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하의 작은옹달샘] 투석을 하며 야구 구경도 하고 촛불도 들다
[지요하의 작은옹달샘] 투석을 하며 야구 구경도 하고 촛불도 들다
투석인의 생활을 알려드립니다
  • 지요하
  • 승인 2016.1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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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소설가

[굿모닝충청 지요하 소설가] 2016년 6월 20일 중앙보훈병원에서 복강에 관을 넣는 수술을 받았다. 복막투석을 위한 수술이었다. 수술을 한 날 밤은 밤새 잠을 못 이루며 병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잠이 오지 않아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흘러간 옛 노래’들을 듣다가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을 듣다 보니 마구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날부터 복막투석실을 다니며 투석 실습을 했다. 처음에는 손이 익지 않아 실수도 했고, 복막투석실 간호사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복막투석실 간호사는 엄하면서도 자상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손투석’을 시행했다. 오전 5시와 11시, 오후 5시와 11시, 여섯 시간마다 하루 네 번씩 투석을 하는데, 그 시간이 금세 오곤 했다.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려 사는 형국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다가 사회활동이 많은 나로서는 애로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복막투석을 기계(컴퓨터)를 이용하여 하지만, 에러가 날 경우 기계투석을 중단하고 ‘손투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

7월 하순부터는 ‘기계투석’을 시행했다. 일정 금액의 비용 발생을 무릅쓰고 기계투석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석액과 여러 가지 소모품을 대주는 회사의 간호사가 내려와 기계를 설치해주고, 사용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아내도 함께 숙지했고, 기계투석을 시행할 때마다 아내가 도와주곤 했다.

처음에는 선을 잘못 연결하는 실수도 했고, 이런저런 기계에러를 겪으며 회사의 간호사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기도 했다.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에 전화를 건 적도 있다.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간호사는 매번 친절하게 대처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간호사는 기계의 수만 가지 기능을 한
눈에 꿰고 있는 듯했다.
 
방에서 한강물이 흐르다

기계투석을 시행한지도 150일이 지났다. 다섯 달이 지나는 동안 기계의 특징과 속성을 거의 알게 됐다. 기계가 매우 영특하고, 스스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수도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제는 내 손에 ‘눈’이 생기고 트여서 모든 일이 순조롭다.

하지만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두 번 모두 지난 9월에 있었다. 사고 하나는 배액백의  클램프를 잠그지 않아서 빚어진 일이었다. 배액백에는 두 개의 줄이 있다. 다소 긴 줄에는 기계의 배액선을 연결한 다음 반드시 클램프를 열어야 하고, 작은 줄은 반드시 클램프를 잠가야 한다.

또 클램프 외로 가위 형태의 작은 집게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작은 줄의 클램프를 잠가놓는 것을 깜빡 잊은 모양이었다. 클램프를 잠그지 않으면 가위 형태의 작은 집게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기계투석이 종료된 후의 배액백-초기배액 후 세 번의 약물 주입과 저류, 배액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최종 주입 후 치료가 종료되는데, 세 번 주입된 약물은 대략 2시간 30분씩 체내에 머물고 배출된다. 도합 네 번 배출된 약물의 총량은 12Kg이나 된다.

새벽에 잠이 깨어 스마트폰을 찾느라 손을 움직이다 보니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방바닥에 물이 흐르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상하다 싶어 스마트폰의 전지를 켜고 보니 방바닥에 한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황급히 아내를 깨우고 방의 불을 켰다. 곧 한강물의 연유를 알 수 있었다. 투석기는 ‘저류 총3회중3회’를 알리고 있는데, 배액백은 홀쭉했다, 배액선을 타고 배액백으로 들어간 배출액이 모두 배액백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 것이었다.

밤중에 물벼락을 맞은 형국이었다. 몸이 자유롭지 않은 나는 비켜 앉았고. 아내가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마른 수건으로 방바닥의 물을 훔쳐서 대야에다 짜내곤 했다. 방바닥의 물을 어느 정도 수습한 다음에는 두꺼운 매트 밑으로 잠입해 들어간 물기를 색출해내기 위해 무제한으로 휴지를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물이 닿은 옷가지와 이불은 가차 없이 세탁기 안에다 넣었다. 물에 젖어버린 ‘홈초이스 환자가이드북’이라는 책자와 ‘자동복막투석수첩’은 버리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배액백의 짧은 줄 클램프를 잠그지 않은 실수를 확인했고, 서로를 탓하지 않았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로 함께 다짐했다.

