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낯선 리더’ 정용선 전 경기청장이 말하는 섬김의 자세란?
[단독] ‘낯선 리더’ 정용선 전 경기청장이 말하는 섬김의 자세란?
충남 당진 출신 경찰대 3기 수석 졸업, 30여년 경찰 경험 담아낸 자서전 발간해
  • 유석현·남현우 기자
  • 승인 2017.04.2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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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충청 대담=유석현 기자, 사진=남현우 기자] “개천에서 용 났다더라... 용이라는 표현이 부담스럽지만 기분은 좋네요.”

18일 오후 4시, "넉넉지 못했던 어린 시절 덕분에 더 치열하게 살 수 있었다"고 말하는 ‘무한긍정’의 전직 경찰을 만났다.

그는 동료들에게는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친구로, 후배들에게는 일상에 지친 스트레스를 다독여 주는 이웃집 형으로, 선배들에게는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후배로 30년 경찰생활을 했다. 그러다보니 ‘낯선 리더’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됐다.

경찰대 3기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0여 년 간 요직에서 대한민국 치안을 이끌었던 정용선 전 청장. 그는 퇴직 후 고향 당진에서 그의 일생을 담백하게 담아낸 자서전 ‘낯선 섬김’을 집필, 여타 자서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문체로 화제를 낳았다.

현재 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에서 후학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정용선 학장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30여년 만에 고향에 온 소감이 어떤가요?

고향이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퇴직하고 당진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포근함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어릴 적 추위에 떨다가 어머니를 만나 품에 안긴 듯한 따스함이랄까요?

조선시대 선비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나아갔다가도 퇴직 후에는 고향에 내려가 다시 학문에 몰두하거나 후학들을 양성하곤 했죠. 제가 고향에 돌아와 교편을 잡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서전을 읽어보면 태몽이 남달랐다면서요?

(수줍게 웃으며) 자서전이다 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서 써내려갔는데 다시 말하려니 쑥스럽네요. 어머니가 저를 갖기 전 꿈을 꾸셨답니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어딘가를 걷던 중 수염이 길게 기른 흰 옷의 노인을 만났대요.

노인이 어머니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따라오라고 하자 어머니는 뭐라도 홀린 듯 뒤따라 가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황룡 한 마리가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들어 잠에서 깨셨고, 그리고 나서 아이를 갖게 됐는데 그 아이가 바로 저랍니다.

경찰대 수석 졸업에 행정학 박사까지 학구열이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넉넉지 못했던 학창시절이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저 뿐만이 아니라 형님까지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전답을 팔아가며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물론 시골에서야 흔한 일이긴 하지만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힘들 때도 끈질기게 버텨냈던 것 같아요.

“공부하다 죽은 사람 없다. 죽도록 공부하라”고 강조하셨던 고교시절 은사님들의 말씀도 한 몫 한거 같아요. 요즘처럼 부족함이 없는 시절과 달리 그 때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30년 동안 경찰에 몸담으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겪어왔습니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경찰에 몸담아오면서 보람찼던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네요.

재직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안활동이었습니다. 당연하게 관련 치안정책을 꾸준히 추진하게 됐죠. 2012년 제가 충남경찰청장으로 재임할 당시 노인안전치안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같은 해 노인의 날에 충남경찰청은 대통령 단체표창을 받기도 했고 저도 성균관장 표창과 대한노인회장 감사패 등을 받게 됐죠. 이후로도 충남청을 비롯해 제가 근무했던 대전청, 경찰청 수사국, 경기남부경찰청까지 4개 기관이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잇달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람을 느낀 부분은 상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충남을 시작으로 2014년부터 노인치안활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경찰 재직 때 신념이 있었다면?

처음 임용될 때 두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하나는 경찰대를 다니면서 수업료와 생활비 걱정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가에 빚을 갚아가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적어도 비오는 날 함께 근무하는 부하 직원들이 비를 맞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소신 있고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부족했던 점이 많다고 생각돼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자서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먼저 출간의 계기가 무엇인가요?

적지 않은 분들이 퇴직을 하면 국내외 여행을 통해 그간의 인생을 정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 우연히 우리나라의 국내외 여행수지가 적자라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 아내와 상의를 했습니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까지 해외여행에 나서 문제를 심화시킬 필요가 없으니 책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내에게 제안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생생한 기억을 토대로 인생을 되돌아 볼 필요도 있었구요.

고맙게도 아내는 저의 의견에 선뜻 동의했습니다. 물론 마지막 교정 작업을 할 즈음 책상에만 종일 앉아있는 저를 보며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요. 아 아내가 이 기사 보면 뭐라고 하려나요?

낯선 섬김. 제목이 꽤 인상적입니다.

기존 경찰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일해왔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청장 시절 ‘낯선 리더’라는 별칭이 붙여졌는데요. 경찰이 국민을 섬기는 것처럼 비록 계급이 높더라도 직원들을 섬기는 마음을 갖고 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저부터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런 생각을 갖고 일한 경찰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후배들에게는 “아 그래서 안하던 일을 하거나 힘든 일을 시켰구나”라며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많이 듭니다.

책을 접한 독자들이 ‘꼭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

경찰을 더욱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장 하고 싶네요. 아시는 바와 같이 수사권을 비롯해 경찰업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권한들이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경찰의 뛰어난 능력, 성실한 근무자세, 치안성과에 걸맞은 법과 제도의 선진화, 처우 개선이 절실하고 이는 경찰의 노력과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성원이 함께 더해졌을 때 달성 가능한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선배로서 현직 후배 경찰들과 예비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첫째로, 국민을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국민을 잘 섬긴다는 것은 국민의 인권과 안전을 지키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며 항상 배려의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경찰조직을 더욱 사랑하고 발전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학력, 범죄안전도 세계 1위라는 치안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찰관련 법과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낙후되어 있고 근무여건 역시 열악하기만 한데,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주길 바랍니다.

셋째로, 제가 경찰관으로 지녀야 할 가치로 긍정, 공정, 열정, 다정, 진정의 다섯 가지를 강조해왔습니다. 후배들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이것을 잘 구현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갖고 일하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손해나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고,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공직자로서의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정용선 학장은 인터뷰 말미에 질문했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겠다”는 말을 남겼다. 30여 분간의 대화에서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것보다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해줄지에 대한 고민 뿐이었다.

분명 그는 욕심이 있다. 하지만 그 욕심이 자신을 위한 욕심보다는 나라를 위한 욕심, 주변인들의 성공에 대한 욕심이기에 ‘낯설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섬김의 자세’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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