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눈] 내포가야산 풍류(風流)의 길을 찾아서
[시민기자 눈] 내포가야산 풍류(風流)의 길을 찾아서
  • 이기웅
  • 승인 2016.10.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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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굿모닝충청 이기웅 예산 시민기자] 상가리는 본래 큰 사찰이 있던 터에 세운 마을이다.
가야산 가야봉과 석문봉 사이를 경계로 예산 쪽 상가리에서 서산 쪽의 해미를 오가던 옛 길 상가리 사람들은 ‘빈발’, ‘진자무골’이라고 부른다.

그 길은 1753년 예헌 이철환이 가야사에서 일락사로 풍류를 찾아가던 흥과 신명의 옛길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이야기가 남겨지고 있다.

빈발, 인경재, 부도골, 엥연 등 토속적인 지명은 역사의 흔적이며, 지금도 불리는 이름이다.  그 이름의 속살에는 풍류도 있고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민초들의 아픈 상처가 들어 있다.

내포 가야산의 가야사와 일락사에서는 18세기 초부터 스님들이 입으로만 사람소리·새소리·짐승소리를 내는 ‘구기’ 공연이 있었다.

구기는 박남봉과 남보원이 하는 코미디와 만담의 효시라고 할 수 있고 오늘날 오페라와 유사했다고 한다.

일락사의 도리 연희는 태생적 특징을 고려할 때, 불가 연희적 기반이 모태가 됐고, 계승 형성 전승돼 내포지역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며, 홍성 결성의 판소리 창시자인 최선달(1726~1805), 덕산의 염계달(1802∼?), 갈산의 한성준(1875∼1941), 해미 서산지역의 방진관, 심상건, 심정순, 심화영으로 이어지는 예술혼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 예로 덕산 출신으로 알려진 염계달도 절에서 10년간 판소리 공부하고 득음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영조 시대의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의 창법을 모방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일락사 스님들의 연희는 방만춘과 그의 아들 방진관에 의해 내포지역의 대표적인 소리인 중고제로 발전하기도 한다.

해미의 방만춘은(1825∼?) 조선 말기 순조·철종 때 활약한 판소리 명창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판소리에 재질이 있어서 11세 때인 1836년에 해미 일락사(日落寺)에 들어가 10년 동안 공부한 뒤 목이 틔어 19세기 전기의 8대 명창이 됐다. 그의 예술혼은 대물림 돼 그의 아들 방진관도 내포제 판소리 명창이 된다. 

일락사 연희에 관한 기록은 당시 가야산 덕산 인근 고덕에 살던 성호 이익의 후손인 예헌 이철환이 가야산 스님들의 연희이 정기적으로 있다는 소문에 흥미를 느끼고 1753년 세 차례 여행하며 담은 ‘상산삼매’을 통해 자세히 남긴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 숙종 시대를 전후해 발생했는데 동편제, 서편제 경기 남부와 충청 일원에서 활발함을 보였다. 특히 충청권의 경우, 내포지방 가야산을 중심으로 판소리의 한 법제가 중고제(中高制)며 판소리의 뿌리는 충남 결성의 최선달이라는 것을 정노식의 조선창극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최선달이 가야산에서 탄생하며 가야산의 소리는 오늘날 중고제의 탯자리 되는 것이다.

정노식 (1899∼1965)이 1940년 발행된 조선창극사에서 전도성 (1864∼?) 명창의 구술과 자신의 체험, 당대 명창 및 고로들의 면담 등을 통해 광대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수록된 인물은 최선달, 하한담으로, 이들은 판소리의 효시라고라고 말한다.

전도성이 어렸을 적, 선배 광대들이 판소리를 마치고 마지막에 역대 광대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는 ‘소리풀이’를 들었는데, 거기서 최선달과 하한담을 제일 먼저 호명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결성 바닷가 출신의 최선달의 소리는 충청도 내포의 느릿하고 대범한 개방성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판소리 중고제의 탯자리'가 가야산인 것이다.

최선달의 영향으로 조선시대 판소리 중흥기에 많은 소리꾼 중에는 충청도 내포 홍성.예산 .서산 출신이거나 가야산에서 소리공부를 한 사람들이 많았다

마을의 김 모(94) 할머니는 최선달이 태어난 결성의 성남리 출신으로 자신이 어렸을 때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최선달의 영향을 받은 내포 소리꾼 중 상당수는 조선 8도를 대표하는 조선 8대 명창이 됐으며 바닷길을 통해 큰 무대가 있던 한양과 전라도와 함경도까지 오가면서 활동을 했다.

