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추사 초의정송 반야심경첩(秋史 草衣淨誦 般若心經帖)
[탄탄스님의 ‘산방원려(山房源慮)’] 추사 초의정송 반야심경첩(秋史 草衣淨誦 般若心經帖)
  • 탄탄(呑呑) 스님
  • 승인 2017.04.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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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여진선원 주지동국대 출강

[굿모닝충청 탄탄(呑呑)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여진선원 주지] 미술품을 수집하는데 첫 번째 관문은 돈이다. 명품을 눈앞에 두고도 애호가가 소장하지 못하는 되는 것은 소유욕 이전에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미술품을 애호하고 연구하는 것도 금전적인 토대가 있어야 수집과 소장이 용이하게 되는 것이며, 아무리 좋은 작품이 눈앞에 있어도 그 물건을 내가 소장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그림에 떡’인 것이다.

몇해 동안 그토록 속을 끓이다 소장하게 된 『초의정송 반야심경』이 그러한 사례이다. 수행(修行)하는 이에게 현금 수백만 원은 큰돈이 아닐 수 없다. 고서점에 비치된 것을 불안해하며 날마다 팔렸는가 확인해보는 애호가의 심정은 같은 취미를 지닌 이라야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추사 또는 완당이라 불리는 김정희는 여러 형태의 반야심경을 남겼지만 『초의정송 반야심경』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제주에 유배 중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향토지 기록이 근래에 발견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추사는 1840년(현종 6년) 9월 55세의 나이로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목 대정현(현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유배되게 된다. 벼슬이 종2품 병조참판과 정3품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지만 10년 전의 사건에 휘말려 유배된 뒤 현종 말년인 1848년까지 길고 긴 9년의 유배생활 가운데 가장 큰 슬픔을 겪게 된다.

1842년 12월 15일 유배지인 제주로 날아든 비보, 아내 예안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었다. 한 달이 지나서야 접한 비극적인 부음에 애끓는 통곡을 하며 피눈물로 ‘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哀逝文)’을 지어 본가에 부치고 난 뒤 영궤(신위를 모시는 자리) 앞에 고하게 하고, 통곡의 제문을 지어 아내 잃은 슬픔을 토로한 추사는 상복을 2년 뒤 대상을 치를 때가 되어서야 벗었다고 하니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다.

추사는 아내의 죽음 이후 지은 시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에서 40여년 가까이 살아온 부부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권문세가에 태어나 한껏 누리고 살아오며 왕년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벗어 버리고 인생무상과 불교적 진리에 더욱 심취하게 된다.

이듬해 봄, 아내를 잃고 상심해 있는 추사를 위로하기 위해 초의선사가 제주를 찾아온다. 이 때 초의는 추사 유배지에서 근거리인 안덕면 사계리 소재 산방산 굴암에서 지내면서 추사와 교류한 것으로 제주인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1978년 발행된 ‘남제주 군지’에는 ‘조선조 말엽 현종 때 초의가 이 절에서 수도하였으며, 유배 중 추사에게 청하여 밀다경(반야심경)을 써 널리 전하였다’고 구전되어 온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 감정위원이었던 김순이 씨는 “초의가 추사를 찾아온 때가 추사의 부인 49재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의는 예안 이씨의 명복을 빌며 친구로 하여금 평생의 반려자를 잃은 슬픔을 딛고 생의 의욕을 찾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 이라며 “모든 명작에는 반드시 사연이 있는 것처럼 이때 추사는 거칠고 험한 겨울 바다를 목숨을 걸고 건너와 허망에 빠진 자신을 구원해 주는 초의의 우정에 대한 보답으로 산방굴사를 찾아가 독경하는 초의선사 곁에서 이른바 ‘초의정송 반야심경’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추사 초의정송 반야심경 탁본첩

