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의 포토에세이] 내몽고 고비사막의 진주 명사산과 월아천의 가치
[길공섭의 포토에세이] 내몽고 고비사막의 진주 명사산과 월아천의 가치
  • 길공섭
  • 승인 2016.10.12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공섭 사)대전동구문화원장, 시인/사진작가

[굿모닝충청 길공섭 사)대전동구문화원장, 시인/사진작가]  우루무치를 이야기 하려면 먼저 고비사막 중심지의 둔황명물 명사산(鳴沙山)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사산이라는 지명 이름도 바람에 모래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명사산은 둔황시에서 약 20여분이면 갈 수 있는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관광지이다. 모래가 밀가루처럼 곱고 부드러워 낙타가 밟고 지나가는 소리도 예쁘게 들리는 명사산(鳴沙山), 그곳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위해 우리 일행은 출발부터 화면으로만 보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로 출렁였다.

명사산이 있는 둔황은 기원전 한 무제가  4군에 둔황군을 설치하고 정벌하고 하서 한족을 이주시켜 서부지역 거점 도시로 출발한 이후 남북으로 지나는 실크로드의 요충지가 되었으며, 이 실크로드를 이용하여 후 한 시대 불교가 중국본토에 전해지는 한 지역이다. 이곳도 역시 강수량(년 평균 30mm정도)이 턱없이 부족한 극히 건조한 지역이다. 둔황의 중심을 지나는 실크로드는 고대 동서양을 잇는 교역로, 즉 아시아 내륙을 횡단하는 고대 동서 교역로이다. 총 길이 6,400㎞에 달하는 장대한 구간으로 중국 중원(中原)의 장안(지금의 서안)에서 시작해 타클라마칸 사막(지금의 돈황)의 남북변을 따라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을 지나 지중해 연안에 이른다. 지금의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천축(인도의 옛 이름) 등 10여 개국을 거친다. 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전한(前漢: 기원전 206~기원후 25) 때이며, 실크로드 교역이 가장 활발하던 시기는 당대(唐代: 618~907)였다.

비단 무역을 비롯한 동서무역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중국의 역대 왕조는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끊임없이 사절을 교환했고, 민간인들의 왕래도 빈번했다. 실크로드는 이같이 상업뿐 아니라 동서 문화의 교류라는 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낙타에 서역의 물건들을 싣고 중국에 들어와 중국의 귀한 비단과 교환해서 열사의 사막 길을 낙타로 이동하는 역사는 동서 무역의 시작을 이루는 큰 의미가 담겨있는 길이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이 비단길을 따라 서부에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데는 무려 7년이란 긴 고난을 감내해 가며 다닐 만한 충분힌 이유가 이 비단길에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실크로드에서 만난 명물 명사산은 돈황의 남쪽으로 5㎞ 떨어진 곳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래산 으로 깨알만한 모래와 돌이 퇴적되어 형성된 산이라고 한다. 심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명사산이라고 불리우는 이 모래산은 울음소리와 비슷한 거대한 소리를 내며, 가벼운 바람이 불어도 마치 관현악 연주를 하는 듯 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산의 특징으로 鳴(소리 낼 명, 또는 울 명), 沙(모래 사)를 따서 ‘명사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명사(鳴砂)’는 ‘모래가 우는 소리’라는 뜻이다. 명사산 입구에서 모래가 신발로 들어가지 않게 빨간 자루 같은 것으로 싸매고 번호표를 들고 낙타를 타기위해 기다리는데,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이 내품는 열기와 명사산 모래에 반사된 햇볓이 살속을 파고들어 전신을 감싼 내 몸은 땀으로 목욕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난생 처음 타보는 낙타는 실크로드 상인들이 사막을 이동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는데 오늘 명사산을 오르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교통이 발달하여 운송수단으로 사용하던 낙타가 관광용과 식용으로만 이용되고 있어 만은 낙타농장이 없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날 저녁에 만찬에 나온 노루발바닥 요리는 세상의 맛이었다.

명사산을 오르기 위해  낙타 등에 올라타고 4~5마리를 한사람의 마부가 인솔하면서 모래산의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35도가 넘는 태양열이 달군 모래언덕을 오르며 낙타 등에 덩그렁 거리면서 주변풍광을 담기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오르는 중간 중간에 안내인의 친절로 낙타 등에 탄 모습을 기록해 주어서 추억의 사진을 만들 수 있었다. 명사산의 높이는 1650m 이며 800k㎡면적으로 모래 언덕 등성이가 칼처럼 날카로운 것이 특이했으며 그 모래가 너무 곱고 부드러워 낙타가 밝고 오르며 내는 모래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으며, 또한 명사산을 오르는 낙타의 긴 행렬에 부디 치는 역광의 찬란한 빛은 이곳을 찾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자연은 나와서, 자라고, 쇠약해져, 사멸하며 그 안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성, 발전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피시스(physis)라 하였다. 이 말은 피오마이(태어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며, 본래 ‘생성(生成)’을 뜻한다. 자연은 조금도 인간에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생명적 자연의 일부로서 그것에 포괄되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대하여 이질적·대립적이 아니고 그것과 동질적으로 조화하고 신(神)마저도 거기에서는 자연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정의한다.
명사산의 자연이 그린 그림에 매료되어 고운모래와 가슴을 부비며 명사산에 깊숙하게 숨어있는 월아천(月牙泉)으로 발길을 옮겼다. 월아천은 초승달 모양의 작은 연못으로, 남북의 길이가 약 200m, 폭이 50m 정도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수심이 깊은데, 제일 깊은 곳은 5m 정도이며 물색이 맑아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아침에는 햇살을 받아 붉은빛, 낮에는 하늘빛을 받아 에메랄드빛, 그리고 저녁에는 명사산의 모래빛을 받아 노란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월아천의 물은 돈황 남쪽에 솟아있는 곤륜산맥의 눈이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 비교적 저지대인 이곳에서 솟아나는 천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광풍이 불어도 이곳만큼은 모래에 덮이지 않으며 예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칠성초와 같은 생물이 평생 늙지 않아 ‘만천’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몇 천 년이 흐른 지금에도 월아천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는 신비로운 오아시스는 자연이 주는 귀한 가치이며 우리들에게 자연의 진실을 훈육하는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