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황무지 된 가야샤지·남연군 제모습 되찾아야
[시민기자의 눈] 황무지 된 가야샤지·남연군 제모습 되찾아야
명덕사(明德祠) 항공사진 발굴 ②
  • 이기웅
  • 승인 2016.09.1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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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남연군묘 명덕사

[굿모닝충청 이기웅 시민기자]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소도화된 상가리
1868년 오페르트에 의해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일어나며 상가리를 완벽하게 통제하게 된다.
삽교천의 상류로 70km 먼 길이지만 바닷길에 접해있었던 가야산은 남연군묘로 통할 수 있는 4곳에 보루를 설치하고 중무장한 포수 출신 200여 명의 병사가 철통 같이 방어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의 지명 속에 고리안 등 (보루)가 있던 곳은 대원군의 흔적은 지명에 남아 있다.
당시 상가리에 외부에서 통하는 도로는 완벽하게 차단되었으며 주민들은 세금과 군역을 면하거나 기피하는 등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덕산현감은 치외법권적인 작은 소도시인 상가리를 조사할 수 없었으며 군역 등 면해도 그러려니 했다고 한다. 가동은 (상가리) 완벽한 소도화 도시였던 것이다.

고종 1년(1864년8월 17일)
대왕대비가 사대부가의 묘의 양호를 불법적으로 점유하는 것을 엄금하다.
사대부가의 묘촌(墓村)에 양호(養戶)가 한정이 없는 것은 실로 군정(軍丁)이 허액화(虛額化)되는 폐단의 근원이 된다.

남연군의 묘촌에는 몇 백 호(戶)나 되는 많은 민호들이 군역(軍役)이나 환상(還上)에 한 번도 응역(應役)하지 않아도 본읍(本邑)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보면서 애당초 말도 꺼내지 않는다. 대원군은 언제나 이런 것을 근심하고 불안해하면서 앞으로 투탁해 들어갈 자들이 몇 배나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대원군의 본뜻이겠는가?

본도(本道)로 하여금 해읍(該邑)에 신칙하여 원래 정해준 수묘군(守墓軍) 이외에는 전부 군역이나 환자의 호역(戶役)에 충정(充定)하게 하여 법이 일체로 행해지는 뜻을 보이라.

그리고 사대부가의 묘촌의 양호도 낱낱이 조사하여 군액에 충정하고, 감히 종전의 버릇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행회(行會)하게 하여 제도(諸道)에 엄히 신칙하고 성책(成冊)을 수정하여 계문(啓聞)하게 하라.”

가야산의 흥성대원군
1846년 연천의 남연군묘을 명당에 면례하고 한식과 추석 때가 되면 차례를 직접 모시거나 허민이라는 참봉이 제사를 모시기 위해 상가리에 거주하게 된다.

운현궁의 가신인 허민은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청나라에 있을 때 남연군묘의 참봉으로 있었으며 당시 현감의 폭정에 주민들에 편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이 마을을 방문하면 제수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며 윤봉구의 후손인 윤철보의 집에 머물거나 마을 주민들과 교류를 한다.

마을에는 대원군과 관련된 건축물이 2곳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고종의 5촌 족하인 이기용이 남연군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당시는 귀하던 자동차와 말마차를 이용하여 마을에 방문하는 모습을 마을 어른들은 아직도 추억하고 있다.

한편 1922년 덕산군수 안영식 유생 김봉식이 궁내부 대신 이재극에 보낸 탄원서를 보면 도박에 빠져 지내던 이기용은 남연군묘 앞의 송추 3만평을 팔아버리기도 한다.

황손 이광과 명덕사
이광은 사동궁(寺洞宮)에서 의친왕의 7남으로 태어났는데, 생모는 사동궁의 간호부로 송은점(宋恩点)이었다.

