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아들 등에 업혀 꽃구경 나선 어머니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아들 등에 업혀 꽃구경 나선 어머니
  • 이규식
  • 승인 2017.03.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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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규식

아들 등에 업혀 꽃구경 나선 어머니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 핀 봄날
어머니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봄구경 꽃구경 눈감아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가네.

어머니, 지금 뭐하시나요.
꽃구경은 안하시고 뭐하시나요.
솔잎은 뿌려서 뭐하시나요.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 김형영, ‘따뜻한 봄날’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소리꾼 장사익 선생의 노래로 더욱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시를 읽으며 화창한 봄날 몸무게가 유달리 가벼워진 어머니를 등에 업고 꽃구경 나서는 정경이 눈에 훤히 펼쳐진다. 마을을 지나 본격적인 숲길에 접어들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변모한다. 누구의 외침인지 ‘아이구머니나’라는 탄식이 작품 한 가운데 위치하여 시의 앞 부분과 뒷부분의 느낌이 분리되는 듯 하다.

프랑스 고전주의 동화작가 샤를 페로가 쓴 ‘엄지동이’가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 가난한 나뭇꾼 부부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먹여살리기가 버거워 산에 버리러 간다. 영리한 엄지동이는 이 계획을 미리 알고 하얀 조약돌을 하나씩 떨어뜨려 길을 잃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부모들의 시도는 또다시 이어지고 결국 엄지동이는 숲 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부모와 형제를 구하는 이야기다. 프랑스나 독일 등의 고전동화들은 아이들을 위한 작품으로서는 조금 잔혹한 편인데 현실을 미화하여 보여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제시하며 나름 현실감각과 대처방안을 깨우치라는 유럽사회의 가치관이 배어있다. 아이나 어머니나 가족을 버리러 가는 비극적인 걸음, 길목마다 꽃은 왜 그리 아름답게 피었고 녹음은 왜 그렇게 싱그럽던가.

그러나 ‘아이구머니나’하며 꽃구경의 의미를 깨달은 어머니는 솔잎을 한 웅큼씩 따서 길바닥에 뿌린다. 고려장. 작품 어느대목에서도 이런 슬픈 전통의 가슴아픈 이야기가 내비치지 않지만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러 가는 아들이 돌아갈 때 길을 잃지 않도록 솔잎을 떨어뜨리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배려.

그렇지만 이제는 이 작품을 감상할 때 흔히 언급하는 고려장 프레임에서 한번쯤 벗어나보자.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께 꽃구경 시켜 드리려 들쳐업고 나선 아들, 꽃놀이를 마친 후 함께 집에 돌아가기 쉽도록 솔잎을 뿌려놓은 어머니의 예지라 생각하고 그대로 읽어도 좋겠다. 그러면 곧 활짝 꽃피어날봄날의 아름다움이 더 화사해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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