돌발사고로 병원을 찾다

9월 24일이었다. 서울 잠실구장에서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투석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야구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오후 5시에 경기가 시작되니 9시쯤이면 끝날 터였다. 곧장 집으로 달려오면 0시쯤에는 투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과 함께 야구를 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일찌감치 입장권 예매를 했다. 투석을 하게 되면서 영영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야구 구경을 모처럼만에 다시 하기로 하니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졌고, 이상한 긴장감으로 온몸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카세트가 설치된 투석기-매일 밤 대략 9시간 동안 내 몸을 관장하는 투석기의 모습.

그런데 그날 아침이었다. 기계투석이 끝나 뒤처리를 하고 나서 아내가 내 복부 연결관 부위 소독을 해줄 때였다.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내 복부 연결관 부위를 아내가 소독해주곤 하는데(그때마다 마누라에게 감사하면서 마누라가 곁에 있는 내 팔자를 다행스러워 한다), 아내가 처음으로 가위를 사용했다. 연결선과 내 복부 사이를 밀착시킨 특수 거즈가 너무 단단히 응고된 상태라 가위를 사용하기로 했다.

조심을 했지만, 그만 가위로 연결선을 건드리고 말았다. 연결선에 바늘구멍이 생기면서 몸 안의 투석액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거즈로 여러 겹 동여매도 소용없었다. 아내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아내를 책망하지 않았다. 일어나 앉아서 작은 가위 형태의 집게 두 개를 이용하여 일단 몸 안의 투석액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았다. 아침부터 먹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손상이 된 연결선을 고치는 일은 복막투석실이 있는 큰 병원에서나 할  수 있을 터였다.

아침식사 후 아내와 함께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곧장 병원으로 가서 연결선을 수리하면 오후에는 잠실구장으로 가서 야구 구경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서울로 가면서 우선 ‘박스타’ 회사의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박스타 간호사는 토요일임을 걱정하면서 외부에 나가 있는 보훈병원 복막투석실 담당 간호사에게 연락을 취해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토요일이라 근무를 하지 않는 보훈병원 복막투석실 간호사가 밤 10시쯤 병원에 가기로 했다는 전언이었다.

우리 부부는 일단 서울로 갔다. 신림동 딸아이 자취방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는 일찌감치 잠실구장으로 갔다. 일단 야구 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일찍 가야 차를 유리한 곳에 쉽게 대놓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주차장이 이미 꽉 차서 먼 곳에 어렵게 파킹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서 입장을 하여 예약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이후 오랜만에 앉아보는 야구장이었다.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야구 경기를 다시 보게 된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야구장 스탠드에서 집에서 준비해 간 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8회 초 LG트윈스 공격까지 보고 8시 50분쯤 우리 가족은 미리 일어났다. 경기를 9회 말까지 다 보고 일어나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힘들고 10시가 넘어 병원에 도착할 터였다. 그러면 우리보다 먼저 병원에 간 복막투석실 간호사가 나를 기다리는 상황이 빚어질 터였다.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나 때문에 휴무일인 토요일 밤에 복막투석실 간호사가 병원에 가는 것도 미안한 일인데, 환자보다 먼저 가서 기다린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간호사보다 내가 먼저 가서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 가족은 야구 경기 중간에 잠실구장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병원으로 가서 일단 응급실로 갔다. 그리고 한참 후 복막투석실로 갔다. 고맙게도 복막투석실 간호사는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나를 병상에 눕게 하고는 구멍이 난 연결선을 자르고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몸 안의 투석액을 모두 빼내고 새 투석액을 넣어주었다. 집에 가서 내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쯤에 손투석을 한 다음 밤에 기계투석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부부도 민주광장의 촛불이 되다-충남 태안에서 달려와 일단 청계광장 쪽으로 진입한 우리 부부는 우선 사진부터 찍었다. 처음에는 약간 비가 내려 우의를 입었으나 밤이 되면서 비가 그쳐 우의를 벗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11시쯤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보훈병원 복막투석실 간호사와 ‘박스타’ 회사 간호사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했다. 아내는 내 복부 연결선 부위 소독을 할 때 앞으로는 절대 가위를 사용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결국 고마운 하루였다. 오랜만에 야구 구경도 하고(‘한화’가 이기는 것도 보고), 가위를 잘못 사용하여 구멍이 났던 내 복부 연결선도 수리를 했으니, 하루 생활이 기쁘게 마무리된 셈이었다.
그 후 나는 다시 야구구경을 하지 못했지만, 11월 26일 서울에 가서 제5차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시민혁명의 촛불을 들 수 있었다. 매일매일 밤마다 복막투석을 하고 사는 투석환자 신세지만, 내 몸은 하룻밤 광화문 광장의 촛불이 될 수 있었다.

앞으로 또다시 광화문 광장에 가서 촛불을 들 수 있다는 생각, 과거 매주 월요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 가서 시국미사에 참례했던 내 모습을 간혹 복원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나는 매일을 쌩쌩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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