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를 넘어서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를 넘어서
  • 이규식
  • 승인 2016.10.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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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벽화 사진=이규식

어머니를 향하여 어머니를 넘어서

새 아침 잉태하여 생쌀 익히는 땅 어머니들이다
허기진 하늘 배 속 꾸역꾸역 채우고 있다
영창에 뜨는 미명도 굴뚝 타고 치올라와 가쁜 숨 쉬다가
동굴 밖으로 나와 밤새 해산한 머리칼 쓸다
드문드문 섞여 있는 새벽별을 소매 걷어 꼭 껴안고는
검푸른 허공 식도 속으로
심장들이 쓰는 모진 삶을 달고 내달려간다
무수히 사라져간 얼굴들은 산다화인가, 시뻘겋게
검붉은 불꽃 바람 피워 산등성이 오르는 흰 목숨들.
저 소리 없이 피어오르는 생명이
가뭇없이 날아가도 아침저녁 아궁이에 다시 오셔서
짓무른 눈자위 눈물 씻어 주시는 어머니시다

- 신익선, ‘건강한 연기’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문학작품 나아가 미술, 음악, 무용, 공연 같은 예술 여러 장르가 담아내는 주제의 범위는 거의 한정적이다. 이른바 상투어나 상투적 개념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랑, 삶과 죽음, 자연, 고향, 추억, 그리움, 시간, 인간조건과 숙명, 향수 그리고 육친의 정 같은 제한된 속성의 영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런 전제는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모두 포함한다. 그리 희귀하지 않은 제재를 갈고 닦아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가 하면 초보적인 감상으로 포장하여 각고의 고뇌 없이 손쉬운 1차 가공 단계만을 거치고서 예술작품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발표하는 인스턴트 창작시대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 경우 주제의 평범성이 시의 비의와 함의를 가로막는 역기능이 이루어지는데 가령 지금 사회에 만연한 시인과 시의 홍수, 읽히지 않는 시집의 물결 또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시가 예전 위상과 영향력을 잃어버린 이유중의 하나가 내공이 미흡한 시인들이 손쉬운 창작과정으로 산출한 어설픈 노래들이 진정 시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

그러나 상투성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예술의 주제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감성과 기질, 역량, 성향, 시대분위기와 관심사 같은 요소가 개입되면서 다양한 작품창조가 가능하다. 가령 ‘꽃’이라는 대상물 앞에서 화가와 시인, 음악가들이 창조하는 제각기 다양한 느낌과 해석의 창조 스펙트럼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볼 때 얼마되지 않는 주제나 제재를 통하여 예술가들이 이룩하는 형상화 작업의 신비성과 다채로움은 진폭이 넓어지고 있다. 인용한 시를 읽으며 우리는 육친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특히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이라는 주제를 놓고 신익선 시인이 개진하는 진솔한 그리움, 감성피력의 세계로 접어든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육친의 정이 전파하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성적인 감성의 메아리는 그토록 영원한 것인가 보다. 세계문학사에서도 육친의 애틋함 또는 사라진 자식의 존재를 그리워한다는 평범한 주제로 불후의 명작 위상을 확보한 예는 숱하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환기하는 구체적인 표현이나 상상의 단초를 절제하면서 청각이 환기하는 리듬과 적절한 의성어 (“툭툭 타다닥, 타다닥 타다닥”) 활용으로 자신을 투영하고 삶속에 정좌시키는 작품 역시 모성애라는 큰 바탕 속의 함의가 있었겠지만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회한 너머 어머니가 보여주신 긍정의 시선, 감사의 심성, 순수지향 감성과 염력이 이웃과 사회 나아가 우주에게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어머니를 그리면서도 어머니라는 대상과 개념을 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것을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힘, 어머니의 아우라는 그토록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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