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조국은 나의 힘, 문학은 나의 긍지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조국은 나의 힘, 문학은 나의 긍지
  • 이규식
  • 승인 2016.1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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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지에서 빅토르 위고

조국은 나의 힘, 문학은 나의 긍지

나는 꺾이지 않으리라! 입에 불평의 소리를 담지 않고,
조용히, 슬픔은 가슴 속에, 짐승 같은 인간의 무리들을 경멸하며,
나는 이 거친 망명의 땅에서도,
오, 조국을 나의 제단으로, 자유를 나의 깃발로 껴안으리라!

나의 고귀한 동지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믿음을 지키리라;
우리는 추방되었으나 공화국은 저기 있고 우리를 결합한다.
나는 저들이 모욕하는 모든 것을 영광으로 삼으며;
나는 저들이 현양하는 모든 것을 모욕하리라!

나는 몸에 잿가루를 뒤집어 쓰고,
목소리 되어 “불행이 있을지라!”, 입이 되어 “아니다!” 하고 말하리라
너의 하인들이 너에게 루브르 궁전을 가리킬 때
나는 케사르 너에게 독방감옥을 가리키리라.

배신과 숙여진 머리들 앞에서,
나는 팔짱을 끼리라, 분노에 겨우나 평온한 마음으로.
무너진 것들에 대한 서글픈 충성이여,
나의 힘, 나의 기쁨, 나의 청동기둥이 되어라!
(......)
비록 끝도 기한도 없을지라도 나는 이 쓰라린 유형을 받아들이리라,
더 굳셀 것으로 믿었던 누군가는 굴복했고
머물러야 했던 몇몇 사람이 가버렸는지,
나는 굳이 알려고도, 생각하려고도 않는다.

이제 천 명 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야 물론 나는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설령 백 명 밖에 없다해도 나는 계속 맞서 싸울 것이다;
만일 열 명만 남았어도 나는 그 열 번째가 될 것이며;
이제 단 하나가 남았다면 나는 그 한 명이 되리라!

-빅토르 위고, ‘최후의 말’ 부분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 당선 이후 헌법을 뒤집고 스스로 프랑스 황제에 즉위하자 빅토르 위고는 자발적 망명의 길에 오른다. 그로부터 18년, 위고는 영국령 건지, 저지 섬 등지에서 1870년 보불전쟁에 패하고 나폴레옹 3세가 실각 퇴위할 때까지 18년을 척박한 섬에서 보낸다. 이 고달픈 망명기간이 그의 문학연보에 있어서는 황금기를 이룬다. ‘범죄의 역사’, ‘꼬마 나폴레옹’ 같은 매도, 조소의 작품집에 이어 이 작품이 실린 약 6,000행에 이르는 방대한 풍자시집 ‘징벌시집’으로 민주주의를 역행한 나폴레옹 3세를 조롱하고 풍자한다. 그 분노와 저주 속에는 정치적 대립에 따른 개인적 원한과 앙심 같은 요소들도 있었겠지만 정치투쟁을 보편화하고 도덕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면에서 세계문학사에서 독특한 서정, 서사시라는 위상을 차지한다. 여느 사람들 같으면 몇 마디 토로에 그칠 저주, 욕설, 풍자, 모욕 그리고 희화화와 다짐을 6000행에 걸쳐 담아내면서 정치와 서정, 정치와 서사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균형에 성공한 점에서도 그렇다.

나폴레옹 3세는 그 후 정적 700명에게 귀국을 허가하는 ‘은전’을 베풀었지만 위고는 분연히 이를 거절하였다. 7년 뒤 또다시 사면령이 내려졌으나 이 역시 거부하고 스스로의 양심에 따른 신념과 약속에 충실하기 위하여 자의의 망명을 11년간 더 지속했다. 깊은 자기 수련, 방대한 성찰과 관조의 내밀한 고백인 ‘징벌시집’은 실로 가열찼던 분노와 증오가 자신의 밝고 건강한 낙관론에 힘입어 마침내 대승적 화해와 관용의 단계에 당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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