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선운사, 동백 그리고 기나긴 감성의 실타래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선운사, 동백 그리고 기나긴 감성의 실타래
  • 이규식
  • 승인 2016.08.2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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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민영덕

선운사, 동백 그리고 기나긴 감성의 실타래

선운사에 왔다
동백은 붉디붉은 꽃숭어리를 왈패처럼 피워 올린다
사색死色이 깊다

작년에 진 동백씨를 산새들은 아직도 쪼고
노파의 흐트러진 머리칼 같은 안개는 산머리에서 흘러내리고
나는 대웅보전, 막돌 초석 위에 얹힌 두리기둥의 배를 만지고

얼마나 간절하면 죽어 꽃으로, 새로, 바람으로
다시 나는 걸까

뼈 삭는 기도가 하늘에 닿는 일 있어
내 안에도 내원궁 이르는 길 있어

이 허방에서 붉은 노을을 지고 올 늙은 산객山客을 기다리는 것인가

옆구리를 푹푹 파내며 도리가 되어 누워 있는 것인가

- 유현숙, ‘씨동백’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유현숙 시인과의 대화>

1. 선운사의 매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다른 산사에 비하여 시의 주제나 현장배경으로 많이 활용되어 오는데 유현숙 시인의 개인적인 느낌이나 인상에 비치는 선운사의 매력은 어디에 있나.

-선운사라고 쓰고 선운사라고 읽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미당 서정주 시인을 만난다. 아직 피지도 않은 동백꽃의 붉디붉은 꽃숭어리에 매혹되기도 하고 멀리서 들리는 육자배기 가락이 들리기도 하여 그의 시적 행보를 따라 걷게 될 것이다. 그만큼 선운사는 천년고찰로서 뿐만 아니라 문학의 은유로도 강렬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도 여행길에 들렸던 선운사, 부근 동백장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대웅전 앞에서 만났던 산마루를 흘러내리던 안개… ‘노파의 흐트러진 머리칼처럼’ 가슴을 신산하게 파고 흔들었다.      

2. 선운사를 노래할 때 동백이 빠질 수 없다. 꽃무릇도 이에 못지 않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동백이 여러 시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할 수 있는 연유나 이미지의 특징은 무엇인가.

-동백의 이미지라 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선 눈 속에서 피우는 동백의 처연하고 강인한 아름다움을 꼽을 것이며 또한 꽃숭어리가 지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모가지째 똑똑 떨어져 뒹구는 그 슬픈 꽃송이의, 떨어져 누워서도  결연하고 붉은 의지, 아닐까.

3. 이 시에서는 허무의 느낌, 대체로 사그라지는 물상, 다시 부활 소생하는 자연의 이법과 현상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형상화가 강조되는데 이 시를 통해서 시인이 삶에 부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허방’이라는 것이 주는 큰 허무 앞에서 화자는 제 곤궁한 삶에 있어서 스스로 서까래를 받쳐 줄 도리가 되어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늙은 산객이 어느 날 지고 올 붉은 노을 한 짐을 머리에 받아 이겠다한다. 화자에게는 아직도 삶에 대한 강렬한 미련과 애착, 의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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