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왜 우후(牛後)보다 계구(鷄口)가 되어야 하나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왜 우후(牛後)보다 계구(鷄口)가 되어야 하나
  • 이규식
  • 승인 2017.01.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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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노사걸 (중국화가)

왜 우후(牛後)보다 계구(鷄口)가 되어야 하나

이눔아
옛말에 이르기를
소똥구녕이 되느니 닭벼슬이 되라 혔다.
옛말이 하낫두 틀린 거 읎어.
니 친구 형 봐라.
갸가 미국소 똥구녕 빨다가 망한 거여.
니가 갸를 도와준다등만
니까지 아예 미국소 똥구녕이 돼뻔진 거냐.

얘라이 요 호로자식 같으니,
조상님 생각도 좀 혀라.
니 할애비두 할애비지만
증조부 고조부께서
이장을 시켜 주든지 어쩌든지 허라구 생야단이시다.
아, 주위에 있는 무덤 속 귀신들이
그 무덤에서 웬 소똥냄새가 심허냐구 지랄헌다는겨.

야, 이눔아
설치구 다니지 말어
해방 때 사람덜이 뭐라구 한중 아냐
미국눔 믿지 말구
쏘련에 속지 말라구 혔어.
그 말이 꼭 맞드라.

니눔은 이 할애비가 농투사니여서 못마땅허겄지만
그래두 이 할애비는 닭벼슬이었어 이눔아
내 땅에 내 땀 흘려 내 거두어 먹구 살었단 말여.
그런디 넌 뭐냐.
뭐 한자리 혔다구 흰소린 모양인디
한자리 헌 눔치구 도둑놈 아닌 눔 있냐.

솔직히 말혀봐.
니눔은 큰 도둑눔 아녀.
도둑놈이기만 허믄 다행이지
조선땅에서 한자리 헌 눔치구
일본소든 미국소든 소똥구녕 아닌 눔 있었냐.

냉수 먹구 속 차려라 이눔아.
어느 년 구멍을 쑤셔서
그런 자식을 퍼질러 놨느냐구
주위에 있는 무덤 속 귀신들이 난리가 아녀.
조신혀라.
소똥구녕이 되느니 닭벼슬이 되라는 옛말
하낫두 틀린 거 읎어 이눔아.

- 김진경, ‘닭벼슬이 소똥구녕에게’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은 옛 격언중 ‘계구는 될지언정 우후는 되지마라 (寧爲鷄口 毋爲牛後)’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뒤는 되지 말아라”라는 뜻인데 무슨 일에든 자부심을 가지고 권력이나 대세에 빌붙어 아부하지 말고 당당하게 자존감을 가지고 처신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김진경 시인의 ‘닭벼슬이 소똥구녕에게’는 바로 그 격언을 질펀한 해학과 풍자로 풀어쓴 시대의 경구로 읽힌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실려 펼쳐지는 할아버지의 질타에는 인간의 처세와 세상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나름의 철학과 신념이 담겨있다. 1991년 발행된 같은 이름의 시집에 수록되었으니 지금부터 30여년 전의 작품일텐데 전혀 생소하지 않다. 갈피를 잡기 힘든 세상에서 나날이 어려워지는 자기관리의 핵심을 짚어주신 농투성이 할아버지의 깊은 경륜과 혜안에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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