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광장] 현재, 과거에서 깨는 순간
[청년광장] 현재, 과거에서 깨는 순간
  • 이수현
  • 승인 2017.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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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굿모닝충청 이수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연말이 되면 굳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봐야 할 것 같고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갑자기 시간이 새 것인 듯,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인 듯 소란을 떤다. 그리고 다시 연말은 온다, 죽지 않는 한.

시간이란 무엇인가?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이 세상이란 데 태어나 보니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지만 정작 시간이 무엇인지, 왜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시간은 항상 현재인지도 모른다. 마치, 차를 타고 가면 차창 밖의 풍경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듯 시간도 흐르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있는 것인데 인간이 억지를 부리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대부분 우리의 시간은 과거에 멈춰 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적 시간 안에 있지 못한 증거들이 많은데 그 모든 증거의 중심엔 ‘고정관념’이 있다. 현대 과학자들의 의견을 빌면, 이것은 유전자에 기록이 되어, 나면서부터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고정관념은 인간의 경험이 고착화되어 생기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으로 깨지 않는 한 반복되는 일상이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 주인공 나는 ‘그 여자’처럼 되고 싶어 ‘그 여자’가 되었다가, 고향에 돌아와 ‘그 여자’로 인해 고통을 당했던 여자들을 기억하면서 ‘그 여자’가 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비슷한 기회가 온다면 그녀는 아마 다시 ‘그 여자’가 될 것이다. 왜 신경숙은 ‘그 여자’를 죄인으로 만들고 ‘그 여자’를 집으로 끌어들인 남자, ‘나의 아버지’에 대해선 관대한지 모르겠다. 가부장적 사회의 고정관념이 만든 딜레마다. 남자는 바람을 피워도 대체로 묵인해 버렸던 고정관념 말이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아버지에 대해 ‘왜?’라고 묻고 깨어나야 한다. 모든 사건의 뿌리인 아버지를 의식의 표면 위로 끌어올려 냉철하게 실상을 볼 때 그녀는 비로소 ‘그 여자’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Carpe diem’ 혹은 ‘Seize the day’란 말이 많이 회자된다. 밑도 끝도 없는 이 말은 엄청난 거품 혹은 안개 속에 있다. 매력적인 이 말에 자신을 맡겼다가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도 많다. 그 중 한 사람이 ‘죽은 시인의 사회’의 닐 페리다.

아버지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두려움에 갇힌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으나 인간을 그 안에 고착시켜 과거에 매이게 만드는 아주 지독한 ‘고정관념’의 한 종류다. 닐이 그걸 깨닫기에는 너무 어렸다. 또 누구도 그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키딩 선생 역시 충분하지 못했다.

기욤 뮈소의 ‘지금 이 순간’을 읽으며 ‘23일까지’는 정말 재미가 없었다. ‘23일까지’가 소설 속의 소설이었음과 그 소설이 왜 쓰였는지를 알게 된 순간, 작가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서는 두 자녀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과거에 갇혀 있었고 한 여의사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 등대의 저주에 대해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내의 제안에 따라 소설 속에서 아이들을 죽이지 않음으로 자신의 죄책에서 벗어나며 등대의 저주는 사라진다. 등대의 저주란 다름 아닌, 과거에 매인 인간의 실존이며, 그 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과거를 딛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인간에게 현재가 된다는 메시지다.

과거는 참 집요하다. 우리가 매 순간 작든 크든 그것에게 ‘왜’라고 묻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거기서 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 날의 계획은 작심삼일이 되고, 오늘을 내가 잡거나 즐길 수 없다. 자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현재로 만들고 싶다면 잠에서 깨어야 한다. 잠을 깬 자만이 시간을 누릴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내가 자기 안에 들어와 함께 하기를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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