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신동엽과 전여해의 시, 그리고 ‘오늘’
[시사프리즘] 신동엽과 전여해의 시, 그리고 ‘오늘’
  • 김현정 교수
  • 승인 2016.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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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굿모닝충청 김현정 교수] 연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에서 시작된 촛불은 이제 점점 ‘횃불’로 번지고 있으며, 그 함성도 메카톤급으로 변하고 있다. 12월의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정의’와 ‘민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뜨겁기만 하다. 그 열기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구했던 1960년 4·19학생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1960년 4월의 한복판에서 시를 노래한 시인으로 신동엽을 꼽을 수 있다. 4·19학생운동을 누구보다 전면에서 목격한 그는 당시 ‘학생혁명시집’을 엮었고, 시 ‘산에 언덕에’를 첫시집 ‘아사녀’에 발표하기도 했다. 광화문에 많은 국민들이 모인 12월 3일, 충남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한 ‘2016 신동엽학회 심포지엄’이 열렸다. “신동엽과 금강, 동학, 그리고 백제”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신동엽 시에 나타난 지역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신동엽 시비가 있는 금강가로 갔다. 오랜만에 시인의 시비를 보러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비보다 먼저 맞이했던 4미터 가량의 거대한 ‘반공애국지사추모비’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 자리엔 반공애국지사추모비를 이전했다는 내용이 담긴 ‘반공애국지사추모비 이전 설치’ 표지석만이 있는 듯 없는 듯 세워져 있었다. 당시 신동엽의 맑은 시혼을 담은 시비의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 세워진 ‘반공애국지사추모비’가 이젠 신동엽의 시비에 담긴 그의 시혼을 기리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전한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그의 시비에 새겨진 ‘산에 언덕에’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화사한 그의 꽃 /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 맑은 그 숨결 /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울고 간 그의 영혼 /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아사녀’ 전문)

이 시는 4·19학생운동 때 숨겨간 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절창의 시로, 그들의 영혼이 “산에/ 언덕에” 다시 피어날 것을 소망하고 있다. 그의 ‘담배 연기처럼’도 이때 산화한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쓰인 시로, 그들의 값진 희생의 정신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물론 신동엽을 있게 한, 해마다 4월만 되면 울려 퍼지는 ‘껍데기는 가라’도 빼놓을 수 없다. 4월의 역동성을 가슴으로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기 대전에서도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불의에 저항하는 시 ‘어린 조국에=후렴있는 4월의 노래’가 발표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잊혀진 전여해 시인의 작품으로, 1960년 4월 26일 오후 2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하기 전 당시 ‘대전일보’에 실리게 된다.

칠판에서 선생님들은 / 숫자를 맞추고 있었고 / 귀여운 손가락들 / 사월의 노래를 짓고 / 있었다. / 봄맞이 노래가 아닌 / 비분의 사모친 서곡(序曲)을. // 소근 소근 거리고 싶은 / 입술들이 핏무리 뛰는 / 여울 물결에서 / 눈시울 뜨거운 숨찬 것들이 / 주먹을 쥐었다. / 지휘자도 없이 / 작사도 작곡도 없는 / 노래들이 / 육성이 메마른 / 시민의 뜨락 새에서 / 웅성대는 사월의 맑은 골목 / 거리에서 파도치는 / 새싹들이 목숨의 울림들 / 제목은 “어린조국” 이었고 / 테-마도 “어린조국” 이었고 / “따의 마음” 순진한 고것들이 / 후렴이 요란한 진짜 / 제 노래를 합창해 주었지 / 꽃 술레처럼 양손을 끼고 / 모-두를 대신해 생명의 노래를 / 사월의 맑은 / 시민의 뜨락 넘어서(‘어린 조국에=후렴있는 사월의 노래’  전문)                 

4·19학생운동을 목도한 시인이 거리에 나온 학생들을 위해 노래한 시이다. 전여해는 한 인터뷰에서 “대전고에서 처음 부정 선거 반대 시위가 시작되고, 4·19의 물결이 도도하게 일어났지. 대전일보 편집국장을 하던 친구를 찾아가 내 시를 주며 내라 했어요. 하루종일 망설이는 그와 실갱이를 했지. 실패하든 성공하든 혁명이 끝나고 내 시를 낸다면 그건 시인을 죽이는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쳤어요. 결국 그 친구가 책상을 탕치며 그래 내보자 해서 대전일보에 발표했던 시가 ‘후렴있는 사월의 노래’였습니다.”라고 이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을 술회한 바 있다. 서슬퍼런 시기에 시인은 4월혁명이 끝나기 전에 신문에 시를 실어야겠다는 용기를 보인 것이다. 이는 시인의 사명, 즉 어둠을 밝히는 횃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불의에 맞선 저항의 시를 쓰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여기’에 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기로 뜨겁다. 신동엽과 전여해가 노래한, ‘정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 우리를 ‘광장’으로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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