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험난한 일상 대변
간담이 서늘했던 사고 기억
42년 간 연극과 무용, 퍼포먼스 등의 무대에 서면서 필자가 공연을 못한 건 단 한 번이었다. 1989년 뉴욕에서 뮤지컬 ‘외디푸스 왕’을 할 때의 일이다. 40명의 배우들이 광란의 춤을 추는 장면이 있었다.
필자는 무대 중앙에 덩치 큰 흑인 배우의 배에 올라타 그의 등 뒤로 다리를 감아쥐고 있으면 그가 빙빙 돌면서 나를 돌리는 장면이 있다.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팔 다리를 허우적대며 춤을 추는 처연한 장면이다. 무대 오른쪽에서는 춤에 맞춰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사실 모든 흑인, 백인, 히스패닉 등 모든 인종의 배우들이 벌이는 우리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몇 바퀴나 돌았을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고막이 찢어지고 두개골이 파열되는 듯 한 일순의 느낌(?)이었다.
나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고 눈을 떴을 때는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허공중에 내 몸이 빙빙 돌고 있을 때 다른 배우 하나가 실수로 자기의 동선을 벗어나 나와 정면으로 부딪친 것이다.
상대 배우는 경미한 부상이었지만 난 다음 날 오후까지 병원 침대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공연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을 때, 내 턱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있었다. 그래도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정제 주사를 맞고 공연에 참가했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에선 공연 전 보험가입 필수
우리나라 공연 예술계에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지만, 미국엔 공연 예술가들을 위한 보험이 필수다. 제작자는 반드시 공연 전에 배우나 스탭들을 위해 보험을 드는데, 반면 관객에게 일어날 사고까지 대비해서 관객을 위한 극장 내 사고 보험도 들어준다.
국내 무대엔 무대 장치가 무너지거나 무리한 공연으로 배우나 스탭이 다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미국은 철저한 보안으로 사고에 항시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의 “Break Your Leg!”는 공연을 잘 하자는 하나의 당연한 경고이자 주문인 셈이다. 우리 국내 무대에서도 공연 전에 ‘홧팅!’을 외치는 것이 말하자면 좋은 공연을 위한 경각심이요, 무사를 기원하는 주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