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4.16] 참 착한 선물
[숨쉬는 4.16] 참 착한 선물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굿모닝충청 세월호 공동기획 ‘숨쉬는 4.16’
  • 스토리밥 작가 협동조합
  • 승인 2016.09.23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고향과 가족이 생각나는 추석명절. 긴 연휴의 여운이 남아있는 가운데, 여전히 가슴에 품은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부모들이 많다. 이달에는 가상의 꽁트로 세월호 학생들을 돌아본다.

집 앞마당을 서성이던 할머니는 느티나무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얀색 승용차가 큰 아들의 차라는 사실을 금세 눈치챘다. 늘 그랬다. 차가 마당에 들어오기 전에 할머니는 백미터 전방에 있는, 시골 마을버스 정류장이 된 느티나무로 향했다. 손자 진욱이가 먼저 내리고 승용차는 천천히 마당에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석진은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투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별일은 없고?”
“네. 건강은 어떠세요?”

“늙은이가 늘 그렇지”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할머니는 진욱이의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당에 들어섰다.

“니 할아버지는 이게 니 아부지 찬지 남의 찬지 아직도 구분을 못한단다”
“할머니, 이런 차가 한 두대가 아니잖아요”

“나는 딱 보면 아는디 말여”
“애 헌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자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을 끊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진욱이의 등을 떠밀며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석진은 마당 주위를 돌아보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문 뒤 마당 한쪽에 붙어있는 텃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갓 심은 상추가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길게 빨아들였다. 고향집에 오면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도심에서 피던 담배와는 맛이 확연히 달랐다.

“너는 잘 모를거야. 이 마당에서 담배를 피면 말이다. 담배에서 잘 익은 두엄냄새가 난다. 아빠는 그 냄새가 참 좋아”

석진이 언젠가 진욱에게 해준 말이다. 밥상은 푸짐했다. 청국장 하나만으로도 고향집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여덟 살 진욱이도 그 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을 대지도 않던 진욱이도 재작년부터는 자주 청국장 냄비에 숟가락을 옮긴다. 밥상을 물리고 난 뒤 석진과 할아버지가 마주 앉았다.

“너, 아직도 그런 상태냐?”
할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진욱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엄마와의 관계를 물어보는 것이라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학원 앞 카페에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탁자가 스무 개 정도는 되어 보이는 넓은 가게에 자리를 차지한 것은 너댓명에 불과했다. 두 명의 종업원은 한가로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물기가 업는 나무는 힘을 잃은 채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창문이 보이는 자리에서 승혜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십분쯤 지났을까. 카페 문이 열리고 진욱이 들어섰다. 승혜가 손을 들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엄마! 일찍 왔어?”
“아니 조금 전에, 저녁 먹으러 나갈까?”

“조금 앉아 있다가”
“수학여행 간다고. 지금쯤 제주도 가면 참 좋겠다”

“나도 기대돼. 처음 가보는거 잖아”

승혜가 진욱이를 만난 건 한달 만이었다. 석진과 별거에 들어간 지도 1년이 가까워온다. 별거에 들어간 이후 승혜는 석진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한 달에 한번 꼴로 진욱이를 만날 뿐이다.

“지난 주에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는데…”
“두 분 다 잘 계시지?”

“응. 할아버지는 좀 더 늙으신 것 같고”
“할머니는?”

“여전히 음식솜씨 좋지. 할머니가 해주시는 고추장 불고기는 여전히 맛있었어”
“원래 할머니가 솜씨가 좋은 분이잖아”

“수학여행 간다고 용돈도 주셨어”
진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혜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진욱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수학여행가서 쓰라고. 멀리 가잖아”

“할머니한테도 받았고, 또 아빠도 줄텐데..”
“그래도 넣어둬”

진욱은 웃으며 봉투를 가방에 넣었다. 진욱은 며칠 전 엄마의 전화를 받는 즉시 예감을 했다. 수학여행 때문에 약속을 잡았다는 사실을.

2014년 4월16일, 수학여행의 들뜬 마음을 싫은 세월호는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304명의 애틋한 사연들도 물속에 잠들었다. 깜깜한 바다 속에서 진욱은 친구들의 손을 잡았다. 유일한 위안이었다. 가방 사이로 전날 엄마가 준 하얀 봉투가 젖어있었다.

멀리 마당은 비어 있었다. 느티나무 정류장은 정물화의 모델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석진은 차에서 내린 뒤 텃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목이 쉰 듯한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들녘에는 고개를 숙인 벼들이 제 무게를 견디느라 힘겨운 모습이었다.

“아빠, 저 벼들을 보면 내 친구 상호가 생각나. 맨 날 저렇게 고개를 숙이고 졸았거든”
진욱의 명랑한 목소리가 논둑길을 거닐고 있었다. 벼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잘조잘 댔다.
밥상 앞에서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부엌에서 물을 챙겨 나오던 할머니가 정적을 깼다.

“고추장 불고기는 안했다. 진욱이 생각날까봐”
“이 사람이 또 청승이야. 명절날에”

“누구는 생각하구 싶어서 그런감유. 그냥 생각이 나니깨 그런거쥬. 밥 먹을 땐 복스럽게 밥 먹던 모습 생각나구, 고기 먹을 때는 입이 터지게 고기를 넣던 게 생각나구.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걸 어떻게 하란 말유”

할아버지는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눈물을 훔치며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석진과 승혜는 밥상 앞에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 산비둘기는 밤을 잊은 채 새벽까지 울었다.

다음 날 아침, 차례를 지내자 마자 석진은 떠날 채비를 했다. 하루 더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할아버지는 석진 내외의 등을 떠밀었다. 할머니는 아들의 트렁크에 작은 상자 몇개를 실었다. 고추장, 된장, 말린 고사리, 호박, 들깨, 그리고 명절 때 준비한 음식들이다. 석진과 승혜가 마당에서 인사를 했다.

“그래도 진욱이가 효자여, 너희 둘의 인연을 이어가게 했으니 말이야. 떠난 놈이 선물을 남겼다고 생각하고 잘들 살어라”
할아버지는 먼 산을 보며 인사를 받았다. 가을하늘 사이로 새 몇 마리 날아가고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