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대전이 보이는 대전여지도
[그곳에 가면 이야기가 있다] 대전이 보이는 대전여지도
  •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 승인 2016.09.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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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 대전을 거닐어 만든 대전여지도
“들이었던 곳에 도시가 만들어져, 일제에 의해 향락의 중심지가 되고, 해방 후에는 상업으로 흥하며 사람들도 넘쳐났던 곳, 희미하게 남은 흔적들이 ‘난 자리’를 더욱 선명하게, 쓸쓸하게 만든다. 상상으로만 떠올려볼 뿐인 지난 시절의 풍경이 차례로 펼쳐지더니 한데 겹겹이 쌓였다.”
지난해 3월, 지역잡지 <토마토>가 연재하는 대전여지도에는 동구 중동의 거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을의 흥망성쇠가 역사와 함께 해오는 동안 도시의 모습은 과거를 잊어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대전여지도’가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한국의 대부분 도시는 비슷한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로 채워진 철저히 계획적이고 획일적인 공간에 가면 그 정도가 더 심해진다.

대전이라는 도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주거공간의 소멸과 탄생, 쇠락과 번성은 전국 어느 도시에서나 흡사하게 발견되는 패턴이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살던 익숙한 골목이나 집, 소소한 풍경들이 개발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험이 한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소비재로 전락해 버린 공간은 개성과 정겨움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도시에도 다양한 형태의 주거공간들이 공존하고 있다. 허름해 보여도 오랜 시간이 쌓인 정겨운 공간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과 그 위에 펼쳐진 삶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것이 어디건 누구건 소중하다.”는 이용원 저자의 말처럼 하루아침에 익숙했던 골목이 개발로 사라지거나, 의미를 지닌 건물이 자본의 논리로 그 본모습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마을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을 점차 찾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기록이란 존재를 되살려 내는 유일한 방책이다.

저자인 이용원 씨는 대전에서 2007년부터 문화예술잡지 “월간토마토”를 창간해 ‘대전여지도’라는 꼭지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그는 이 시대 자본의 때가 묻은 도시 곳곳에서 희미해진 마을을 찾아다닌다.

이 책은 여행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리서도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살이의 최소 주거 단위인 ‘마을’이라는 정겨운 무형의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다가 맞닥뜨린 우연한 풍경이 소소하게 말을 건다. 그것은 획일화와 반대되는 ‘다름’과의 만남이다.

예상 밖의 풍경, 이 집과 저 집, 이 골목과 저 골목은 저마다 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매순간 흥미롭다.

그런 발견의 과정이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이는 길과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이름의 삶을 그리는 과정과 같다.
 
 

희미해진 마을의 울타리를 찾아 떠나는 여정
 ‘대전여지도 시리즈’는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은 한창기 선생의 “뿌리깊은 나무”가 선보인 ‘한국의 발견 시리즈’의 뒤를 잇는 10년의 시간 동안 이어온 기획이다.

수도권 집중현상과 도시개발의 확대로 나날이 사라지는 토박이 문화와 지역 고유의 공간, 그 안에 둥지를 튼 사람의 모습을 기록하고, 마땅히 보존해야 할 것에 힘을 싣는 작업이기도 하다.
중구는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이 자리한 대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보문산에 둘러싸여 시골마을의 전경도 도심지 가까이에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대전여지도1”은 다채로운 ‘중구’라는 지역을 자유로이 답사하며 현장에서 보고, 생활권 단위로 묶어 희미해진 마을의 경계를 더듬는다.

‘1부 골목에서 만나다’는 한때 김지미와 나훈아가 살았다는 고풍스러운 주택이 자리한 대사동 한절골마을을 비롯한 전형적인 산동네인 솔밭마을의 아기자기한 집과 골목 풍경을 담았다. 또한 옥계동, 호동, 부사동, 문화동 주택 단지에서 만나는 골목 풍경들이 정겹다.

‘2부 산자락에 기댄 마을’에서는 안영동, 금동, 무수동 등의 자연마을에서 만난 풍경들은 ‘마을’이라는 기본 단위의 원형을 보여 준다.

안영동 검은바우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마을을 헤매는 낯선 이방인을 포근한 눈으로 바라보고 검은바우가 어디냐는 질문에 “아, 여기가 검은바우여.” 하고 한없이 여유롭게 대답한다.
저자의 말대로 이런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정겨움이 묻어난다. 이것이야말로 자연마을의 매력이다.

