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손님이 된 데에 변명거리가 있기는 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줄곧 교회를 다녀 나름대로 뼈 속까지 기독교인이지만 외지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약 10년이 넘도록 수원, 서울, 일산을 전전하였다. 언제 이 지역을 떠날지 모르는데 한 교회에 등록을 하여 가족이 되기가 망설여졌었다. 아무래도 교회를 손님으로 다니다 보니 작은교회 보다는 큰교회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대체로 그 교회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넌지시 헌금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경기도의 어느 큰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해야겠면서 “요즘에는 국밥도 한 끼에 5000원이 넘는데, 헌금으로 딸랑 1000원만 하는 분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헌금이란 하나님께 바치는 신성한 재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목사가 헌금의 다과를 논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놀랄 만큼 큰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출입구에 헌금함을 두는 편리함을 택하는 대신 굳이 예배시간에 헌금바구니를 돌리는 불편한 진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바로 건축헌금 얘기이다. 일부 교회는 교인들에게 1년에 건축헌금으로 얼마를 낼 것인지를 작정해서 써 내라고 한다. 지금 천막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건물 안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데 건축헌금이라니? 엄밀히 말하면, 건축을 위한 헌금이 아니라, 대출금 변제를 위한 헌금이다. 일부 교회는 은행의 대출을 받아 토지를 구입한 후 그 토지에 건물을 올리고, 그 올린 건물을 담보로 신규 대출을 받아 그 대출금으로 기존 대출금을 변제하는 등 대출을 달고 산다. 교회가 비축해 놓은 자금으로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단 대출을 받아 건물을 올린 후 교인들에게 건축헌금을 독려하여 대출금을 변제하는 것이다. 뭔가 순서가 뒤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서울에서 내가 오래 다니던 한 교회는 교인이 많았지만 건물이 매우 허름하였다. 아마도 20년 내지 30년은 되어 보였다.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보려면 반드시 예배시간보다 일찍 가야 했는데, 늦게 가면 자리가 없어 간이의자에 앉아 불편하게 예배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교인은 많은데 공간은 좁아 어쩔 수 없이 예배를 7, 9, 11, 14시로 나누어 여러 차례 보았다. 많은 사람이 모여 한 번에 예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여러 번 모여 여러 차례 예배를 보는 빠른 순환식 시스템이다. 물론 대형교회의 경우 대다수 이런 시스템으로 진행되지만, 대체로 11시 예배에만 교인들이 많고 그 외의 시간에는 교인들이 반도 차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교회는 각 예배시간마다 교인들이 꽉꽉 들어찼다. 4차례에 걸친 모든 예배는 담임 목사님이 진행하였다. 이 교회는 내가 서울에 살기 시작하고 서울을 떠날 때까지 다녔기 때문에 손님으로서는 가장 오래 다닌 교회에 속하였는데, 그 5년 동안 단 한 번도 건축헌금에 대한 얘기가 나온 적이 없었다. 헌금은 성전을 넓히는 데 사용되기 보다는 해외 선교를 지원하는데 사용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교회는 왜 성전에 집착할까. 우리나라 사람이 ‘내 집 마련’에 집착한다고 하는데 그 심리와 일맥상통하는걸까.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받아주는 유일한 휴식처’라고 믿고 있었는데, 요즘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넘어서기에 문턱이 너무 높아진 것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