의친왕의 7남인 이광(1921-1952년)은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집되어 신경쇠약에 걸려 의친왕비(송씨)가 직접 남연군 묘소가 있는 덕산면 상가리에 데리고 가서 그를 요양시켰는데, 의친왕비의 지극정성으로 그가 신경쇠약에서 회복하게 되었다는 당시 기사도 있어 일제강점기에도 왕실에서 사용할 정도로 건축물은 잘 보존이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6.25전쟁 중인 1952년 신선대(神仙臺)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하였는데, 당시 32세라는 젊은 나이였다.
제각의 옆에 있던 부속건물은 70년대 후반까지 사람이 거주했지만 헐려 매각하게 된다.

가야사지는(명덕사) 활용방안  
가야사지 전체면적 2만938㎡중 허가받은 발굴 면적은 극히 일부이며 지금까지 발굴한 면적은 전체면적의 15%에 불과하다.
예산군에서 전면 발굴하기에는 사업비를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백제시대의 거대한 가람 가야사와 그 터에 있는 제각의 온전한 옛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지금까지의 발굴 현장은 발굴 후 복토하는데 발굴 전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무엇을 할 것인지 하는 고민이 있어야 하며 보존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문화재는 지역을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가야사지의 문화재 보존활용 원칙이 현장 노출형이어야 하며 유물과 박물관 역시 부여와 공주가 아닌 그 현장을 지켜야 한다.

막상 파고서도 해당 유적을 어떻게 정비하며,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하는 활용에 대한 고민 혹은 철학은 부재한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잡초로 뒤덮힌 발굴 현장을 가보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현재 가야사지는 발굴 후 복토하고 엉망이 되어버린 드넓은 유구를 보면 안타깝다.
황무지로 변해버린 가야사지와 제각 터 발굴 전에 보존과 어떤 방법으로 지역을 위해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문화재 혜택 지역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역사를 찾고 오늘을 비추는 소중한 작업에 예산군의 행정적 도움이 절실하다.
일제강점기와 50년대 가야산과 상가리를 찍은 개인소장 사진과 항공사진과 문화재 자료로 더 발굴하여 전시하고 활용했으면 한다.

오늘날 다양한 콘텐츠을 통해 활용 가치를 지닌 문화재는 전쟁터다.
문화와 문화재 나라와 각 지자체가 빼앗고 되찾기 위해 전쟁 서슴없이 벌이고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이다.

가야산지역의 왕실과 불교문화재 활용되어야 하며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관광객들에게는 쾌적하게 문화재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재 보존과 보호인 것이다

가야산에 가야사와 남연군묘의 제각 그 흔적은 이제 없다. 이야기마저도 잊혀지고 별반 유구도 찾을 길 없다.

다행이 남아 있는 석탑과 석등 예산삼층석탑과 보덕사 석등 덕산석탑 덕산요령 등 있지만 이름도 빼앗기고 제자리도 잃은채 보덕사·학교·박물관 수정고에서 안태지(安胎地)로 돌아가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가야산의 문화유산은 덕산과 해미 운산 등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더불어 그 혜택은 가야산 권역의 지역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가야사지와 보원사지 남연군제각 발굴 자료와 입지 등을 통해 우리들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으며, 향후 가야산권역 특히 상가리는 역사문화의 힘과 이를 통한 도약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내년 초 2대 천자지지 “명당”을 주제로 박희곤 감독에 의해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예산은 100억 규모로 기획과 시나리오 준비에만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예산군은 침체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영화사에 지원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이야기의 중심이 가야산이 되고 세트장이 만들어지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할 것이다.

각 지자체가 미디어에 집중한다.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로 집중되는 문화에 반해서 영화를 통해 지역의 소규모 축제를 기획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좋은 관광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서산시 성완종 국회의원(서산·태안)을 중심으로 보원사지와 해미읍성을 묶어 가야산의 일부를(예산군지역제외) 세계유산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서산과 예산에 걸쳐 있는 가야산은 장벽이 아닌 하나의 문화권으로 예산군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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