내포지역은 예부터 바닷길이 열려 멀리는 중국과 황해도 전라도와 한양을 하루나 한나절이면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내포지역의 넓고 비옥한 토지와 바닷가에 접한 환경은 명창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사대부와 재력가인 만석꾼이 있어 소리를 하기엔 가장 적합한 곳이다.

소리꾼은 조선 팔도의 장터마당에서 듣고 보았던 백성들의 이야기를 소리로 풀어냈다

판소리 소리꾼들은 전국 장마당을 통해 민초들의 이야기를 세상으로 내 보낸 게 이들이다. 그들의 소리는 대중적 삶 속에 깊이 들어 있었다

조선시대 대원군을 비롯한 많은 양반관료들이 천민 출신의 소리꾼들을 그들의 안방 깊숙한 곳까지 불러들였던 것은 조선 팔도의 장터공연에서 듣고 보았던 백성들의 실정을 듣고자 함이다.

조선시대 후기 민심의 전달자 소리꾼은 관청의 아전들과 지역의 토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민심 전달자였다.

내포 가야산의 소리꾼 그들이 세상을 향해 내 지르고 싶었던 소리는 조선시대 후기 민초들의 울림이었으리라

필자는 263년 전 예헌 이철환이 일락사의 연희를 보기 위해 걸었던 가야산의 그 길 빈발 천년 옛 길을 걸어본다.

가야사지에서 가야산을 넘어 해미의 일락사까지 이어지는 천년 옛길이다.

가야사의 절집들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예산 지역과 서산‧홍성 지역을 내암과 외암으로 각각 구분하며, 여기에 100여 개 이상의 절집이 있다.

263년 전 그가 걸었던 길을 일락사에서 가야사지까지 걸어며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중고제 판소리의 유전자가 만들어진 가야산 풍류 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야산 일락사의 희잠과 여옥, 결성의 최선달의 판소리를 근원으로 하는 수많은 소리꾼들이 탄생한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덕산의 염계달 고북의 고수관. 해미의 방만춘 갈산의 한성준 해미 방진관, 심상건, 심정순, 심화영으로 이어지는 가야산의 소리를 느끼고 싶었다.

사람은 자연과 연결돼 있다.
가야산은 서산, 예산, 홍성으로,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가야산을 중심으로 오가며 같은 생활권 등이 어우러져 어우러져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됐다.

이젠 지역도 중앙문화가 아닌 내포지역의 태생적 문화유전자인 가야산의 문화적 범주에 주목해야 한다.

서산과 홍성, 예산에 걸쳐 있는 가야산의 문화는 장벽이 아닌 하나의 문화권으로 서산시와 예산군 홍성군이 연대하고 문화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다소 미온적인 예산군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한다.

몇 년간 전국적인 걷는 길 열풍에 가야산에 경쟁적으로 걷는 길을 만들었지만 부실하고, 지역 사람을 위한 콘텐츠가 없다.

가야산의 막연히 오르는 길 걷는 길이 아닌 잊혀진 옛길에 역사와 문화라는 풍류라는 근사한 생명을 불어넣으면 지역을 살리는 좋은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5.3㎞의 구간과 높이 640m쯤 고지가 되는 옛길은 민초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가야산의 소리로 태어난 곳이다.

가야산 민초들이 울어 내는 소리는 내포 중고제 판소리였던 것이다.

내포 중고제와 가야산의 풍류 이야기 마치 우리 역사 전반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263년 전 이철환이 보았던 가야산의 여옥과 희잠의 풍류이야기 판소리의 원류와 탯자리도 소외되고 무시당하고 그래서 방치되고 잊혀져가는, 그러나 어찌 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사람들은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온다.
가야산의 많은 이야기 잊혀져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길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모으고 합하면 문화와 역사가 되는 가야산의 큰 속살이 된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삭막한 길이 아닌 가야산 사람들이 걷던 옛길 주변의 이야기와 유적이 잘 연계되면 좋겠다.

가야산 문화권의 옛길 조사, 연구, 기획, 정비, 활용의 선순환구조가 잘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2014년부터 가야사지에서 가야산의 예술혼을 이어가려는 작은 축제가 2회에 걸쳐 열렸다.

주민 일부가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축제에 그 후손들도 참여하는 가야산의 소리 3번째의 축제를 준비하며 문화의 유전자와 정체성을 찾고 중고제 부활를 위해 김규리선생과 시민운동가이자 마을 만들기 정진호 선생이 함께하여 감사함을 두루두루 전한다.

이칠환과 263년의 시공을 넘어 판소리 원류를 찾아 떠났던 가야산의 길 이 가을 가야산의 풍류길 많은 사람들이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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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2017-01-04 19:18:03
이래서 해미로 넘어가는 고개가 그리 끌렸던가 싶습니다. 가야산의 숨은 이야기와 소리길도 함께 할수 있으면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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