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농무’ 40년, 지금 그 가락과 느낌은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농무’ 40년, 지금 그 가락과 느낌은
  • 이규식
  • 승인 2016.10.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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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규식

‘농무’ 40년, 지금 그 가락과 느낌은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 신경림, ‘농무’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1975년 ‘창비시선’ 첫 권으로 발간된 신경림 시집 ‘농무’는 평이한 어휘와 문장으로 1960년대 한국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미덕으로 꼽힌다. 이런 수월성이 여러 환경변화가 포개진 그 이후 우리문학에서 신경림 시인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사회의 심각한 현안의 하나인 농촌붕괴는 이미 1950년대 말, 1960년대 중반 신경림 시인이 전국 각지를 답사하며 체험한 궁핍한 현실에서 예고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농무’에서의 시인의 메시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유효하다. 생활터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애잔한 몸부림을 농촌사회 언어와 일상묘사를 통하여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실감과 정취를 배가시키고 있다. 농민들의 격렬한 감정을 그대로 서술하면서도 농무의 춤사위나 농악기의 리듬으로 일정부분 조절하는 기량을 보여준다.

한국 농촌의 이 안타까운 현실은 아직 뚜렷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가 계속 관심을 기울여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소외된 농촌의 지표와 활로, 대안을 제시하기를 소망한다. ‘농무’는 개발독재 시대 냉전 이데올로기에 눌리고 공업과 서비스업의 발전으로 침체에 빠져 이중삼중의 어려움에 처한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그려냄으로써 민중문학의 전망을 열어주었다. 이 작품집 이후 신경림 시인은 몇 단계 모색과 변모를 거쳐 왔으나 언어의 경제라는 시의 본령에 충실하고 시와 삶을 연결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신경림 시인은 외형위주의 공허한 구호성 시 창작을  멀리하였고 1990년대 현실사회주의 몰락과 물질주의 팽배, 정보화 사회 도래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정의와 인간존엄을 추구하는 신념을 줄곧 유지하고 있다. 농무 가락에서 쓸쓸함과 애잔함이 사라지고 오로지 신명에 겨워 ‘농자천하지대본’을 노래 부르며 함께 어울릴 날을 기다린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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