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고양이와 봄, 감각의 충만을 위하여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고양이와 봄, 감각의 충만을 위하여
  • 이규식
  • 승인 2017.04.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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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르고뉴. 사진=이규식

고양이와 봄, 감각의 충만을 위하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봄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가 뛰놀아라.

-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봄이다. 앞 다투어 피는 꽃들이 시각, 후각, 촉각 같은 우리 몸의 감각체계를 자극하면서 봄의 관능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어차피 얼마가지 않을 짧은 시한부 향연이라지만 봄꽃의 유혹에 우리는 점차 무디어지는 것은 아닌지. 삶의 굴레, 일상의 고단함 그리고 어차피 며칠 뒤면 지고 말 봄꽃의 무상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변해야 할까. 저 꽃잎처럼 홀연히 흩날리며 사라질 삶의 숙명 앞에서 잠시 꽃을 즐기며 우리 몸의 감각을 무장해제하고 흠뻑 봄의 정취에 취해본들 어떠하랴

주로 꽃으로 상징되는 봄의 감각을 이장희 시인(1900-1929)은 고양이로 옮겨 노래한다. 1920년대에는 고양이가 반려동물로서 지금 누리는 지위 와 다른 양상이었겠지만 그 당시 우리 시단에 물밀 듯이 유입된 프랑스 낭만주의, 상징주의 시의 영향에 깊게 경도된 듯 이장희 시인은 고양이 신체 각 부위에서 봄의 미세한 감각, 추상적이고 관념으로 흐를법한 봄의 느낌을 구체적인 비유와 표현으로 형상화해 놓았다.

낭만주의 사조와 그 후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발흥한 상징주의 시학이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하여 한꺼번에 유입되어 당시 우리 시인들은 그 도도하고 충격적인 물결에 깊이 경도, 침잠해 있었다. 1924년에 쓴 이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라는 시간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감각이나 묘사,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과 감성은 매우 현대적이다. ‘봄은 고양이로다’를 읽으면 이내 상징주의 시의 원조 보들레르의 ‘고양이’가 떠오른다.

이리 오렴, 내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나의 이 가슴에;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로 섞인 아름다운 너의 눈 속에
나를 파묻히게 해다오.

한가롭게 네 머리와 부드러운 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을 때,
전율하는 네 몸을 더듬는 즐거움에
내 손이 도취할 때,

나는 마음속 여인을 그려 본다. 그녀의 눈매는
너처럼 사랑스러운 짐승
그윽하고 차가워 투창처럼 자르고 갈라지는구나,

그리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분위기, 위험한 향기는
그 갈색 육체 언저리를 헤엄친다.

                                   - 보들레르, ‘고양이’ 전부

비슷해 보이지만 고양이를 제재로 이장희 시인, 보들레르가 펼쳐놓은 감각의 실타래는 사뭇 다르다. 우열을 가리기 보다는 70년이 넘는 시간편차, 산업혁명기 유럽과 식민지배하 우리나라라는 공간적 여건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에게서 봄과 여인을 연역하는 시인의 재기발랄한 상상의 솟구침이 짜릿하게 다가온다.

어수선한 시국과 팍팍한 삶의 형편을 잠시 잊고 무르익어 가는 봄의 정취, 어김없이 돌아온 그 축복의 계절을 향유할 이즈음이다. 고양이와의 내밀한 교감, 그리고 보들레르가 고양이를 보며 꿈꿨던 여인의, 인간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잠시의 여유가 필요한 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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