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의 눈] 헝그리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
[시민기자의 눈] 헝그리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
  • 이희내
  • 승인 2016.12.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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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굿모닝충청 이희내 방송작가,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오래도록 나이를 먹은 도시, 원도심
대전 원도심에 가면, 도심 속 높은 건물들 사이에 오래되고 낡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속속들이 숨어 있다. 그 중 유난히 세월의 흐름이 가득하지만, 아직도 건재한 한 낡은 건물이 있다. 바로1961년 봄부터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대전 한밭복싱체육관이다.

사각 링만으로도 꽉 차 보이는 80㎡(24평) 정도의 작고 협소한 공간 안. 벽에 붙어 있는 빛바랜 사진들과 낡은 글러브, 체육관 가득 밴 땀 냄새는 지난날의 영광을 말해준다. 이 체육관도 벌써 55년의 세월을 머금었다.

70~80년대는 우리나라 복싱의 황금기였다. 한밭복싱체육관 역시 세계챔피언을 꿈꾸며 복싱에 전부를 내건 청년들로 가득한 전성기를 보냈다.

1969년 제50회 전국체전에서 단일팀으로 출전해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등을 따낸 것을 비롯해 페더급 세계타이틀을 보유한 염동균 선수도 이 체육관 출신이다. 관장님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대전시 체육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복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오직 챔피언이 되어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자신을 위한 삶의 투쟁이었다고 한다.

오직 복싱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노년의 복서. 그는 이런 변화가 못내 많이 아쉽기만 하다. 복싱의 인기가 사그라지자 체육관을 찾는 이들도 줄었다.

세상은 변했다. 사람들은 전문적인 선수가 되기보다 취미나 체력 관리, 체중 감량을 위해 체육관을 찾는다. 그래도 그에게 타협은 없다. 체육관 운영의 기본 원칙 역시 예전 그대로다. 요령은 없다. 복싱은 땀을 흘린 만큼 대가를 얻는 가장 정직한 스포츠다. 오래되고 낡은 시설, 거기에 편법이 없는 관장의 엄한 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밭복싱체육관을 찾는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한밭복싱체육관에 들어서면 오래된 많은 것들과 만나게 된다.

손때가 탄만큼 연륜이 묻어나는 사각의 링과, 낡은 복싱장갑과 헤드기어가 세월의 흔적을 넘어 훈련을 했던 이들의 열정과 땀을 대변한다.

사각의 링 따라 걸려있는 태극기와 각종 상장들과 현판, 현판엔 승자존(勝者存), 즉 이곳에서 훈련을 하면 승리 할 수 있다는 현판이 선수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매번 울리는 종소리. 매 번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종이 울리기 때문이다. 1라운드 시간이 2분이라고 하니 매 2분마다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 역시 세월을 머금은 흔적이 얼굴 전체에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2분의 라운드와 30초의 휴식을 알리는 라운드벨 소리에 맞춰 관원들은 운동을 한다.

처음 복싱을 할 때는 2분이 20분 아니 2시간 같이 느껴졌다는 관원들. 하지만 사각의 링 위에 올라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2분의 밀도.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고 성장한 사람들은 2분의 마력에서 헤어날 수 없어서 복싱이란 운동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헝그리 정신으로 대변되던 복싱 투혼은 희미해졌어도, 여전히 정직한 땀의 의미를 알고 복싱에 매료된 사람들. 시대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바쳐 체육관을 지켜온 이수남 관장. 복싱의 정신을 전수하려는 그의 고집스러운 원칙이 55년이 넘도록 한밭복싱체육관을 한 자리에 있게 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오직 복싱의 정도를 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겐 30여년이 넘게 식당을 하며 남편의 정도를 뒷바라지한 아내와, 힘든 현실 앞에 암흑의 길을 걷다, 손을 씻고 다시 열심히 살아가려 찾아오는 제자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특히 학교 부지를 무단 사용하였다며 철거하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고.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 했던가! 많은 시민단체와 대전 시민들의 성원으로 교육부에서 계속 사용해도 좋다는 허가를 최근 받았다고 한다.

평생을 오직 복싱 하나만으로 살아온 인생이 후회되지는 않는다고 하는 이수만 관장. 당시 마음만 바꿔먹으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벌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지금 가난하고 오래된 체육관에서 배고픈 복서들의 전설이 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득한 맛이 가득한 체육관 곳곳의 낡은 흔적들과 묵은 향기.

인생으로 비유되는 사각의 링, 그 위에서 가장 정직하고 치열한 시간을 경험한 이들의 진짜 복싱 이야기가 오늘도 살아 숨 쉬는 이곳은 그가 인생을 바쳐 제일 사랑하는 복싱과 그것을 즐기는 복서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리라.

배고팠던 시절이 있었지만… 헝그리 정신으로 극복하고 세계 속에서 당당히 위상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

하지만 요즘 안팎으로 시끄러운 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국민들은 집단 우울증에 걸릴 참이다.

땀을 흘린 만큼 대가를 얻는 것, 요령 없고 편법 없는 엄한 지도는 무명의 복서를 세계챔피언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모조리 무시된 또 다른 세계.

실력보다는 돈이 우선이 되고, 각종 비리와 특혜가 난무하며, 비선 실세가 나라 정도를 좌지우지하는 무법천지가 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걱정은 커져 가고만 있다.

가난하고 배고픈 인생길임을 알았지만, 한결같이 복서의 정도를 지키며, 시대 복서들의 전설이 된 이수만 관장. 지금 대한민국에겐 가난하지만 정직했던 그의 헝그리 정신이 다시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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