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마지막 사랑 노래 혹은 처음 부르는 사랑 노래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마지막 사랑 노래 혹은 처음 부르는 사랑 노래
  • 이규식
  • 승인 2016.10.22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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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주도청 홈페이지

마지막 사랑 노래 혹은 처음 부르는 사랑 노래

젊은 날부터
나의 우주였습니까
나의 하늘
어딜 가나
언제나
만날 수 있었습니까
목이 말라도
배가 고파도
행복했습니까

마지막
고갯길 넘어가며
숨 막히며 오늘도
당신을 그리워합니까 반세기를
함께
살면서
사랑하고
때로
싸우면서
눈물이 마르도록
그 사랑 완성하지 못했습니까

저무는 날
나 병들어도
처음대로 눈뜹니까
하늘이 땅이
검게
누렇게

마침내
내가 꿈꿔온
나의 우주가 한 잎
영원이 그리움이 됩니까 아아!
사랑하는 이여!
꽃이 져도 아름다운 색깔 지닌 꽃씨 남기듯
새가 허공을 날다 떨어져 죽어도
새하얗게
허공 한 녘에
빛나는 슬픔 남기듯

- 문충성, ‘마지막 사랑 노래’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1978년 펴낸 문충성 시집 ‘제주바다’는 외형적인 인상수용 또는 관념적 차원에 머물던 제주도 바다 그리고 하늘을 향한 상상력과 감수성을 크게 넓혔다. 그 후 40년, 문충성 최근시집 ‘마지막 사랑 노래’에서 해설자 김진하는 문충성 시인이 그려낸 제주바다, 제주하늘이 우리 시의 공간을 한껏 확충했다고 평하면서 제주 하늘, 바다는 시인 고유의 것이자 우리 삶의 공간이 되었다고 정의했다. 바다는 삶의 원초적 체험, 역사적 수난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정신적 수평선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의 제주바다, 바람 그리고 묘한 이국취향을 선사하던 제주의 인상은 근래 몰려드는 중국인들로 인해 문화접변 현상을 넘어 혼돈과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소박하고 강인한 제주의 생명력, 배타적인듯 하지만 넉넉했던 제주의 품이 사라지는 듯한 이즈음 문충성 시인의 시편에서 그 원형질과 애잔한 자취를 찾아본다.

‘마지막 사랑 노래’는 그러므로 특정 인물에 대한 사랑표현인 동시에 제주 바다, 제주 하늘 그리고 제주의 모든 것에 대한 시인의 깊은 연모의 표현으로 읽힌다. 사랑에 완성이 있던가, 사랑이 우리를 꽉 채워주던 경우가 있었을까, 사랑이 이제 그만 됐어 하고 손사래 칠 수 있을까. 사랑은 충만 되지 않는 기다림, 그리움으로 남는다. 사랑은 끝내 사랑에 이르지 못하고 사랑을 노래함으로써만 사랑으로 남을 것이라는 진술은 그러므로 타당하다. 이즈음 시에서는 보기 드문 아아! 사랑하는 이여! 같은 영탄조 표현도 이 경우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언사를 넘어 생생하고 절실한 느낌을 준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바다를 그리던 시인이 반세기 가까운 시 창작 경륜을 통하여 토로하는 넓어진 사랑의 고백은 그만큼 중량감이 있다. 그러면서도 무겁거나 상투적이지 않다. 모두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랑의 실체를 잃어버리고 사는 지금 우리는 어떤 사랑을 꿈꾸었고 어떤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으며 마지막 사랑 노래는 무엇이 될지 이 시 한편을 통하여 잠시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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