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오연한 기개와 자부심, 시인 ‘대한민국 김관식’
[이규식의 이 한 구절의 힘] 오연한 기개와 자부심, 시인 ‘대한민국 김관식’
  • 이규식
  • 승인 2017.04.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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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보문산 김관식 시비. 사진=대전문학관

오연한 기개와 자부심, 시인 ‘대한민국 김관식’

해 진 뒤, 몸 둘 데 있음을 신에게 감사한다!
나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하노니
자조근로사업장에서 들여온 밀가루 죽(粥)이나마 연명을 하고
호랑이표 시멘트 크라프트 종이로 바른 방바닥이라
자연 호피를 깔고
기호지세(騎虎之勢)로 오연(傲然)히 앉아
한미합동! 우정과 신뢰의 악수표 밀가루 포대로 호청을 한 이불일망정
행(行). 주(住). 좌(坐). 와(臥)가 이에서 더 편함이 없으니
왕(王). 후(候). 장(將). 상(相)이 부럽지 않고
백악관 청와대 주어도 싫다
G.N.P가 어떻고,
그런 신화 같은 얘기는 당분간 나에겐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김관식, ‘호피(虎皮) 위에서’ 전부

김관식 묘소

[굿모닝충청 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이규식 시인이라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베레모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깡마른 체구로 무엇인가 고뇌하는듯한 표정을 짓는 인물을 떠올리게 했다. 대체로 살이 찌지 않고 수척한 모습에 세속적인 현실로부터 한 걸음 비껴선 인상이 시인을 연상케 했다면 그 이유는 우리 기억에 떠오르는 얼마 되지 않는 유명 시인들의 모습이 대체로 그러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李箱)이 그 전형이었고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윤동주 시인 또한 여린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1920년대 유럽의 낭만주의, 상징주의가 뒤섞인 채 우리 현대시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기 시인들이 보여준 우국지사로서 또는 현실일탈의 모습이 거기 겹쳐지기도 할 것이다.

지금처럼 시인이 넘쳐나는 시대,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지난 시절 독특한 시인의 전형을 다시금 떠올리면 김관식 (1934-1970) 시인이 나타난다. 36세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사후 출간된 시 전집「다시 광야에」에 수록된 작품이 80편 남짓이니 대단한 과작임에도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김관식 시인의 이름은 독특하게 빛난다. 동양적 예지를 바탕으로 깊은 한학지식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비속한 현실을 통렬하게 비웃는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회자되는 기행(奇行)은 그의 사후 세상의 변모와 함께 거듭 새롭게 조명된다. 체면과 가식의 굴레를 거침없이 걷어차며 짧은 생애 그가 보여준 문학과 삶은 특히 독특한 언행은 사실 인간의 의식, 무의식 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나 이런 이유 저런 염려로 행동에 옮기지 못한 금기를 과감히 깨뜨린 것에 다름 아니다. 김관식 시인이 문인 출판기념회에 가서 “.... 이런 것도 책이라고 나오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며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고 싶다 하더라도 여러 생각에 자기통제에 그치고 마는 말과 행동을 좌고우면 않고 해버린 과감성이 그에게 ‘기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셈이다. ‘시인’이므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리에 김관식 시인은 충실하였을 따름이다.

그가 활동하던 1950-60년대 삶의 궁핍함, 더구나 물질적 풍요로부터 비껴난 가난한 시인의 일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과 생각이 ‘호피(虎皮) 위에서’를 통하여 진솔하게 나타난다. 허세, 공허한 호기 또는 아웃사이더의 자기합리화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호랑이표 시멘트 포대를 방바닥에 발라놓고 호랑이 껍질을 깔고 누웠노라 일갈하는 가난하지만 유유자적하고 호방했던 삶은 온전히 그의 선택이고 고유한 시적 영역에 속한다. 2010년대 더욱 가속화된 물질탐닉, 향락추구 세태 앞에서, 196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대한민국 김관식’ 일곱 자를 새긴 명함을 돌리던 김관식 시인은 무슨 말을 할까, 어떤 시를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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