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죽여주는 직업’에 대하여
[시사프리즘] ‘죽여주는 직업’에 대하여
  • 이홍준
  • 승인 2017.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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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준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체육관광과장

[굿모닝충청 이홍준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체육관광과장] 나라 살림이 휘청거리면서 일자리가 최우선 해결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김대중 정권 출범에서 시작된 경제 살리기는 이후 모든 대통령 후보의 단골 공약이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요원하다. 그 당시 이십 대는 이제 사십 대가 되어 자식의 일자리를 걱정해야만 하니 잘못의 원인을 누구에게로 돌려야 할까?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도 현 정권의 무능을 앞세워 양질의 수십 만 개 일자리 창출을 외치는 후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는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팽창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아르바이트와 같은 비정규직이 일자리로 해석되어야만 하는 현실에서 안정된 직장을 쫓다보니 전문직과 공무원에 쏠리고 있음을 놓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직업은 시대가 변하면서 수많은 관계망 속에 분화되었다. 살아 있음에 만족하고 단지 생계수단을 이어가기 위한 사회의 밑바닥에서 직업이란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배우 윤여정이 주연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보았다. 그녀가 맡은 배역은 ‘박카스 아줌마’라는 여성 노동자로 예순 다섯 살 이다. 아침이면 가방에 박카스를 챙겨 넣고 파고다 공원 일대를 배회하다 남성 노인에게 슬쩍 다가가 ‘박카스 한 병 딸까요?’하고 말을 건넨다. 소영, 그녀는 한국전쟁의 전쟁고아로 태어나 식모살이, 공순이, 양공주 등 철저히 밑바닥 전전하며 살아간다. 가장 아름다워야만 했던 인생 이십대에 미국 흑인병사와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수 없어 해외로 입양을 보내야만 했다. 그녀는 자식에 대한 죄의식을 가슴에 담고 살다 우연한 기회에 버려진 초등학생을 보살피면서 조금씩남아 있는 날들에 대해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가방을 챙겨 출근해 속칭 ‘한 건’하게 되면 받은 돈으로 먹을거리를 사서 귀가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미래를 꿈꿀 수도 없는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노동의 일상은 무덤덤하지만 아이로 인해 조금씩 삶에 활력을 띠게 된 것이다. 어느덧 남성 노인들에게 다가는 것이 당연한 생의 목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이기에 거절당하고 심지어 같은 직업을 가진 여자들에게까지 창녀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어느 날 그녀는 죽음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노인에게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분히 의도적이지 않게 실행을 하게 됐지만 제도권은 그녀를 사회질서를 흔드는 부도덕한 박카스 아줌마로 매도하고 가차없이 실형을 선고한다.

성매매노동자인 소영은 전일근무 직업이 아닌 탓에 길거리를 전전하는 이유로 주변의 눈에 소외당하고 질시를 받아야만 했다. 박카스는 그녀의 삶을 연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지만, 그녀의 몸에 직업병(성병)을 남긴다. 보통 사람들에게 박카스는 자양강장제로 몸의 신진대사를 회복시켜 정신적, 육체적 효과를 증진시켜 주는 상호간 관계개선의 연결고리였지만 그녀는 박카스를 통해 상대방에게 활력을 제공해주고 돈을 받겠다는 전략적 수단인 것이었다.

윤여정은 배역에 대한 인터뷰에서 “그 사람들도 한때는 나처럼 부모 밑에서는 소중한 딸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착잡해졌고 우울해졌다. 사람들은 왜 할 일이 많은데 저런 일을 하느냐고 손가락질 한다. 그런데 영화 속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그것 밖에 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거다.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되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영화를 하지 않았으면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살았을 세계를 안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가 전달해 주는 ‘죽여주는’이라는 수식어는 익히 알고 있는 성적 쾌락의 의미 외에도 죽음을 대신해주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는 후자인 산사람을 살게 하고 죽으려는 사람을 죽게 하는 의미였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죽음 앞에선 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 가장 낮고 소외받는 직업으로 일생을 살았을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세상의 직업은 수없이 많고 이 시간에도 숫자적으로는 여전히 늘고 있다. 작고한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중무장한 탱크주의로 시대를 풍미했지만 남은 것은 파산과 수많은 실직자들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직업을 놓고 당당하지 못한 삶을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행복은 경제적 논리로만 극복되는 전유물에 불과할 따름이다.

‘죽여주는 직업’은 누구도 선택할 수도 선택해서도 안되는 직업이다. 직업의 역사를 보면 매춘은 인류 출현 이후 최초의 직업으로 다룬다. 지금 이 순간 정보화, 속도전이 생존경쟁의 화두로 된 시대에도 인터넷에는 성을 매개로 한 상품이 넘치고 있다. 직업은 인간이 태어나 살아야만 하는 필수적인 선택이지만, 경제가 앞을 분간하기 어렵고 특정 직업에 치우치는 시대일수록 횡행하는 ‘죽여주는 직업’은 지하에서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러나, ‘죽여주는 직업’이 경제 성장의 근간이라니, 먹고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외면해서는 안된다. ‘죽여주는 직업’이 사라져야만 진정한 성평등과 존재에서 관계로 회복하는 사회적 삶의 질이 보장될 것이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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