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비정규직의 굴레, 그들은 직장의 신이 아니다
[시사프리즘] 비정규직의 굴레, 그들은 직장의 신이 아니다
  • 안수영
  • 승인 2016.12.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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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영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굿모닝충청 안수영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몇 년 전 TV에서 ‘직장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방송되었다. 매회 드라마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하였다.“IMF 이후 16년, 한국인의 소원은 더 이상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드라마 주인공은‘미스 김’이다. 그녀는 본명 대신에 스스로를 미스 김이라고 이름 짓고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하였다. 현실에는 없는 슈퍼갑 계약직 미스 김과 직장인들의 치고받는 생존기를 코믹하게 다루었다. 요즘 많은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비정규직으로 등장한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장그래 세대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흔히 계약직이라 불리는‘기간의 정함이 있는’근로자를 비정규직이라 한다. 드라마에서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씩씩하고 빛나는 주인공이지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의 비정규직은 서럽고 슬프다. 근로계약 갱신 여부가 결정되는 연말은 더욱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 31일이 되면 계약이 만료되어 직장을 떠나는 많은 비정규직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계약직들은 일주일, 보름, 3개월, 6개월, 1년, 2년 각기 다른 기간을 정해 일하고 계약기간이 다하면 어느 한날 직장을 잃는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새로운 직장에서 우리들의 미스 김, 미스터 김이 된다.

2016년 오늘 우리는 비정규직 600만 시대에 살고 있다. 임금근로자 10명 가운데 3명이 넘는 32.3%가 비정규직이다. 더욱이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작년보다 14만 5천명이나 늘어났다. 특히 여성 임금근로자의 40.3%가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한편 40대를 지나면서 성별에 상관없이 비정규직이 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대개 기업은 경영난에 직면하면 인력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방출한다. 기업 입장에서 회생의 자구책을 마련하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와 상황이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가장 먼저 집어 드는 익숙한 칼날이 아니라 막다른 고비에서 선택하는 궁극의 수단이면 좋겠다.

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들이 닥친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일터를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노동시장에는 유연화라는 태풍이 휘몰아쳤고 많은 이들이 이전보다 쉬운 해고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2006년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은 되려 2년만 고용을 보장하는 장치로 종종 변용되었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근로조건을 보호한다는 본래의 취지는 갈 길을 잃어 버렸다.

비정규직의 굴레는 단지 고용계약 기간이 짧다, 또는 한시적이라는 한 가지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은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고 각종 근로복지 혜택에서도 벗어나 있다. 직장의 승진 사다리는 정규직들만의 리그일 뿐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열외에 있다. 근로조건의 차별 또한 마치 성벽처럼 단단하다. 그렇다고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나 통로가 폭넓게 열려 있지도 않다. 그만큼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옮겨가기 힘들다. 그러니 한번 비정규직은 평생 비정규직이라는 자조어린 한숨을 짓게 한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에 무기계약직이라는 새로운 고용형태를 만들었을 뿐 정규직 전환에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단지 무기계약을 유지할 뿐이다. 한편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일부 근로자들은 같은 직장에서가 아닌 대부분 이직을 통해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는 오늘도 출근을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린다. 누군가에는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내일을 준비하는 희망과 기대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는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안도일 수도 있다. 새해에는 동일노동 동일가치의 인정이 근로기준법에만 있는 문구가 아닐 길 바란다. 글로 배운 세상과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내는 세상이 비슷한 모습이길 바란다. 비정규직은 직장의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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