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어둠에서 빛으로, 장 발장과 풀어가는 삶의 화두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어둠에서 빛으로, 장 발장과 풀어가는 삶의 화두
  • 이규식
  • 승인 2016.09.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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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대목을 그린 '레 미제라블' 만화작품. 일본에서 출판된 것을 프랑스어로 다시 옮겨 펴냈다.

어둠에서 빛으로, 장 발장과 풀어가는 삶의 화두

(......)
주교는 장 발장을 보며 외쳤다.
“아니, 웬일이오? 다시 만나게 되어 잘됐소. 나는 당신에게 촛대도 주었는데, 그것도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은이니까 200프랑은 받을 수 있을 거요. 왜 당신에게 준 그릇이랑 함께 가져가지 않았소?”
장 발장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인간의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 거룩한 주교를 바라보았다.
(......)
“이렇게 말했겠지요”하고 주교는 웃는 얼굴로 그 말을 가로막았다. “하룻밤 재워 준 늙은 사제가 주었다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이 사람을 이리로 데려 왔군요? 그것은 오해입니다.”
“그렇게 된 일이라면” 하고 반장은 말을 이었다. “그냥 보내겠습니다만.”
“물론이지요.”하고 주교가 대답했다.
(......)
주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당신에게 주었던 촛대가 여기 있으니 가지고 가시오.”
주교는 벽난로로 가서 두 개의 은촛대를 들고 돌아와 장 발장에게 주었다. 두 노부인은 아무 말 없이 움직이지 않고 주교에게 방해가 될 만한 표정 하나 짓지 않고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장 발장은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다만 기계적으로 그 두 개의 촛대를 받았다.
 “그럼, 안심하고 가보시오. 아 참, 다음에 우리 집에 올 때는 뜰로 돌아올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한길 쪽 정문으로 들어와도 좋소. 문은 낮이나 밤이나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열리니까요.”
 그리고는 헌병들 쪽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어서들 가보십시오.”
헌병들은 돌아갔다.
장 발장은 금방이라도 실신할 것 같았다. 주교는 그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잊어버려서는 안 되오.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되오. 이 은으로 해서 들어오는 돈은, 당신이 정직한 인간이 되기 위한 일에 쓰겠다고 나하고 약속한 일을.”
아무 약속도 한 적이 없는 장 발장은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었다. 주교는 그 말을 할 때 힘주어 발음했다. 주교는 엄숙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내 형제인 장 발장, 당신은 이제 악에 사는 게 아니라 선에 사는 것이오.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 영혼을 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파멸의 정신에서 끌어내어 하느님께 바칩니다.” (......)

-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1권, 183-184쪽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어린 시절 만화나 다이제스트판 동화로 읽었던 여러 ‘명작’들, 그 가운데 ‘레 미제라블’은 중심을 차지한다. 완역판이 5-6권짜리 인데 얇은 축약본 독서의 기억은 그러므로 불완전하고 원작의 취지에서 빗나가기 쉽다. 위에서 인용한 대목에서 주인공 장 발장의 비뚤어지고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평생 사랑과 정의의 삶을 살게 만든 미리엘 주교의 너그러움과 자비가 그러하고 비정한 악인의 화신으로 간주되었던 자베르 경감이 법과 감성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끝내  센 강에 몸을 던지는 대목 등이 짧은 책에서는 무미건조하거나 왜곡되어 그려지고 있다.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뮤지컬로 거듭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발표 후 150여 년간 전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있는 ‘레 미제라블’의 완독을 권해드린다. 새해 정초 여러 결심을 할 때 ‘레 미제라블’ 독서를 그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한 해 동안 장 발장과 함께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정의와 불의 그리고 인간과 사회, 삶의 여러 양상을 깊게 체험해 보시기 바란다.

1830년대 왕정복고 체제의 프랑스 사회와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함을 발견할 것이고 파란만장한 장 발장의 여정에서 생존의 은총과 의지의 힘, 사랑의 기적을 새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악의 존재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이며 이승을 떠날 때 우리가 취할 모습 같은 여러 과제에 대한 슬기로운 대안을 ‘레 미제라블’에서는 나지막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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