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기자의 눈] ‘덕혜옹주’와 동병상련 단상
    [시민기자의 눈] ‘덕혜옹주’와 동병상련 단상
    • 홍경석
    • 승인 2016.08.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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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수필가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굿모닝충청 홍경석 수필가] 덕혜옹주(德惠翁主)는 고종 임금의 고명딸로 태어났다. 그랬으니 고종께선 생전에 그 공주님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셨을까! 하지만 간악한 일제는 덕혜옹주의 편안한 삶을 허락지 않았다.

    1925년에 일본으로 끌려가 쓰시마 섬 도주의 후예인 다케유키와 강제 결혼한 덕혜옹주는 급기야 조발성치매증(망상, 환청, 와해된 언어, 정서적 둔감 등의 증상과 더불어 사회적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신과 질환)까지 앓으며 조선으로의 귀국만을 오매불망 꿈꾼다.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결혼 후 병세가 더욱 악화됨을 물론이요 이혼과 딸의 죽음 등 비극은 더욱 이어졌기 때문이다.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조선의 제26대 왕(황제) 고종(高宗)과 궁녀인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측실이었기 때문에 옹주(翁主)라고 호칭했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그의 모친인 양귀인은 한 번도 자신의 딸 이름을 부르지 못 한다. 그건 자신보다 옹주의 신분이 높은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진한 아픔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 귀인은 평생토록 자신의 딸 이름을 부르지 못 하고 죽은 반면 나는 엄마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불러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덕혜옹주는 자신이 낳은 딸 정혜가 자신의 엄마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원망하고 자신에게 조선인의 피가 섞였다는 걸 부정하는 외에도 꽃다운 나이에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되고부터는 분명 삶에 대한 최소한의 의욕조차 사라졌음이리라 쉬 유추된다.

    영화 <덕혜옹주>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대목은 신문사 기자로 나오는 김장한(박해일 분)의 불변한 의리(義理)다. 그가 없었다면 덕혜옹주의 대한민국으로의 귀국 역시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었다.

    김장한(金章漢)은 고종 황제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였으며 덕혜옹주의 약혼자였다고 전해진다. 고종이 덕혜옹주와 어릴 때부터 정해 놓은 약혼자였지만 고종이 의문의 독살을 당하면서 약혼은 깨지고 말았다.

    김장한의 형은 김을한이며 박정희 정권 당시 기자로써 덕혜옹주의 귀국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선 본인이 기자로 등장하는데 이는 관객의 재미와 몰입도 차원에서 부분 각색을 한 걸로 보이니 크게 탓할 건 아니지 싶다.

    영화에선 또한 을사오적(乙巳五賊) 이완용 등 매국노들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조선 말기 일제의 조선 침략과정에서 일제가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 측 대신 가운데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대신을 뜻한다.

    즉, 박제순(朴齊純, 외부대신), 이지용(李址鎔, 내부대신), 이근택(李根澤, 군부대신), 권중현(權重顯, 농상부대신)과 이완용(李完用, 학부대신)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이들 매국노들은 그 후 어찌 되었을까?

    먼저 이완용은 한일합병 이후 우리 민족의 숭고한 3.1만세운동마저 비판하는 글을 써서 후작의 작위를 얻었다. 박제순은 이후 총독부 중추원 고문의 자리에 올랐다.

    권중현은 중추원 고문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역사를 왜곡하는 조선사편수회의 고문이었다. 이지용은 을사조약 서명에 찬성을 하였고, 한일 합방 이후에는 일본으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고 호화롭게 살았다.

    이근택 역시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자작의 작위를 얻었다. 다만 야속한 건, 이들 매국노들이 암살 등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 같이 자연사했다는 것이다.(이런 걸 보면 참으로 하늘도 무심하다=(天道無心)!)

    영화 <덕혜옹주>에서 일제의 주구(走狗)로 등장하는 한택수(윤제문 분) 역시 매국노의 전형적 작태처럼 보통 간악하고 괘씸한 자가 아니다. 따라서 후안무치의 정점인 이 자를 보자면 <채근담>에서 강조한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권력에 편승해서 사는 자는 세상이 바뀌면 그 이름조차도 잊히고 만다. 그에 반해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다손 치더라도 진정 애국과 의리를 지킨 사람은 사후에도 존경의 반열에 올라선다.” 김장한이 덕혜옹주에게 평생을 지킨 의리, 그건 우리 모두 본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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