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률의 영화읽기] “小는 大를 위해 존재한다”
[고광률의 영화읽기] “小는 大를 위해 존재한다”
10편 10색-영화, 생각을 지배하다 ② 장이모우 감독 ‘영웅’ (상)
  • 고광률 소설가
  • 승인 2017.04.04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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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고광률 소설가]

사이렌이 부르는, 절절하고 애틋한 中華사상

세상의 중심, 중국
일본은 하토야마 총리 시절 오키나와 후텐마 미공군기지의 이전을 추진했고, 이 바람에 두 나라 사이가 껄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워낙 미군 범죄가 장구한 세월 동안 극성인지라 기지이전은 고려할 문제였습니다. 이때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이 그 기지를 내놓는다면, 또 그 기지가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면 우리가 받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참 순진무구한 대통령이었지요. 이 말은 뒷날 제주 강정마을에 군용 항만이 들어서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후텐마 미공군기지를 한국에 들여놓겠다는 것은 다행히 그냥 눌러 앉는 것(하토야마의 실각으로)으로 끝났지만, 만약에 한국에서 유치라도 했다면 유사시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타깃의 중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아찔했지요.

이번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과 맥락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차원이 완전히 다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1962년 구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해서 미국과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말하자면 소련이 미국의 턱 밑에 칼을 들이댄 격이었지요. 미사일은 공격용 무기요, 사드는 방어용 무기라는 차이점은 있으나, 방어에 유리한 입장이라면 그만큼 공격 조건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보통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화가 난 중국이 대략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잊어진 여인이 더 비참하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아무튼 한국에 대한 보복과 핍박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런 극언을 한 중국은 어떤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나라인가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장이모우는 중국의 ‘국민 감독’입니다. ‘황후화’, ‘5일의 마중’ 정도만 가만히 들여다봐도 대단한 애국자요 전체주의 예찬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민족, 여러 나라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면서 하나로 합쳤다가 다시 여럿으로 흩어졌다가 하면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된 것이지요.

장이모우는 《영웅》을 통해 이런 중국에서 ‘뭣이가 중헌지’를 말해줍니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로만 들려주지 않고, 아주 신묘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중국제일 중국 우선이라는 중화사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먼저 소(小)는 대(大)에 우선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는 통합[中華]을 뜻하고 소는 분열을 뜻한다는 것이지요. 대로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소는 언제 어디서나 희생되어질 필요가 있을뿐더러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대는 안정과 번영을 이루는 필요조건이요, 소는 불안과 분쟁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티끌 같은 개인사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공유하는 천하의 일이라는 것이지요. 부모 형제의 억울한 죽음도 ‘천하’라는 명분 앞에서는 의미가 작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죽음이 전체의 바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고를 합니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사적 의견과 복수를 위해 천하의 명분에 덤벼든다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잃게 되는데, 지극한 사랑마저도 잃어버린다고. 사랑이 인간 지고의 덕목이라 하지만, 전체는 이 사랑마저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웅》은 이 섬뜩한 중화사상을 아름다운 영상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포장한 작품입니다. 보면, 그저 멋지고 우아하고 아름답지요.

그러나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시면, 대체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저런 발언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하’ 명분과 사적 복수의 다툼

영화의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 시대 배경을 일러주는 자막이 올라가고 영화는 시작됩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한 전설적인 무사 무명(이연걸)이 진시황[영정]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백여 개가 넘는 촛불이 진위의 가늠자인 양 켜져 있습니다. 무명이 거짓을 말하면 촛불은 흔들립니다.

무명이 영정의 암살을 기도했고, 또 기도하고 있는 세 명 자객의 무기를 거둬 영정에게 바칩니다. 셋을 다 처치했다는 뜻이지요. 영정은 이 충성심 깊은 기특한 무사에게 상을 내리면서 세 명의 무사들을 처치하게 된 과정을 묻습니다. 후일담을 들려달라는 것이지요. 무명은 은창을 쓰는 장천을 죽인 얘기부터 시작합니다. 얘기가 끝나자 칭찬과 함께 그에 따른 상을 받고 영정 쪽으로 더 다가앉습니다. 두 번째로 파검과 비설을 서로 이간시켜 비설로 하여금 파검을 죽이게 했다는 얘길 들려줍니다.

그러나 최고 고수 파검과 비설을 처치한 이야기를 듣던 영정은 무명이 거짓 이야기를 만들어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 둘 사이의 거리가 십 보입니다. 무명은 ‘십보일살(十步一殺: 아무런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아도 십 보 안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일 수 있는 기술)’의 필살기를 닦은 고수였는데, 결국 영정은 십 보 안에 들어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는 세 가지 관점으로 진행됩니다. 무명이 하는 거짓 이야기는 적색으로, 영정이 하는 추정 이야기는 청색으로, 객관적 이야기(팩트)는 백색입니다. 무명이 먼저 은창을 사용하는 장천을 죽인 무용담으로 시작을 하지만, 영정은 무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차츰 의구심을 갖게 되고, 결국 둘 사이에 진실 게임이 벌어지면서 영화는 흥미를 더하게 됩니다.

철천지원수 영정을 십 보 안에 둔 무명은 그를 죽일까요? 그리고 섬뜩한 중화사상을 장이모우는 과연 어떻게 영화로 형상화해냈을까요.

 

고광률
소설가이자 문학박사이다. 소설집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 장편소설 ‘오래된 뿔’ 등을 발표하였다. 수년 간 기자와 출판사 편집자를 지냈고, 대중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문예창작 및 미디어 관련 출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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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6 08:22:14
영화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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