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보문산에 '맨발의 호랑이'가 산다?
대전 보문산에 '맨발의 호랑이'가 산다?
대불교 조계종 성불사 향천 스님
  • 최재근 기자
  • 승인 2012.07.10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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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 호랑이’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 동물원이 있으니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란다. 사람이란다. 매일 맨발로 산을 오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별칭이 붙었다고 했다. 좋은일도 많이 한다는 귀띔이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땄다.

며칠 후 전화를 걸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연결됐다. 취재를 했으면 한다고 했더니 한사코 사양한다. 그래도 한번 뵙고는 싶다고 매달렸다. “그럼, 점심이나 드시러 오라”며 있는 곳을 알려준다. 절 이름이다. 대불교 조계종 성불사. 보문산 입구에 있단다. 일반인이라고 들었는데… 궁금증이 더 커졌다.

지난 15일 정오 ‘보문산 호랑이’로 불리고 있는 향천스님(자은. 속명 오세흥.55)을 만났다. 그날은 마침 음력으로 불가에서 말하는 ‘지장제일’이어서 법당에는 스님은 물론 법사님들이 함께 있었다. 막 오전기도를 마치고 점심봉양 중이었다. 그런데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줬다.

보문산 호랑이라는 별칭이 왜 붙었는지 물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해서 거의 매일 보문산에 올랐고, 지금도 365일 중에 왠만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맨발로 보문산을 가다보니까 주변 분들이 보고 ‘보문산 호랑이’라고(한것 같아요), (사실)‘지킴이’라고 하죠. 보사모(보문산을 사랑하는 모임)라고 하는 단체도 만들었었죠.”

보사모는 보문산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 회원은 200~300명 정도였다. 매주 주말에 모여서 보문산을 오르며 산속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처리했다. 아쿠아월드를 짓는다고 했을 때는 반대를 하기도 했다.

“아쿠아월드 자리에 옛날엔 동굴이 있었어요. 어릴 때 배를 타고 들어갔다 나왔던 동굴을 자연 그대로 살렸으면 바랐고, 어느 날 갑자기 시 뭐로 들어가 있다가 갑자기 개발을 한다고 해서 이것은 아닌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놨을 때가 가장 좋고, 그래야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올 수 있는데, 정 반대의 상황이 됐습니다. 지금도 그 부분이 제일 아쉽죠.”

어릴 때부터 보문산을 탔다. 동명중학교 뒤로 보문산에 오르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 헬스를 했는데 어느 날 겨울에 샤워를 하고 나오던 순간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에 먼지가 피워 오르더란다. 그때 “안에서 운동을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그길로 산에 가서 운동을 했다. 평행봉, 아령, 역기 등 운동기구들이 갖춰져 있던 보문산에서 운동을 하고, 정상까지 뛰어서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산에 심취했다.

“산에서 운동도 하고 참선을 하니까 자연스레 산악인이 됐죠. 우리 말로 산꾼이라고 하죠. 24살때부터 전국 1300개 산을 다 다녔어요. 설악산, 속리산, 태백산, 지리산 등 종주를 다했습니다. 지금도 15~20분이면 보문산 정상 오릅니다. 젊었을 때는 8분이면 갔어요.”

소문이 나면서 산악회 쪽에서 의뢰가 왔다. 산악대장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10곳에서 산악대장을 맡았다.

맨발 산행은 1994년부터 시작했다. 참선을 하다보니까 맨발을 벗게 됐고 계속하다보니까 방송에도 나와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부처님이 참선을 하듯이 우리도 선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지기(地氣)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고, 신발을 신으면 그것이 차단된다고 생각해서 맨발로 다니게 된 거죠.”

하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15년 동안 해왔던 전기 일을 하다 1999년 감전이 돼서 한쪽 팔을 잃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낙담 하지는 않았다. 하던 일을 못하게 돼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가슴 한켠에 지니고 살던 불교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중 될 팔자라고 절에다 판다고 그러죠. 어머님이 효동 신광사에 유발상좌로 판 것이 기억납니다. 그 때부터 절하고 연은 맺었죠. 사고 난 이후 다른 일 못하고… 모든 것 접고, 2002년부터 천안 만경사에서 공부한 뒤 삭발계를 했죠. 그리고 2003년에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충남대 병원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한다고 해서 참여했죠.”

병원에 있는 법당을 오가며 5년 동안 호스피스 환자들을 돌봤다. 일반 환자들에게는 자격증이 있는 스포츠 마사지로 봉사를 했다. 이 때 수덕사 주지스님으로 있던 법장스님을 만났다. 그 만남이 불사를 일으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대처승 이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법장 스님을 만나고부터 절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중동에 있는 중앙극장 앞에 자그만 법당도 차렸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마음의 고향인 보문산 앞으로 점안법회를 보고 옮겨 왔죠.”

선화복지재단과 서울 연꽃마을, 꽃동네 등에서도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은 대전, 청주, 청송 등 교도소를 월이나 분기 단위로 순회하며 재소자들을 만나고 있다.

“저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법문이나 경전만을 들려주지는 않아요. 저는 제 삶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사고가 나서 다른 일을 못할 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됐는지를 알려주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죠. 그게 그들로 하여금 반복해서 죄를 짓지 않게끔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납골당이나 복지재단을 만들어 오갈 데 없는 분들을 모시고자 한다. 의지할 데 없는 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생의 업이다.

“내 몸을 움직여서 여러분이 편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금도 앞으로도 생각하죠. 내가 죽는 날 까지 그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매일 저녁이면 맨발로 보문산에 오르면서 쓰레기를 줍고, 훼손된 곳이 있으면 보강을 한다는 그는 보문산을 오르는 이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자연에 살면서 모든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전국 어느 산을 가 봐도 보문산 만큼 쓰레기가 많은 곳은 없어요. 물병하나도 마시고 시루봉에 놓고 가고…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시면 최소한 산에 오시는 분들은 자신이 먹은 것은 자신이 가져갈 수 있도록 봉지 하나쯤은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게 산사람들의 기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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