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리즘] 간절한, ‘참 좋은 말’
[시사프리즘] 간절한, ‘참 좋은 말’
  • 김현정
  • 승인 2017.03.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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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교수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굿모닝충청 김현정 문학평론가, 세명대 교양과정부] 얼마 전 가족이 모여 치킨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중학생 아들이 갑자기 “이 치킨 개맛있다”라고 말하였다. 평소 친구들하고 쓰던 말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쓰고 있었다.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한, ‘정말’이나 ‘매우’의 의미로 쓰인 ‘개-’가 들어간 이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빈번하게 사용되던 ‘왕-’, ‘짱-’, ‘캡-’, ‘초-’, ‘완전-’의 계보(?)를 마치 ‘개-’가 잇는 듯하다.

‘개-’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대부분 동물 ‘개’에서 비롯하는데, ‘개고생’, ‘개망신’, ‘개망나니’ 같은 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분히 좋지 않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그리고 ‘개꿈’, ‘개죽음’이라는 말은 ‘쓸데없는’, ‘헛된’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개차반’은 반찬을 가리키는 ‘차반’에 ‘개’가 붙어 언행이 매우 안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말이 되었다.

또한 ‘개’는 ‘참(眞)’과 다른, ‘질이 떨어지는’, ‘유사하지만 다른’ 같은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개떡’, ‘개살구’, ‘개꽃(먹지 못하는 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처럼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개-’가 형식과 내용적인 면에서 ‘일탈’을 꿈꾸고 있다. 명사 앞에서만 쓰이던 ‘개-’가 형용사 앞에 붙어 어법을 깨뜨리고 있으며, ‘개귀찮다’, ‘개시끄럽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개좋다’, ‘개예쁘다’ 등의 긍정적인 말로까지 사용되어 긍정과 부정을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적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물론 언어질서의 파괴라는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도 우리가 이 언어적 일탈 속에 숨겨진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 사회에 대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 내지는 부정 심리를 읽어내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불안한 청소년들에게 ‘참 좋은 말’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 천양희의 ‘참 좋은 말’ 전문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말”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조화의 중요성을,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을 통해 열정적인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말이 그들에게는 간절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지금 이곳’에 만연해 있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욕설과 분노, 거짓과 간계, 사악과 아첨 등의 나쁜 말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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