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현대문명의 뒷 그늘에서 우리는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현대문명의 뒷 그늘에서 우리는
  • 이규식
  • 승인 2016.10.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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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세웅

현대문명의 뒷 그늘에서 우리는

네가 벌써 자동차를 갖게 되었다니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운전을 배울 때는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을

네가 대견스러웠다.

면허증은 무엇이나 따두는 것이

좋다고 나도 여러 번 말했었지.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 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 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 김광규,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사회로 막 나선 젊은이들의 승용차 구입이 크게 보편화 되었지만 이 작품이 실린 김광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크낙산의 마음’이 발간된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목격하는 이런 평범한 일상, 스쳐지나가는 현상과 사안이 시인의 시적 형상화 대상이 된다. 외견상 사소해 보이는 여러 일상의 현실이 그의 시에서는 잠재적이지만 폭력적이고, 억압을 동반한 문명의 모습으로 재생된다.

19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부터 김광규 시인이 지속적인 관심으로 다룬 주제인데 그렇다고 목청 높여 엄숙하게 훈계하거나 고담준론으로 설파하지는 않는다. 부드럽고 실팍한 서정과 여유, 위트로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조곤조곤 더러는 암시적으로 해법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막 시작될 그 무렵 현대인들이 향유하는 일상의 빛과 그림자를 예리하게 더러는 부드럽게 노래하며 그 안에 내재한 빗나간, 빗나갈만한 형상들을 유머러스하고 역설적인 서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자동차가 이 시의 중요한 묘사대상이지만 시인이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는 자동차를 포함하여 우리가 누리는 현대문명 대부분을 포괄한다. 편의성과 속도감, 다소의 과시욕에 들떠 별 생각 없이 즐기지만 그러는 사이 높아지는 벽과 깊어가는 단층이 부추기는 비인간화의 그늘을 시인은 우려한다.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라는 부드러운 어조 속에 향후 더욱 극단으로 치달을 현대문명의 폐해와 부작용에 대한 깊은 우려가 배어 나온다. 이 시가 발표되지 30여년, 그동안 우리는 시인의 ‘무거워진’ 마음을 전대미문의 숱한 사건, 사고, 재해, 스캔들 등으로 톡톡히 체험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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