‘3부 원도심의 기억’에서는 대흥동, 선화동, 은행동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이 생기면서 근대 도심지로 개발된 곳들에 간신히 숨어 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지금은 이전된 대흥동 ‘뾰족집’의 온전하던 옛 모습과 재개발되며 사라진 마을들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전여지도’ 1에 나오는 대전광역시 중구 지역

길따라 들어가는 추억의세계
조성남 희망의 책 본부 이사장은 “이 책은 향토사가 다소 지루하다는 일반적 인식을 깬다.
이 도시가 오래전부터 지녀 온 역사가 도시개발로 사라져 버리는 아쉬움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대전학의 좋은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밝혔다.

책의 일부를 옮기는 것으로 대전여지도에 쓰여진 문장의 분위기와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대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라지는 것,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있다.

“계단식 형태로 들어선 집은 아랫집 지붕을 올곧이 내려다본다. 이런 상황이니, 지붕을 활용하기도 편하다. 굳이 사다리가 없어도 텃밭이나 스티로폼 화분에 키운 고추 정도는 그냥 지붕에 올려 말릴 수 있다. 주택은 차지한 면적에서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아기자기한 그 공간 활용 지혜에 입이 떡 벌어진다. 미니어처같이 귀엽고, 비밀 벙커가 떠오르는 집도 있다. 이쪽 골목에서 보이는 저쪽 끝 집이 포근하다. 다양한 주택 형태가 무척 인상적이다. 아파트나 주택 업자가 일률적으로 지은 주택단지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획일화된 가치와 삶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숨통을 터주는 느낌이다.”
(‘대사동 솔밭마을_보문산에서 내려온 바람, 솔밭자리에서 서성인다’, 40~42쪽)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만들어 놓은 계단을 몇 개 올라 할머니 앞에 섰다.
“할머니, 검은바우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아, 여기가 검은바우여.”

“네, 이 마을 이름이 검은바우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마을 이름이 유래된 검은 빛깔의 바위가 어디에 있나요?”
“아, 여기가 검은바우라니께. 둘러봐 바위 빛깔이 검잖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자꾸 물어보니 할머니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그러나 오석처럼 검은 바위를 상상했던 눈에는 그 정도 바위 빛깔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늘진 덕에 조금 어두웠을 뿐 특별히 검다고 말하기는 좀….

그래도 찬찬히 살펴보니 바위의 생김이 범상치 않았다. 바위 표면을 살짝 덮고 있을 한 뼘 흙에는 많은 녹색 식물이 자라고 있다. 덕분에 바위 전체 꼴이 한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꽤 컸다.
(‘안영동 검은바우마을_독고댕이에서 다듬잇돌 예쁘게 만들었는데…’, 107쪽)

재개발사업 대상지의 중앙 부분에 위치한 미광식품에서 김용선 통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 통장은 지금의 마을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봐요. 얼마나 좋아요. 길 널찍하지. 볕 잘 들지. 난 여기가 좋아서 계속 살고 싶었는데. 집 짓고 싶어서 옆집을 수십 번 쫓아다니며 설득해 간신히 집도 사 놓았는데….”

이용원 대표

30년을 넘게 대흥3동에서 살았다는 김 통장은 아직 이사를 가지 않았다. 그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김 통장의 집에는 3대 일곱 명의 가족이 모여 단란하게 살고 있다. 널찍한 집을 새로 지어 살아 보겠다는 계획도 주민동의로 추진되는 ‘재개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텅 빈 골목과 문이 열린 집을 휘젓고 다니다가 문득 한동안 집중 조명되었던 ‘뾰족집’이 떠올랐다.

뾰족집을 두고 등록문화재 지정과 철회 요구 등 한동안 어수선했다. 192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로 대전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건축물 중에는 가장 오래되었다.

원도심을 탐방하는 시민들이나 근대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 그 외관을 보며 신기하게 여겼던 건물이다.
(‘대흥3동 재개발정비사업지구_텅 빈 마을엔 목련꽃만 흐드러지게 피고…’, 210~213쪽)

책을 만들고 원고를 쓰는 이용원 토마토 편집장은 원도심을 거닐고 굽어보며 지나온 세월을 복기한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흔적들을 찾는다. 그는 자취를 감춘 것들을 찾아내 스스로 이야기를 뱉어내게 만든다.

그가 안내하는 대전여지도에는 두런두런대는 이야기가 있다. 귀를 기울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야기의 힘 때문이 아닐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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