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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여리지만 강인한 초록이 이끌어 가는 세상

    뉴질랜드 북섬. 사진=이규식

    여리지만 강인한 초록이 이끌어 가는 세상


    잠깐 초록을 본 마음이 돌아가지 않는다.

    초록에 붙잡힌 마음이

    초록에 붙어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마음이

    종일 떨어지지 않는다

    여리고 연하지만 불길처럼 이글이글 휘어지는 초록

    땅에 박힌 심지에서 끝없이 솟구치는 초록

    나무들이 온몸의 진액을 다 쏟아내는 초록

    지금 저 초록 아래에서는

    얼마나 많은 잔뿌리들이 발끝에 힘주고 있을까

    초록은 수많은 수직선 사이에 있다

    수직선들을 조금씩 지우며 번져가고 있다

    직선과 사각에 밀려 꺼졌다가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흙이란 흙은 도로와 건물로 모조리 딱딱하게 덮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초록이 갑자기 일어날 줄은 몰랐다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잘리고 갇힌 것들이

    자투리땅에서 이렇게 크게 세상을 덮을 줄은 몰랐다

    콘크리트 갈라진 틈에서도 솟아나고 있는

    저 저돌적인 고요

    단단하고 건조한 것들에게 옮겨 붙고 있는

    저 촉촉한 불길

    - 김기택, ‘초록이 세상을 덮는다’ 전부

    [굿모닝충청 이규식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대학 부임 후 처음으로 졸업논문을 지도하게 되었다. 몇 명 안 되는 그룹이지만 이름을 하나 붙이는 게 좋겠다 싶어 ‘초록회’로 지었다. 무심결에 떠오른 명칭이었는데 젊음과 싱싱함, 진취성 등이 우선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초록회 멤버는 늘어나 200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는데 사회로 진출한 졸업생들은 “연하지만 불길처럼” 성실하고 씩씩하게 일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빨주노초파남보 가시광선 맨 한가운데 있는 녹색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흥분한 사람도 진정시킨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나무, 숲, 풀, 깊은 바다가 연상되는 녹색을 활용한 치료, 심신정화효과는 여러 임상사례와 연구를 통하여 증명되고 있다.

    이양하 선생의 수필 ‘신록예찬’이 기억난다. 교과서에서 입시준비로 공부한 작품이었지만 졸업 후에 오히려 여러 구절이 새롭게 떠오른다. 이제 초록찬가로 현대시 한 편을 보태면서 김기택 시인이 ‘초록이 세상을 덮는다‘에서 노래한 초록에 대한 신뢰, 초록을 향한 긍정의 시선에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마지막 구절 “단단하고 건조한 것들에게 옮겨 붙고 있는/ 저 촉촉한 불길”이라는 절구는 인상적이다. 아무리 세상을 부정적으로, 비판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녹색의 힘, 초록의 포용력과 너그러움을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잘리고 갇힌 것들이/ 자투리땅에서 이렇게 크게 세상을 덮을 줄은 몰랐다”는 평범하지만 놀라운 사실에 눈을 돌린다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이규식  victorhugo21@goodmorning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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