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① ‘자살’ 그토록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이유
[커버스토리] ① ‘자살’ 그토록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 이유
굿모닝충청 - 충남도 ‘자! 살자! 캠페인’ - 손녀 앞서 보낸 할머니 인터뷰
  • 김갑수 기자
  • 승인 2017.03.23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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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김갑수 기자] 우리는 지금 참으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고자 한다.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떠올려 봤고, 때로는 이웃이나 가족의 예기치 못한 선택으로 인해 큰 충격에 빠진 경험도 있을법한….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자살 소식을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명 연예인에서부터 콜센터 여고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왜 그토록 힘든 결정을 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의 도탄에 빠진 삶을 생각하면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해야 하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줘야 한다.
<굿모닝충청>은 2017년 한 해 동안 충청권 언론 최초로 충남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와 함께 ‘자! 살자! 캠페인’을 전개한다. 기획보도와 캠페인, 토론회 등을 통해 충남도민은 물론 국민 모두가 꽃 같은 삶을 함부로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생명존중문화 확산에 주력하고자 한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나는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생명 중의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은 삶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하는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 1875∼1965)

 

충남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박진아 팀장(왼쪽)과 김기복 씨 사진=채원상 기자

손녀 앞서 보낸 할머니의 눈물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굿모닝충청 - ‘충남도 자! 살자! 캠페인’ - 인터뷰

충남 홍성에 사는 김기복 씨(65). 평생 남에게 해코지 한 번 하지 않았던 그에게 2015년 7월 25일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안긴 날이다.

아들 내외의 이혼으로 손녀를 친딸처럼 키웠는데, 전혀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홍성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씨는 손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수차례 눈물을 흘렸다.

김씨에 따르면 손녀는 밝고 쾌활한 아이었다. 어려서부터 말 타기를 좋아했는데, 전문가들로부터 “장래가 촉망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형편이 어려웠을 때도 있었지만 손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지라 김씨는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손녀는 유치원에서 소풍을 갈 때도 “할머니! 거기에 말이 있어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노부부가 끔찍이 사랑했던 손녀… 딸기 하나를 심어도 손녀 이름 붙여

가정의 분위기도 화목했다. 모든 일을 상의해서 결정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힘을 모아 이겨냈다. 매년 12월 30일이면 가족회의를 열어 새해에 대한 계획을 나누곤 했다.

김씨의 남편도 손녀에 대한 사랑이 끔찍했다. 정원에 딸기 하나를 심어도 손녀의 이름을 붙였다. 어렸을 적 잠투정을 하면 등에 업고 동네를 몇 바퀴 돌며 재웠다. 책을 많이 읽은 남편은 손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그러던 손녀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속을 썩였다. 못된 짓은 다 했을 정도라고 한다. 김씨는 그럴 때마다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때리지도 않는다”며 매를 들었다.

김씨의 성격 상 삐딱하게 자라는 모습이 용납되지 않았다. 손녀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 편이었다. 김씨는 그러나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너를 위해서라면 내 생명까지 내놓을 수 있단다. 그러니 무슨 고민이나 문제가 있거든 꼭 말 하렴….” 김씨는 손녀가 힘든 모습을 보일 때마다 가족 모두를 동원해 사랑으로 감싸줬다. 옷이나 신발도 손녀에게만은 고급 브랜드로 사줬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담임교사를 잘 만나 공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위권이던 손녀는 시험을 치를 때마다 100등 씩 올랐다. 김씨는 손녀가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시간이 흘러 손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자신이 원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활달한 성격인 손녀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좋은 선배들도 많아 김씨는 마음이 놓였다.

김기복 씨

“할머니 지금 버스 탔어요. 금방 갈게요”라던 손녀의 충격적인 사망소식

비 내리는 어느 날 손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받으니까 자꾸 나를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아기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는데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요’ 이래요. ‘집에 오면 되지’ 했는데 갑자기 막 우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다시 물었더니 ‘아뇨, 그냥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요, 그동안 속 썩인 것 너무 죄송해요’ 하기에 ‘우리 아기 철 들었네’ 하고 전화를 끊었죠.”

김씨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이 됐지만, 손녀가 잘 이겨내리라 믿었다. “제가 성공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 2층집을 지어 줄게요. 속도 안 썩이고 효도 할게요”라는 손녀의 약속도 잊지 않았다.

7월 25일, 그날도 비가 내렸다. 아침 8시 30분 쯤 손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머니 지금 버스 탔어요. 금방 갈게요.” 김씨는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9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손녀는 오지 않았다. “얘가 대체 어딜 간 거야?”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10시 쯤 개 짖는 소리가 났다. 밖을 내다보니 차에서 내린 두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경찰인 두 남자는 손녀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죽을 이유가 없잖아요!” 소리도 질러 봤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손녀는 친한 언니와 수차례 통화하며 한 아파트로 올라갔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는 얘기를 뒤로 한 채 꽃 같은 생명을 던진 것이었다.

이렇게 김씨는 눈에 넣어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손녀를 먼저 보냈다. 김씨는 혹시라도 손녀가 자신의 심정을 적은 글이라도 있을까봐 휴대폰과 수첩 등을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남들이 이런 일을 겪으면 그럴듯한 말로 위로도 잘 해줬고, 젊어서부터 어려운 사람들의 멘토가 되어 주는 일을 즐겨 했었는데 제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3일장을 치르는 동안 김씨는 여러 차례 정신을 잃었다. 손녀의 친구들 수백명이 빈소를 찾았다. 김씨는 “얘들아! 내 모습을 보렴. 손녀가 이런 선택을 하니 우리 가정의 행복이 다 깨졌잖니! 너희들은 절대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며 울부짖었다.

손녀 따라가려 유서까지 써놓았던 김씨…“더 이상 이런 일 발생하지 않아야”

이유도 모른 채 손녀를 떠나보낸 김씨의 가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씨 역시 “손녀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으로 유서까지 써놓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비참해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군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김씨는 “저 좀 도와주세요!”라며 매달렸다. 이어 충남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김씨는 충남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를 통해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제공: 충남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김씨는 다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위로가 됐다. 저마다 가슴 찢어지는 경험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김씨는 ‘더 이상 숨기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통해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할 때마다 “주여! 저 영혼을 용서하소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어렵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인 듯 했다.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드러내면서까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얘기를 남겼다.

“손녀는 아직 제 가슴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게 편해요. 한 순간도 손녀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없지만,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작은 일이라도 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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