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 “아버지, 나는 누구에요?”
혼돈의 시대… “아버지, 나는 누구에요?”
배우 장두이의 ‘커튼콜ʼ l 코메리칸의 연극 ‘아메리칸 환갑’
  • 장두이
  • 승인 2012.07.10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랄프 : 아빠! 아빠가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전민석 : 나도 정말 널 알고 싶다.

랄프 : 절 이해 하세요? 이해 하시냐구요?

전민석 :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다. 난 그냥 나야!

랄프 : 그렇죠. 난 그냥 나죠!

지난 422일에 서울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국내 초연으로 성공리에 막을 내린 연극 ‘American Hwangap(아메리칸 환갑)’에 나오는 가슴 시린 대사다.

현재 미국에서 누구보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극작가 Lloyd Suh(로이드 서)씨의 이 작품은 극명하게 우리 한국인의 초상화를 무대 위에서 시대에 맞게 세련되면서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

전민석 : 올해로 제 나이가 60입니다. 한국도 나와 나이가 같죠. 한국도 그해가 독립한 해라 저와 같이 환갑이 된 거죠. 하지만 우리 가족처럼 한국도 두 개의 다른 나라가 됐고 저의 가족들도 이렇게 불행히 갈라졌습니다.

작가는 주인공 전민석(장두이 분)의 환갑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나라 분단으로 전이시켜 명쾌히 작품을 끌고 간다. 전혀 진부하지 않게 짤막한 대사 처리로 관객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로이드 서라는 작가의 발견은 물론 큰 수확이지만 동시에 그를 통해 우린 앞서가는 미국 연극의 현 주소도 더불어 가늠할 수 있었다. 이제 비로소 이민 1세기를 넘기면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인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문화예술계에도 예외는 아니다.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미국에서 17년간 활동한 필자로서는 로이드 서의 이번 작품 출연이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

공연 창작센터 대표인 윤광진 연출자에 의해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은 필자를 비롯해 이영숙, 차진혁, 김혜영, 홍아론 등의 배우들 숨결로 가득 채워졌다.

작가 로이드 서는 이미 미국 연극계에 그 이름을 알린 작가로서 Masha No Home, Jesus In India, Great Wall Story 등으로 현재 아시안 계열의 유망한 작가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이번에 공연되는 아메리칸 환갑은 미국은 물론 필리핀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다.

미국에 이민 가서 14년 동안 살다가 15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아버지 전민석을 통해 바라 본 그의 가정은 이미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조각조각 갈라진 폐 공장을 연상케 한다. 큰 아들은 뉴욕에 가 있지만 적응을 못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정신병을 앓고 있고, 에스더는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아내 메리는 이미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혼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모두 한결같이 자신의 정체성 앞에서 본 거울을 찾고 있는 자화상들이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의 마력은 이 집안을 구성하고 있는 아내, 아들, 딸 등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필연적 삶의 파편들이다. 단순히 지리적, 문화적 차이의 미국 이민 생활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 보다 더 큰 상징과 의미를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마치 현재 우리의 한국 사회, 가정, 정치적 현상을 주도면밀하게 꿰뚫어 보듯이 상태를 진단하며 희망을 갖길 기대하면서 끝이 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한국이 분단된 지 60년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의 남북문제를 또한 우회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남과 북의 문제처럼 가족도 분열되고 각자의 꿈을 좇아 몽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 18장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마치 한 편의 도메스틱 페밀리 영화를 보듯이, 새뮤엘 베케트, 해롤드 핀터, 데이빗 마멧 과도 같은 소통이 없어 소통이 절실하게 필요한매우 현대적인 드라마의 전형도 아울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즈음 우리 가정과 사회 역시 극심한 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이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우리의 현 주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돼서 좋았다. 우리가 우리 속에서 우릴 명쾌히 객관적으로 볼 수 없듯이, 이젠 어디서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훌륭한 해외 문제작과 그러한 작품들을 알리고 보살필 때가 되었다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굿모닝충청(일반주간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0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다 01283
  • 등록일 : 2012-07-01
  • 발행일 : 2012-07-01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창간일 : 2012년 7월 1일
  • 굿모닝충청(인터넷신문)
  • 대전광역시 서구 신갈마로 75-6 3층
  • 대표전화 : 042-389-0087
  • 팩스 : 042-389-008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송광석
  • 법인명 : 굿모닝충청
  • 제호 : 굿모닝충청
  • 등록번호 : 대전 아00326
  • 등록일 : 2019-02-26
  • 발행인 : 송광석
  • 편집인 : 김갑수
  • 굿모닝충청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굿모닝충청.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mcc@goodmorningcc.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