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꽃은 질 때 지고 사람은 떠날 때에 떠나야 하는데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꽃은 질 때 지고 사람은 떠날 때에 떠나야 하는데
  • 이규식
  • 승인 2016.08.19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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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여좌천 벚꽃. 사진=이규식

꽃은 질 때 지고 사람은 떠날 때에 떠나야 하는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형기 ‘낙화’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열일곱 살 고등학생 신분으로 문단에 등단한 고 이형기 시인. 십여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시는 거듭 애송되면서 자연과 섭리, 세상사의 덧없음과 인간욕망의 무상함, 집착의 허무한 결말을 일러준다.

“이 시의 화자는 꽃이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삶에서 이별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꽃이 지는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것 처럼 이별 의 아픔뒤에 성숙이 도래한다는 진실을 이야기 한다.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진리를 연결, 새로운 시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로 시작하여 형식, 운율, 주제 그리고 시인소개와 구성상의 특징 등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시작품 분석학습의 예로 흔히 인용된다. 시를, 문학작품을 그 자체로 즐거움의 대상으로 감상하는 대신 주제, 소재, 지은이의 의도 같은 해부식 분석으로 공부했던 수험생들이 입시가 끝나면 시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오늘날 시가 처해있는 곤경이나 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현상도 고등학교 시절 입시준비로 익혔던 이런 접근방법에 대한 거부와 부정적 인식이 한 몫 거들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풀어낸다. 그중에는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고 연목구어(緣木求魚), 생뚱맞은 논리를 끌어오기도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1연의 이 3행만으로도 이 시의 완성도는 빛을 발한다. 이별의 슬픔을 내적 성찰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등의 부가해설 없이도 그 자체로 완결된 선언적 언사의 힘은 크다.

지금 우리 사회 우리 주변에 이 첫 연을 듣고 새겨야 할 인사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적절한 때, 약간 아쉽다 싶을 상황에 자리를, 직위를 떠나는 모습은 점차 찾기 어려워진다. 이런저런 고위직책을 쇼핑하듯 섭렵하며 자신의 능력과 우월함을 즐기는 소위 지도층 인사, 유명 인물들이 결국 자초하는 황망스러운 몰락과 퇴출을 지켜볼 때마다 이 시의 첫 연이 떠오른다.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배가 80%만 차면 숟가락을 놓으라는 아버지가 그렇게 야속했다. 한창 먹을 나이에 타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밥상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 뒤 생각하니 아버지의 충고가 옳았다. 80% 충만함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삶의 자유로움, 약간 모자람이 주는 만족을 이해하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나날이 욕망의 상승과 확장을 통제할 힘을 잃어가는 이즈음 우리 사회에서 이형기 시인의 ‘낙화’는 그 어떤 처세술이나 자기관리 메시지보다도 함축적으로, 감성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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