억된다. 

무엇을 하든 짧은 기간, 한정된 시간에 벌이는 일이건만 그것이 마냥 오랜인듯, 영원한 것처 럼 생각하면서 거드름을 피우는 사이 골은 깊어지고 급기야는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를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본다. 

12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월터 페이터는 평생 옥스퍼드 대학에 머물렀던 허무주의적 유미론자, 인문학자였는데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그의 삶과 죽음, 명성과 허명 그리고 내면의 고뇌를 다스리는 법을 설파한 명문장의 가치는 새롭게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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