추사는 ‘초의정송 반야심경’ 끝에 자신의 다른 작품과 달리 사경한 소회를 밝히는 기문(記文)을 덧붙여 숨겨진 뜻을 추정할 수 있도록 단서를 남겼다. 목판본으로 제작되어 사찰과 불자들에 의하여 널리 애송되고 애용되는 대표작이 이 작품이다. 해서체로 쓰인 이 서첩의 굵은 획은 대나무를 쪼개 듯, 가는 획은 번개가 꽂히듯, 추사의 독특한 서체를 그대로 드러낸 추사 해서체의 백미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추사는 1장에 2행으로 10자씩, 제목을 포함하여 모두 31장으로 구성한 이 서첩에 특이하게도 반야심경 전문을 쓰고 나서 46자나 되는 기문을 붙여 놓았다. 통상 작품 제작 이유를 설명하는 기문은 본문보다 작은 글씨와 다른 필체로 적어 구분하는데 추사는 이 기문을 본문과 다름없는 서체와 크기의 비교적 긴 문장으로 적어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반야심경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이 기문에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단파’와 ‘찬파’라는 그의 아호와 함께 추사의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의주인’까지 찍혀 있어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김순이 문화재 감정위원은 “인장에 새겨진 것은 용이 아니라 부처가 해탈하기 위해 참선에 들었을 때 악귀들로부터 부처를 보호해준 대지의 정령 ‘나가’라는 뱀으로 보인다” 며 “추사가 반야심경에 사용한 인장은 ‘단파’와 ‘찬파’라는 아호처럼 은유와 상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해탈의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이렇게 ‘단파’와 ‘찬파’라는 추사의 아호에 대해서는 반야심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불교에서 가장 널리 독송되는 반야심경의 정확한 명칭은 지혜를 구하는 경전이라는 뜻인 ‘마하반야 바라밀다심경’으로 고대 인도어의 산스크리트어(범어)를 한역하여 불교의식에서 독송한다.

추사는 반야심경 등의 불경을 쓸 때나 불교 관련 글에서 주로 ‘단파’라는 아호를 썼지만 정송 반야심경에서는 ‘찬파’도 아울러 썼다. ‘단파’와 ‘찬파’는 해탈에 이르기 위한 대승불교의 수행 덕목인 육바라밀 중 첫 단계인 ‘단파라밀(보시)’과 세 번째 단계인 ‘찬파라밀(인욕)’을 뜻하는 것이다.

추사는 불교에서 가져온 아호를 불경이나 불교 관련 글에서만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호와 함께 이 작품에서 독특함을 더해주는 도장 ‘여의주인’은 불교의 신 ‘나가(那迦)’를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17편의 편지첩을을 묶어 ‘나가묵연(那迦墨緣)’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과 연관해 보면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추사의 인장은 현재 수십 점이 남아 있으며, 제주도 유배시절 제자인 필장(筆匠) 박혜백이 소장했던 ‘완당인보’에 실린 180개의 낙관(落款)에 이 ‘여의주인’이 포함되어 있다.

정리해 본다면, ‘초의정송 반야심경’은 추사가 유배 중 아내까지 잃고 절망의 벼랑 끝에선 추사가 반야심경을 사경함으로써 고통을 여의고 깨달음에 이르고자 한 강렬한 구도의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과정을 뜻하는 아호인 ‘단파’, ‘찬파’와 함께 부처의 해탈과 관련이 있는 악귀들로부터 부처를 보호해 준 대지의 정령 ‘나가’라는 뱀으로 볼 수 있는 ‘여의주인’은 은유와 상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해탈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초의정승 반야심경’은 추사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집약한 귀중한 서첩이다. 추사의 기문을 해석해 보면 ‘세속의 때가 묻은 몸으로 이 경을 기록하는 것은 곧 화중연화(火中蓮華, 불속에서 핀 연꽃)’이다. 생각하건데 초의가 이 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불교를 지키는 금강역사에게 웃음을 살 것이다.

단파거사가 초의께서 정결한 마음으로 읊게 하려고 썼다. 단파는 또한 찬파라고도 씀을 아울러 기록한다. 서지정보(書誌情報) 또한 이렇게 명쾌하고 정확하다.

이 귀중하고도 보배 가운데 보배인 서첩을 몇 년 동안이나 소장할 수 없어 마음을 졸이며 지내다가 결국은 크게 마음먹고 구입하였다. 1997년(불기 2541년) 5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초의선사 행적을 기리기 위한 특별 기획전 행사의 일환으로 승려 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연구소가 주관하여 발행한 초의선사 74페이지에 박영돈 소장본, 일산 원각사 성보박물관 소장본과 이번에 구입한 이 서첩이 내가 본 전부인데 혹 세상 어디엔가 몇 권 더 있다면 이 서첩의 진가는 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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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난 2023-09-16 14:31:56
추사가 직접 쓴 반야심경은 없다고 예산의 박물관 사무실에서 들었는데...이렇게 버젓이 존재 한다니 감동입니다. 글씨의 진위를 논 할 필요도 없는 참으로 귀한 보물 입니다. 서각을 하기 위해 반야심경 영인본을
찾다가...외람된 말끔입니다만 영인본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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